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달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초조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나는 초를 세지도, 기록과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내 옆에는 비틀거리는 미소년 좀비가 함께였다.
---「조예은 「캐스팅」」중에서
“두 번째 죽을 때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덕분에 무섭지 않아.”
나는 기주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너무 차가워서 언제 녹아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손을. 그리고 속삭였다.
“엔딩 크레디트 위에서 열다섯 번째. 난 절대 안 잊을 거야, 네 이름.”
---「조예은 「캐스팅」」중에서
“아, 놀이공원. 그런 곳에서 밤새우고 싶다.” 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놀이공원이라. 틀림없이 귀신이 수백 명 있을 것이다. 성규에게 거긴 무서워서 안 된다는 말을 하려다 문득 좋은 곳이 생각났다. “영화관에서 밤새우자. 마지막 영화 보고 숨어 있자.” 나는 성규에게 영화관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윤성희 「마법사들」」중에서
“뛰기 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상상해. 그러면 몸이 슝 날아오를 거야.” 성규는 구름판에 서서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봐라.” 어머니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하늘에 무지개가 있었다. 어린 성규가 울 때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성규를 달랬다. 저기 봐라, 하고. 어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늘 근사한 풍경이 있었다. 성규는 눈을 떴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멀리뛰기를 했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게 느껴졌다. 비눗방울은 오래, 오래 공중에 떠 있었다. 착지를 한 다음 성규가 소리쳤다. “슝 날았죠? 봤어요?”
---「윤성희 「마법사들」」중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민이 손을 내밀어 자신을 어둠의 출구로, 빛의 입구로 이끌어 가 주길 바랐다. 그러니까 죽기 전에.
---「김현 「믿을 수 있나요」」중에서
산호는 민을 만나고(무락 해변에서의 불꽃놀이), 친구가 되고(수월 포구에서 야간 수영을 했던 날), 텅 빈 교정을 몇 바퀴씩 돌고(빛나는 별과 달), 청량한 바람에 휩싸인 채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우정인지 사랑인지 결론 내릴 수 없어?사실은 결론 내리기 두려워서?민을 피해 다녔던 그 모든 계절의 일들을 한순간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너를 믿어. 그래야 나를 믿지. 민이 자신을 살아 있게 한다는 사실을.
---「김현 「믿을 수 있나요」」중에서
민은 ‘기억을 위한 경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헤아려 보다가 마음이라는 괄호를 열고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하나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모든 것을 일러 부르는 이름을.
---「김현 「믿을 수 있나요」」중에서
산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민의 이마를 검지로 문질렀고, 민은 가만히 기다렸다. 산호의 웃음이 자기 마음 끝까지 닿기를.
---「김현 「믿을 수 있나요」」중에서
나는 오른편에 앉은 아버지를 보았다.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울음을 삼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우리 극장에서 틀자.”
아버지는 그 엉성한 영상을 영화라고 불렀다. 아버지와 내가 같은 생각을 했다.
---「박서련 「안녕, 장수극장」, 143면
어째서 그 생각을 여태 하지 못했는지 이상할 만큼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장수극장 마지막 영화의 주인공은 장수극장이 되어야 했다. 공동 주연으로는 장수극장이 자리 잡았던 작고 심심한 마을이 나와야 했다.
---「박서련 「안녕, 장수극장」」중에서
“사실 저는 영사 일이 직업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이기도 해서 그런지, 영화 상영이 끝나면 모두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간다고 생각하지만요.”
“한 영화가 사람 인생을 바꿔 놓을 리가 없잖아요.”
“영화는 사람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해요.”
---「정은 「사라진 사람」」중에서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죠. 그 어떤 마법이라도.”
---「정은 「사라진 사람」」중에서
나는 화장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어제랑 똑같은 세상인데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푸르고 가로수에 달린 연두색 잎들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거리를 바삐 걷는 사람들도 똑같은데 다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극장에선 마법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고, 어쩌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마법이고, 나는 마법 같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몰라. 학교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정은 「사라진 사람」」중에서
엄마가 그래, 그럴게, 대답한 뒤 아주 짧게 웃었고 그 웃음소리는 공기 속에서 입자처럼 떠도는 듯했다. 엄마는 알까, 요양원에서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는 걸……. 이전보다 자주 웃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자라야 하는 사람인 양 모든 순간의 표정이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확률이 높아진 지금, 어쩌면 엄마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중에서
곧 택시에 오른 나는 몸을 돌려 뒤창을 보았고 엄마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어떤 영화의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지금 배우는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중일까. 페이드아웃으로 이 장면이 흐릿해진다면 배우는 어떤 신으로 이동하게 될까. (…) 지금 엄마의 세계 안에서 음악이 흐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생애를 에워싸는 음악이 밤의 나뭇잎과 들꽃과 흙길 위의 돌에서도 빚어진다면 엄마는 훗날 이 장면을 조금 덜 외롭게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중에서
과학 수업이 끝난 뒤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한 아이에게 말을 건네기 직전, 떨리고 두려우면서도 끝까지 용감하자고 다짐했을 소다현의 한 시절이 스크린 위로 또 하나의 영화인 양 영사되고 있었다.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중에서
사람들은 왜 항상 끝에서 시작을 그리워하는 걸까. 시작할 땐 끝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심지어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저 세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어서일까, 영화의 시작에선 끝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다. 언젠가 반드시 끝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말이다.
---「한정현 「여름잠」」중에서
그렇게 말하며 퍼트리샤는 쪽지 모양으로 접은 호두과자 봉지를 내게 건네 왔다. 나는 이걸 빈 호두과자 봉지라고 해야 할지 쪽지라고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한정현 「여름잠」」중에서
“이제 그 사람에게 잠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꿈을요. 잠을요.”
내가 들은 것을 모두 말할 생각이에요, 기억이 나는 그대로요. 그렇게 말하며 퍼트리샤는 내게 미소를 보였다. 그것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어 보였던 이전의 미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한정현 「여름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