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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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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08g | 145*210*15mm
ISBN13 9788962632446
ISBN10 896263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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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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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임박한 글로벌 시스템 붕괴] 이 책은 붕괴에 관한 한 우리가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생태계 전반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세계 인구 과잉, 과소비, 기술에 대한 선택 부족이 우리 문명을 붕괴로 이끌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 - 손민규 사회정치 P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붕괴, 비선형적 현상
서론: 언젠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주제

1부 붕괴의 시작

01 자동차의 가속
02 엔진 끄기(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03 고속도로 출구(넘을 수 있는 경계)
04 방향이 막혀 있을까
05 점점 더 취약해지는 운송 수단에 갇히다
1부에 대한 종합 평가

2부 그렇다면 언제인가

06 미래학의 어려움
07 전조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까
08 모형은 무엇을 말하는가

3부 붕괴론

09 조사해야 할 모자이크
10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인간은?

결론: 기근은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추천의 글
감사의 글
후기: 6년이 지난 후

저자 소개 (3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지금 왜 ‘붕괴’인가

최근 카카오 사태를 보면서 현대의 시스템적 생활이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다.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 몇몇 재앙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지구 차원의 위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 문명의 붕괴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우리 문명이 붕괴한다면? 수 세기 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세대. 마야의 종말론이나 천년지복설의 말세론과 거리가 먼 수많은 저자, 연구소, 기관 들이 우리 산업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 암울한 예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는 것이 왜 힘들어졌을까? 붕괴는 세상의 종말이나 묵시록이 아니다. 단순한 위기도 아니고, 몇 달 만에 잊어버리는 일회성 재난도 아니다.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주택, 의복,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서 이것은 세상의 종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과정이다. 물론 종말이 아니라는 점은 빼고 말이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뿐 어떻게 진행될지 알 방법도 없다.

어디까지 이어질까? 누가 영향을 받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들? 부유한 나라? 선진국? 서구 문명? 인류 전체? 아니면 일부 과학자가 예고한 것처럼 대다수 생물 종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들’은 이 모든 범주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석유의 고갈은 산업화한 세계 전체와 관련이 있지만,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살아 있는 종을 위협한다.

인류세는 현재를 특징짓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 인류는 약 1만 2000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농업과 문명을 출현시킨 충적세라는 대단히 안정적인 기후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인간은 지구 시스템의 거대한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을 방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변화한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세계적 차원의 냉정한 과학적 선언 그리고 예기치 못한 혼란스러운 사건과 감정으로 정신없는 일상의 삶, 이 둘 사이의 거대한 공백을 채우거나 이 둘을 이어줄 가교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공백을 채우고자 한다. 그리고 인류세와 우리의 용기를 연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붕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이 개념은 다양한 분야, 즉 생물 다양성의 감소 속도뿐만 아니라 재앙과 관련한 감정, 기근의 위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류세의 개념을 생생하고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붕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미디어와 지식인 사회에서는 붕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붕괴론’의 탄생

이 주제를 다루는 몇몇 수준 높은 철학적 성찰에도 불구하고, 붕괴(또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논쟁은 실질적 근거가 없다는 결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상상이나 철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거나, 본질적으로 ‘공중’에 붕 떠 있다. 붕괴를 다루는 저서들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관점이나 분야(고고학, 경제학, 생태학 등)에 국한되어 있어 붕괴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부족하다.

지구의 경제 상황 및 생물물리학적 상황에 대한 실질적 현황과 체계적 분석이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붕괴가 무엇과 유사한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현세대에 심리학적·사회학적·정치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개요도 빠져 있다. 붕괴를 다루는 관련 분야 및 학제 간 연구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에서 출판된 수많은 저서들이 묘사하는 이른바 ‘붕괴론’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또 이 책의 목적은 지식을 쌓으며 단순히 과학적 즐거움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밝히는 것, 즉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도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최대한 진지하게 이 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붕괴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헤치고, 그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환상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붕괴론의 목표 중 하나다. 붕괴의 개념을 명확히 밝히고, 다양한 시간대에 적용해보고, 미묘한 차이나 세부 사항을 찾아내는 것, 한마디로 붕괴를 생생하고 작동 가능한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게다가 세상은 획일적이지 않다. ‘남북 관계’라는 문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재고해야 한다. 평균적 미국인은 평균적 아프리카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는 적도에 가까운 국가, 정확히는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적게 한 국가에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붕괴의 시간성과 지리학은 선형적이지도 균질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 즉 이 세기의 가장 나쁜 소식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미 ‘탄소 이후’ 세계에 직면해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모든 작은 시도들에 대해 듣고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민감한 주제: 붕괴

