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에게 배달되는 의문의 상자. 그리고 한 통의 편지
“그것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한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 소재한 대학 연구실에 상자가 하나 배달된다. 무심코 열어보는 교수. 동시에 일어나는 폭발 그리고 소요. 이것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보낸 폭탄인가.
《타임스》와 ‘아마존’이 조명하는 젊은 작가 수잔 최, 그녀가 폭탄테러를 소재로 집필한 《요주의인물》은 독창적인 캐릭터와 숨 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되는 인간의 심리, 눈을 돌릴 수 없는 서사가 돋보이는 ‘지적 미스터리’이다.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테러와 그 테러의 범인으로 오인 받는 노 교수 그리고 그의 내밀한 사연이 추리소설 기법으로 전개된다. “고전의 느긋한 즐거움과 최근 소설의 아찔한 긴장을 결합한 21세기 소설의 원형”이라는 소설가 프랜신 프로즈(Francine Prose)의 평처럼, 《요주의인물》은, 소설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깊이 있는 감동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소설이다.”_ 《뉴욕타임스》
“이 매혹적인 작가는 잊지 못할 소설을 써냈다.”_《보그》
“수잔 최는 그 어느 때보다 요주의해야 할 작가로 남을 것이다.”_《워싱턴포스트》)
리(Lee)는 미국 내륙에 소재한 작은 대학의 교수다. 이민자인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미국인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으며 적당히 거만하게,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두 번의 결혼은 모두 실패로 끝났으며, 첫 번째 아내와 둔 딸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날, 옆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그가 시기하고 질투하던 동료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시에 과거로부터 도착하는 의문의 편지. 리는 어느새 자신이 ‘요주의인물’이 되어, 모두에게 의심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알 수 없게 자신과 결부된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은 왜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독자에게 주어진 단서는 주인공 리, 친구였던 게이더, 게이더의 아내였으며, 결국 리의 아내가 된 에일린, 그리고 천재 수학자 동료 화이트헤드의 얽히고설킨 사연과 그들의 심리다. 탐욕과 허영, 열등감과 오해 등, 그들은 각자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은 정교하게 계산된 사건의 부속으로 작동한다. 독자들은 작가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밝혀지고 좁혀지는 관계의 망과 연관관계를 이용해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어느 순간, 범인은 정체를 드러내겠지만, 독자들으 다시 한 번 미처 의심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덫에 걸려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사건의 모티프는 1970~80년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폭탄테러범 유나바머, 테오도어 카잔스키 사건이다. 기술 문명에 반대하고자 대학과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테러활동을 벌였던 유나바머는, 17년간 수십 차례의 폭탄테러를 감행했던 바 있다. 수잔 최는 이 사건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사연 그리고 죄와 속죄를 대립시키고 일치하게 만들어, 사건 전개의 흥미를 더한다.
한편 이 소설은 ‘리’라는 사내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욕망을 제거하지 못한 채,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그의 과거는 모두 그 자신의 죄이다. 그 죄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동안,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그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려는 순간 청산된다. 폭탄은 리의 내면이기도 하고, 이 사회의 내부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기도 하다. 그가 폭탄테러범으로 오인 받고, 그 범인을 찾아나서는 과정은 그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과거와 비밀 그리고 그것의 폭로 과정과 동일하다. 작가는 이렇듯, 관계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을 절묘하게 결부시킴으로써, 단순해질 수 있는 플롯에 깊이를 더해주고, 이를 통해 차원이 다른 미스터리를 만들어낸다.
미국 언론과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 수잔 최는 해방 전후 한국문학비평사에 큰 족적을 남긴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 최재서(崔載瑞, 1908~1964)의 손녀인 재미교포 2세이다. 하지만 ‘한국계’ 혹은 혈통에 대한 언급이 그녀에겐 굳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예일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펜/제발트 상(펜 아메리카 센터에서 3권 이상의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에게 수여하는 문학상) 수상자, LA타임스 선정 ‘올해의 가장 좋은 소설 베스트 10’, 아마존 선정 ‘이달의 책’, 퓰리처 상 최종 후보 등 돋보이는 이력을 쌓아가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요주의인물》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수잔 최는 이 책을 통해 펜/제발트 상을 수상하였다.
◆ 작가의 말
이 책을 쓰는 동안 여러분에게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재단과 바룩 대학의 시드니 하먼 거주 작가 프로그램, 레딕 하우스는 비용과 시간을 대주셨습니다. 또한 드니스 프롤리와 존 노빅은 공간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세미 첼라스, 줌파 라히리, 피트 웰스는 피곤을 모르고 이 원고들을 읽고 또 읽어주고 도움의 말을 주셨지요. 윌리엄 피네건, 톰 맥다니엘, 마크 로시니, 케빈 색과 줄리 테이트는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셨고, 린 네스빗, 몰리 스턴과 로라 티스델은 끝없는 도움과 꾸준한 열정을 보여주셨어요.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 옮긴이의 말
이 소설에서 진범을 추적하는 과정은 과거의 회한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다. 리는 친구임을 가장하는 정체 모를 범인을 찾기 위해서, 과거를 되짚어야 했다. 외로운 이방인에서 매정한 친구, 무자비한 연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행복했던 가장, 배신당하고 잊혀진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미국에 올 때 기대했던 영광과 명예로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서부의 수수한 풍경처럼, 아무 굴곡 없이 지나온 인생처럼 보였어도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죄의 드라마가 있었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 목숨을 걸고 협조를 한 것은 리에게는 그 죄를 씻는 정화의 과정이었다. 타인에 대한 오해의 죄, 자기에 대한 오만의 죄, 사랑하는 이에 대한 무지의 죄. 마지막에 이르러 속죄와 용서를 구한 리는 진정한 가족을 만난다. 인생의 끝에 이르러 외국의 땅에서 편안해진다.
작가인 수잔 최는 이 과정을 잔인하리만큼 치밀하게 묘사한다. 결이 다른 마음의 방향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가며 은유와 묘사로서 마음속 풍경을 그린다. 소설가 프랜신 프로즈는 《뉴욕 타임스》 리뷰에서 이 소설을 두고 “고전의 느긋한 즐거움과 최근 소설의 아찔한 긴장을 결합한 21세기 소설의 원형”이라고 평한다.
폭탄이 터지는 한가운데서 소설이 시작하여, 과거 플래시백과 현재의 사건이 겹쳐진다. 속도감 있는 서사에 익숙한 현대의 독자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느린 진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란 평소에 우리가 돌아볼 길 없는 감정과 사건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계기이기도 한 만큼, 《요주의인물》은 참을성 있는 독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