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0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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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72g | 140*210*16mm |
ISBN13 | 9788964374207 |
ISBN10 | 8964374207 |
발행일 | 2022년 10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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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72g | 140*210*16mm |
ISBN13 | 9788964374207 |
ISBN10 | 8964374207 |
들어가며 8 첫 번째 산책 경의선숲길 1 철거민 강정희의 기억 15 두 번째 산책 경의선숲길 2 젠트리피케이션이 밀어낸 것들 37 세 번째 산책 용산 망루의 기억 59 네 번째 산책 아현 아현포차와 박준경의 기억 85 다섯 번째 산책 독립문 사라진 골목의 기억 105 여섯 번째 산책 상계동 올림픽이 밀어낸 자리 121 일곱 번째 산책 서울역 홈리스의 기억 141 여덟 번째 산책 청계천 가난을 걷어 낸 자리 167 아홉 번째 산책 광화문 1842일, 광장의 기억 187 열 번째 산책 종로 쪽방촌 주민의 기억 213 열한 번째 산책 잠실 잠실포차 김영진의 기억 229 나가며 |
살았던 곳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10여년만에 다시 가보니 그곳이 살았던 그곳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변했다. 단층집은 모두 사라지고 그 사이의 골목은 물론이고 큰 길 흔적도 틀어져 있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엔 아래서면 끝이 보이지도 않는 마천루가 서로의 틈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른바 상전벽해의 현장이었다. 그 모든 것이 딱 10년 걸렸다.
서민들의 동네였는데 서민들보다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손에 테이크 아웃한 커피잔을 들고 총총걸음을 하고 있고 그 사이로 재화를 배달하는 노동자들이 오토바이 굉음과 함께 출물했다. 불안했다. 그 많던 동네 꼬마들은 어디로 갔는가 근처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진 걸까? 주변에 통학할 아이가 없으니 학교도 부존재해야 마땅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둘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는 초현실적인 현상. 서울의 현재이자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이자 복합도시이다. 근세기 격동기를 지나며 갖은 사건 사고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아니 온갖 것들이 거쳐 지나가는 큰 용광로다. 그런데 그곳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식민지와 전쟁은 수도 서울을 초토화했고 맨땅이나 다름 없었던 공간엔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지방민들의 살 자리가 차지했다. 절대 번듯할 수 없었다. 없는 살림에 사는 공간에 여유를 부릴 여력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위 판자촌이니 달동네니 하는 빈민촌이 형성되었고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와 그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 대안이 된 것이 바로 아파트였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집약적으로 지어 옆으로 늘릴 수 없는 문제를 위로 올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서울기준으로 아파트 역사는 대략 50년 쯤 되었다. 길지 않은 그 시절동안 우리는 위에서 말한 상전벽해의 모양을 반복했다. 초기 아파트들은 기존에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지어졌고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정착한 더 열악한 지역엔 지금, 다시 새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그 와중에 철거, 재건축, 혹은 재개발로 다시 철거 재건축, 혹은 재개발로 돌고 돌면서 분탕이 일었다. 그렇게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면 겉으로 보기엔 깨끗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돈 많은 그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원주민들의 행처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들. 이로 인해 살 곳을 잃은 그들의 저항은 논문으로도 여러차례 등장할 정도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다.
이 책에서 사례로 나온 몇 곳 중엔 내가 살았던 곳이 두 곳이나 된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그곳은 누군가의 쫒겨남과 눈물이 흘러내렸던 곳이라는 점이다. 좋은 새 아파트에 입주할 여력이 있다면 세입자로 살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이주비 정도를 들고 더 외곽의 어떤 곳으로 다시 세입자로 살게 될 것이고 서울의 입김이 넓어지고 토건업체들의 눈독이 세지면 그곳 역시 개발되면서 다시금 더 먼곳으로 밀려날 처지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모두 모여있는 이곳 서울이라면 쉽게 간과하거나 쉽게 해결책이 나오지 못한다. 그 사이에 내동댕이 쳐지다시피한 그들을 연대하게 하고 손잡아 주었던 저자의 눈에 이 마천루 가득한 메가시티는 과연 어떤 곳일까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역시 지금의 서울은 불안정한 곳이다. 치안의 문제가 아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이곳이 타의에 의해 갑자기 철거될 수도 있는 황당한 일이 영원히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권력에 의해, 자본에 의해, 다수의 폭력에 의해 방출되어야 한다는 극심한 불안감은 단지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집세가 얼마나 올랐는지 그 이상의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예전 중국인 친구가 서른 중반에 집을 사게 되었다고 자랑을 하고 구경을 오라 해서 가본 적이 있다. 북경시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였다. 주변엔 크레인이 부산하고 여기저기 공사판이 펼쳐져 있었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풍광이 이질적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집이 반쯤 허물어졌는데 그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친구가 말하길 저기도 곧 허물고 이런 아파트가 들어설거라고, 이 집도 얼마전 까지 저런 집이 있었던 곳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이 집을 은행 빚을 끼고 무리하게 산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안정감이야. 돈도 믿을 게 못돼, 집이 있어야 그래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생긴거지"라고...
책을 훑다보니 서울의 최근 20년의 사회문제가 휘리릭 지나갔다. 익히 알고 있었던 용산참사를 비롯해 잠시 잊고 있었던 빈자들의 연이은 허망한 죽음들과 그 당시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면면, 그리고 살아남아 지금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호흡들이 느껴졌다.
잠시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던 개발론자들의 준동이 재차 시작될 조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또다시 사회적 아픔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사람은 쓸어버리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철거용역들의 무자비한 행태를 사진으로 보면서 불안감이 들었다. 대한민국 서울은 왜 이렇게 시끄러워야 하는 걸까 편히 산책만 할 수는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