그러나 합리성만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저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경험, 특히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수치만으로는 상황을 적절히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 직관·감정·특정 윤리를 추가하고자 한다. 붕괴론은 연구 대상과 분리된 중립적 학문이 아니다. ‘붕괴론자’는 그들이 연구하는 것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중립적 태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붕괴라는 주제는 우리의 내면 가장 깊숙이 해를 끼치는 유독한 주제다. 우리의 꿈을 죽이는 큰 충격일 것이다. 붕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게 아무리 비합리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위안을 주던 미래가 죽어간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붕괴에 대해 논의하되 차분해야 한다. 확실히, 붕괴 가능성은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폭력적으로 닫아버린다. 하지만 다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그중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유쾌하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도전 과제는 이러한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고, 그 미래를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주요 내용과 1부 요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룬다. 우리 사회와 지구 시스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로 위기에 처해 있는가?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모든 ‘위기’를 한곳으로 모으다보면, 그 경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붕괴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학이라는 위험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어 2부에서는 이러한 미래를 고려할 수 있게 해주는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붕괴 개념에 구체적인 깊이를 부여한다. 왜 우리는 붕괴를 믿지 않을까? 고대 문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과정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러한 사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인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고려해야 할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붕괴가 발생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라도 정말 심각하게 붕괴할까?

이 책은 1부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고, 따라서 1부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산업 문명은 재정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피하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속도를 높이고 복잡해졌다. 에너지 관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채를 기반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성장을 이룬 경제가 결합하면서, 산업 문명은 폭발적으로 팽창해왔다. 그러나 이제 지구물리학적 한계나 경제적 한계로 인해 산업 문명의 성장이 멈추고 생산성이 감소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한계를 밀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술은 더 이상 빠른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고 혁신적 대안을 방해함으로써, 지금의 산업 문명을 지속 불가능한 궤도에 가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제 및 생태계의 복합적인 시스템은 특정 한계를 넘어서면 사전에 알 수 없었던 새로운 평형 상태로 갑자기 떨어지거나 심지어 붕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몇몇 ‘경계’를 사회 차원에서, 그리고 종 차원에서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지구 기후 시스템, 수많은 생태계 시스템, 지구의 생물지리화학적 대순환 시스템은 우리가 알고 있던 안정적 범위를 벗어나 거대하고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며, 이는 다시 산업 사회와 인류 그리고 다른 종들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일 수도 있는 모순은 문명이 강력할수록 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누리며 살고 있는 현대의 세계화한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은 자원을 심각하게 고갈시키고, 기후와 생태계 시스템을 교란한다. 동시에 점점 더 세계화하고 상호 연결된 우리 문명의 구조는 시스템 안팎의 사소한 혼란에도 매우 취약해져 시스템 붕괴의 역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아주 심각한 기후 및 생태계 교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면, 이제 엔진을 꺼야 한다.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은 화석 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초래하거나, 심지어 열-산업 문명을 끝장나게 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을 확신한다.

