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삽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외국어를 옮김으로써 번역가가 되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심정으로 시작한 N잡이었지만, 내가 벌인 일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일을 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아니라 일 그 자체였다. 나는 원하는 직업을 스스로 가질 수 있고, 일의 내용이나 방식 또한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프롤로그_이상한 나라의 N잡러」중에서
검토 차원에서 인터넷 서점 페이지에 걸린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상품 설명을 읽던 나는 어느 한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곳에는 ‘옮긴이’라는 소개와 함께 내 이름 석 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그 글자들이 말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고. 그것은 지난 세월 그토록 갖고 싶었던, 내 이름으로 된 번역서였다. 독립출판은 내게 수입뿐만 아니라 경력을 만들어주는 창구였던 것이다.
---「1장_이 세상에 내 자리가 있을까」중에서
한 우물에 대한 집착을 버린 덕분에, 내게 책 쓰기라는 도전은 최선의 경우 수입과 인지도가 생기고 최악의 경우에도 기술과 경력은 남는 도전이 되었다. 낮에는 번역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보냈던 그 시간이 내내 평온했던 것은 내게 재능이 많거나 자신감이 넘쳐서가 아니었다. 그 낯선 평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우물들이 있다는 확신이 엮여 만들어진, 어른이 된 후 처음 갖게 된 단단한 보호막의 느낌이었다.
---「2장_이상한 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중에서
나는 내 우물이 정확히 몇 개인지 모른다. 초반에는 숫자만 많고 이렇다 할 ‘대표주자’가 없는 직업 정체성을 두고 번뇌도 많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집착을 내려놓았다. 직업이 몇 개면 어떻고, 누구에게 무슨 호칭으로 불리면 어떤가. 번역가든 아니든 작가든 아니든, 나는 원서를 옮기고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다. 성우든 아니든 MC든 아니든, 나는 책을 낭독하고 독서 행사를 진행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그 일의 본질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어떤 직함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방법도 모르고, 성우 공채에 통과하는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므로, 지금부터는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격 대신 일을 따고, 직함 대신 경력을 쌓고,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을 손에 넣는 이야기 말이다.
---「3장_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중입니다」중에서
게다가 행운의 효력은 감사하게도 아직 다하지 않았다. 함께 책을 만들었던 출판사 편집자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며 내게 번역 일감을 물어다주었다. 오디오북을 담당하던 매니저는 영상 제작자로 변신한 뒤 제품 홍보모델로 나를 추천해주었다. 강연 일로 인연을 맺었던 작가가 다리를 놓아준 덕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나는 더 이상 자신의 성격을 두고 번뇌하지 않는다. 살면서 무식하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던 나의 우직함은, 이제 쭉 찢어진 홑꺼풀 눈과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일면으로 자리를 잡았다.
---「3장_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중입니다」중에서
매출을 키워 절대적인 수익을 올리는 전략은 한 번에 큰 이익을 노릴 수 있는 반면 실패할 리스크도 크다. 특히 자원과 노하우가 부족한 초심자 입장에서 한 번에 월 수백만, 수천만 원이 나오는 자동수익원을 단번에 만들어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클래스나 유튜브처럼 수익성이 괜찮은 자동수익원을 갖고 있는 나조차도 같은 방법으로 다시 한번 도전했을 때 확실히 성공한다는 보장은 못 한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는 전략은 리스크가 적은 만큼 상대적인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노리기는 어려워도, 멀리 내다보고 지속가능한 시행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수익 규모를 꾸준히 늘려갈 수 있는 것이다.
---「4장_매일 비장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요」중에서
내 삶은 여전히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런 자신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모순들은 어느새 N개의 우물 중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서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부터 둥글지 못한 나의 모서리들은 제자리에 놓인 퍼즐 조각처럼 일상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우물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개성을 발휘하는 그 무해한 모순들을, 지금의 나는 미움보다 애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세미 정장과 지퍼백 케이스의 부조화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에필로그, 이상해도, 무해하고 행복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