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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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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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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
파일/용량 EPUB(DRM) | 86.79MB ?
ISBN13 979119794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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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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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침실 화장대 서랍 하나에 너무 귀해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두었다. 비누, 화장품, 향수, 편지지―대부분 선물 받거나 가끔 경솔하게 산 것들―가 여러 해 동안 쌓이고 모였다. 진은 포장된 상태 그대로 쓰지 않는 보물을 보는 것이 실제로 쓰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면지가 대리석 문양이고 책장 끝에 금박을 칠한 가죽 노트는 안에 아무것도 쓰지 않아야만 아름다웠다. 립스틱은 그녀의 입술에 닿는 순간 망쳐졌지만 쓰지 않으면 그 잠재력은 무한했다.
--- p.59

“부모님이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데 질렸어요.” 마사가 작업복에 묻은 파란 물감 딱지를 멍하니 뗐다. “믿음이 달라서요?” 굳은 물감 아래쪽은 아직 말랑했기 때문에 마사는 몇 초 사이에 커피잔, 치마, 얼굴에까지 파란 얼룩을 만들었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그렇죠. 우린 모든 것에 대해서 생각이 달랐어요. 종교, 정치, 예술, 삶. 어쨌거나 제 삶에 대해서는요. 부모님은 본질적으로 에드워드 시대의 사람이고, 요즘 세상에 전혀 적응을 못 해요. 어쩔 도리가 없죠.”
“부모님이 젊으셨을 때 이후로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지요.” 진이 말했다. 그녀는 마사가 여기저기 얼룩을 만드는 것이 신경 쓰여서 말해 줘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변하지 않았지만요.” 마사가 소매에 손가락을 닦으며 말했다.
--- p.142

난 이 사람을 사랑해, 진이 살짝 놀라며 생각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됐어. 스스로 인정하고 잊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자 어찌나 마음이 놓이는지, 사슬을 벗어던진 것 같았다.
--- p.227

“고모님이 남자와 그렇게 다정한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좀 불편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콩달콩하기엔 두 분이 너무 나이 드셨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요. 약간 품위 없게 느껴졌어요. 로맨스가 젊은 사람들만의 영역은 아닌데 말입니다, 안 그래요?”
“그럼요.” 진은 언젠가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편견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그 편견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그분들도 마음속의 감정은 열여덟 살짜리와 똑같을 거예요. 인정과 사랑을 향한 갈망은 변하지 않아요. 늙어가는 몸이 덜커덩거릴 뿐이죠.”
“정말 멋진 표현이군요.” 하워드가 말했다. “게다가 우리도 나이가 들었을 때 품위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참!”
--- p.242

진은 외투를 입고 밖으로 빠져나간 다음 문을 천천히 소리없이 닫았다. 도로를 따라 몇백 미터만 걸어가면 햄브로애비뉴 모퉁이에 우체통이 있었다. 집들은 전부 깜깜하고 커튼이 내려진 채 조용했다. 진이 얼른 길을 건너서 공원 난간을 지나치자 정적 속에서 차가운 보도를 걷는 그녀의 발소리가 울렸다. 벨벳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새까만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진은 정말로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이 멸망하고 혼자 용맹하게 살아남은 기분이었다. 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밀려드는 순교의 기쁨에 압도되어 우체통에 편지를 밀어 넣었다. 공원에 떨어진 어린이용 분홍색 양모 장갑 한 짝을 지나가던 사람이 주워서 난간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진이 지나가자 아기 장갑이 유령처럼 경례를 했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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