1. 우리 사회의 물리적 성장은 가까운 장래에 멈출 것이다.
2. 우리는 적어도 지질학적 차원에서는 지구 시스템 전체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바꿔놓았다.
3. 우리는 매우 불안정하고 ‘비선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미래에는 대규모 혼란이 일상화할 것이다.
4. 우리는 이제 잠재적으로 글로벌 시스템 붕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많은 경제학자, 기후학자, 물리학자, 농업경제학자, 생태학자, 군인, 언론인, 철학자, 심지어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하지만 재앙 관련 뉴스가 아무리 쏟아지더라도 세계 경제 시스템, 하물며 열-산업 문명 또는 지구 시스템은 아직 붕괴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강해지는 성향이 있다.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을 때 붕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살아남는다. 붕괴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붕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세계 인구 과잉, 부자의 과소비, 기술에 대한 선택 부족”은 산업 문명을 붕괴의 길로 몰아넣었다. 시스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 대규모 붕괴의 기한은 2050년이나 2100년경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 계속 이어지는 재앙이 언제 붕괴로 바뀔지 정확한 시점을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 일이 현세대에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수긍할 만하다. 이는 과학자든 활동가든 우리가 수많은 관찰자와 직관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한 ‘정상적인’ 상황으로는 절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첫째, 열-산업 문명의 엔진인 에너지-금융 커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둘째, 우리 문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물질적 팽창을 하는 동안 그 기반을 이룬 자연이라는 복합적 시스템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이미 경계를 넘어섰다.
셋째, 식량·물·에너지를 제공하고 정치·금융 및 가상 영역이 작동하도록 하는 훨씬 더 복합적인 시스템은 더 많은 에너지 투입을 요구한다.

이 세 가지 상태(한계 접근, 경계 초과, 복합성 증가)는 되돌릴 수 없으며, 이것이 결합해 한 가지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명의 붕괴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세계화로 인해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했으며, 따라서 거의 전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붕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붕괴는 지역·문화·환경 위험에 따라 속도·형태·추이가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복잡한 모자이크로 보아야 한다.

경제 성장으로의 회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다. 이는 성장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이 이런 목표에 집중하는 한 화석 연료 소비를 획기적이고 빠르게 줄이는 것 같은 기후와 생태계의 안정성을 보존하기 위한 진지한 정책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부양 정책과 긴축 정책에 걸친 모든 논쟁은 핵심 문제에서 주의를 산만하게 할 뿐이다. 사실, 우리가 빠져나올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우리의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길만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걸 깨닫는 것이 반전의 시작이다. 유토피아가 갑자기 터전을 옮겼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종종 오늘은 모든 게 이전과 같을 거라고 믿는다. 반대로 현실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신속하고 급진적인 전환에 투입해 영토든 인간이든 지역적 회복력을 구축하고자 한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에서 다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보다 더 소홀하게 다루는 주제가 있을까? 그것 역시 없을 것이다. 우리 세계의 정치적 모순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몇몇 개혁을 통해 운명을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의도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명이 단기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세계적 붕괴의 임박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많은 징후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이나 저곳이나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입장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어떤 체제, 어떤 책임자가 세계 정세를 재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들이 통치하는 사회의 방향성과 공공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현실을 부인하는 이런 현상은 정치의 짧은 수명과 생태계의 긴 생명력(생태계를 회복하려면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간 모순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인간이 지닌 인지 도구의 한계와 사회심리학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믿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닥칠 것이라는 선언에 직면해(여기서는 ‘세계의 붕괴’), 비록 그 사건이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괴리는 철학자 귄터 안더스(Gunther Anders)가 분석한 열-산업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그는 이러한 사건의 특징을 ‘초문턱값(supraliminal)’이라고 규정지었다. 우리는 이런 사건에 대해 머릿속으로 완전하게 이미지를 그리거나 모든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저자들이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수한 자료를 조사하고 추론하더라도 ‘세계의 붕괴’가 무엇인지, 심지어 시스템적 관점에서조차 완전히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단지 확신에 가까운 직관을 느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훨씬 더 불가능하다. 이 붕괴로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까?

