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안 좋으면 재테크도 안 된다. 부는 에너지이고 기운이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으면 기분 전환을 위해 굳이 쓸 필요 없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요즘 일명 ‘시발 비용’이라고 하는 거. 기분 나쁘니 맛있는 거 배달시켜 먹고, 쇼핑도 해야 하고. 그런 기분으로 산 것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이쁜 쓰레기’이더라. 이걸 깨우치고 난 후에 유형의 동산(動産)은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동산은 오직 선물이나 책, 음반, 앨범, 게임팩 같은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줄 인사이트 함양을 위한 문화 콘텐츠만 산다.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부동산의 매력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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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을 넘어가니 기력이 딸려서 못한다. 30대부터 급격하게 풀 에너지 최대한도가 내려가는 것이 체감된다. 마치 2년 된 휴대폰처럼. 최신 휴대폰을 사서 2년간 쓰면 아무리 배터리를 100% 완충해도, 2년 전 구입 당시의 100% 충전보다 충전된 배터리 양이 적다. 자연적으로 나이를 먹어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배터리 총량은 줄어드는데, 여기에 임신, 출산, 수술이나 부상 같은 신체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가 있다면 인체 배터리 총량이 계단식으로 하향하며, 한번 내려간 배터리 총량은 올라가지 않는다. 휴대폰 배터리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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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어느 정도 잘해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이 질문을 받으면 민망해하면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난감할 수도 있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름 게임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즐겨 플레이하는 사람들이다. 게임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게임회사 직원은 게임을 얼마나 잘하나 싶어서, 또는 내가 게임회사 직원보다 게임 잘하는지 기를 한번 꺾어보려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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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손 번쩍 들고 말하자. 나의 기호와 취향과 호불호를.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하자. 예의 없다고 낙인찍힐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면 얻는 게 더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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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신잡〉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후배 작가들에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언이 ‘백업(Back-up)’이라고 했다. 백업을 못 해 작성 중이던 원고가 날아가거나 없어지면 허탈감이 커서 회복이 어려운 슬럼프가 오거나 심한 경우 직업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여성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셀프 안전, 정확하게 피임이다. 원하지 않는 시기이거나 계획에 없던 임신과 출산은 커리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의 일은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의사 때문에 등 떠밀려서, 엉겁결에,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하거나 무산되는 상황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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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을 하고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 보니 그제야 수백 개의 카톡 메시지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왜 연락이 안 돼?’라며 답장을 재촉하는 메시지부터, 심지어는 ‘읽씹하지마’(읽기만 하고 답장 안 하는 것을 하지 마) 등의 무서운 경고와 함께 며칠 동안 이미 연락이 안 돼서 혼자서 셀프 작별을 고하며 떠나버린 인연도 있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인스턴트처럼 금방 타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것인가 싶어서 허탈하기도 했다. 인맥이 며칠 만에 끊겨버리는 극단적인 사례였다. 나 이제 퇴원해서 몸이 아직 아픈데 마음이 갑자기 아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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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돌아오는 25일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달콤함을 내 발로 박차고 나오기엔 월급은 따뜻하다. 그리고 난 절실하다. 융자와 이자라는 이름의 두 여자가 매달 내 월급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회사가 나의 지식과 스킬을 필요로 한다. 아직은 난 쓸모가 있다. 쓸모 있을 때 월급을 뽑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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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도, 고민이 있어도 가급적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말자. 나는 힘듦을 털어놓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방도 피곤하다. 주변 사람은 나를 치료해줘야 하는 병원이 아니다. 어느 정도껏 가벼운 이야기는 괜찮을 수도 있으나, 그것도 정도 것이고 어느 수준 이상의 내 문제에 대해선 병원에 가든 내 선에서 해결하든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상대를 만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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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타이밍에 매수하지 못해, 기존 거래가격보다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진입할 때 지각비를 낸다고 한다. 왜 하필 내가 사려고 하니 취득세 중과라니. 1년만 일찍 이 아파트 샀으면 취득세 중과 아닌데. 1년 지각비가 세금만 4,500만 원이라는 계산에 다다른 순간 살지 말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세금만 4,500만 원 추가됐고, 아파트 매매가는 1년 만에 1억 5,000만 원이 올라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지각비를 내고 그냥 샀다. 더 비싼 지각비를 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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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모르는 분야를 접하거나 제안받게 되는데,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나에겐 처음 접하는 것이겠지만, 상대방에게는 오랜 노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장난스럽거나 가볍게 대하면 안 된다. 충분히 검토해보고, 알아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희망 고문을 하지 말고 정중하게 그리고 빨리 거절해야 한다. 모든 순간에, 모든 사람에게 배려 깊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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