몇몇 사람이 느끼는 붕괴에 대한 직관적 확신은 다른 사람들의 대조적 반응에 부딪힐 때 혼란스러워진다. 사실상, 이때부터 초문턱값 사건에 직면한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의 의지보다 반사 메커니즘(specular mechanism)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붕괴가 임박했다고 확신하고, 이런 확신을 나와 가까운 지인이나 만나는 사람들과 공유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소수의 사람이 내 말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 그리고 현재로서는 대다수, 심지어 지구생태학적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일단 부정이라는 인지 부조화로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로부터 붕괴를 막기 위한 어떤 집단행동도 끌어내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마침내 붕괴가 임박했음을 확신한다고 해도,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적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효과적’이란 이런 가정이 현실화하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개인 및 집단행동의 변화와 더불어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영역의 불쾌한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많더라도,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아무런 행동조차 하지 않는 이와 비슷한 상황의 예는 많다. 기후 변화의 경우에도 대다수 유럽 사람은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지만, 이 현상에 대한 개인의 행동이나 공공 정책은 20년 동안 한탄스러울 정도로 취약했다. 20세기 후반, 사담 후세인의 독재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이라크인이 그의 독재를 잔혹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개인적 의견이 정권 전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라크인은 왜 그토록 싫어하는 폭정을 견뎠을까? 이러한 유형의 명백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세계가 붕괴 직전에 처했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독자는 어쩌면 이 책의 설명에 설득당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 그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또는 거의) 개인적 또는 정치적 행동도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개인의 심리적 한계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이 기이한 사회 현상을 인지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철학자 장루이 뷜리에름(Jean-Louis Vullierme)의 사회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개인의 행동을 촉발하는 것은 그 개인의 의견이나 의지가 아니라, 충분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한다면 그 자신도 행동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이다. 집단적 (정치) 행동은 개인의 행동 의지가 결합한 현상이 아니라, 각자 타인의 표현을 관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오는 표현이다.

사회는 개인 간 표현이 겹쳐진 하나의 시스템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사물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표현한다. 즉, 개인이 그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델은 다른 사람이 그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델에서 비롯된다. (뷜리에름은 이러한 인지적 상호 작용을 ‘반사’라고 불렀다.) 따라서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모델 시스템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의지는 일차적 실재가 아니라, 반사적 상호 작용에서 비롯된 실재다. 붕괴를 의식하는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은지 궁금해하기보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럴 경우에만 그 자신도 삶을 바꾸고 싶어 한다. 붕괴는 각자의 의지가 아니라 각자의 교차된 표현, 즉 같은 상황에 처한 주위 사람들이 삶을 바꾸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결정권자가 붕괴를 부인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기서도 반사 역학이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붕괴 임박에 대한 믿음은 경쟁에 사로잡힌 정치 세계에서는 더 느리게 확산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이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갑자기 붕괴가 임박했음을 믿게 되더라도, 그들은 정치적 경쟁자나 친구들 역시 이 사실을 믿고 있는지부터 궁금해할 것이다. 각자 재앙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

각자 누가 먼저 잘못된 걸음을 내딛는지, 다시 말해 누가 먼저 자신의 신념을 공개하는지 눈치를 보면서,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믿게 된 상황에서도 붕괴에 대한 사실은 공유 지식(상식)이 되지 못할 것이다. 산업 사회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해 공공 정책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집단행동은 더더욱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붕괴가 임박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삶의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붕괴를 부인하는 것은 각자가 비합리적인 존재이거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사 효과가 결합한 시스템의 효과다. 전환주의자와 성장 반대론자들로 이뤄진 다양한 공동체가 급속하게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붕괴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심리학이 적절한 순간에 좋은 결정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연구를 하면서 만성적인 불안을 느껴보지 않고서는 붕괴론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삶과 죽음의 문제가 더욱 직접적인 조사 대상인 생태계 종말론에서, 생각과 감정은 밀접하게 뒤섞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생 전체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 질문에 솔직하게 접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듣는 사람 모두에게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세계적 붕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 붕괴론은 책임의 학문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탐구하는 붕괴는 우리를 넘어설 수 있으며, 붕괴론은 어느 순간 우리 개개인을 초월하는 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형이상학적 순간은 연민, 공감 또는 이타주의로 채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덕적 힘을 어떤 교리나 종교에 의한 것처럼 우리 외부에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붕괴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다시 분해할 수 없는 합금처럼 우리 영혼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한 이 도덕적 힘은 우리 존재에 속해 있다. 하지만 조심하라! 붕괴론을 연구한다고 해서 인도주의적 지혜와 이웃 사랑이 넘친다는 말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때로 세상의 위협을 무시하고 악의 없이 그들의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눈먼 인간이나 형제자매를 향한 염세주의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나는 단순히 붕괴가 그 목적에 따라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요컨대 죽음의 수를 줄이는 모든 행동은 선으로, 이러한 구분에 대한 무관심 혹은 더 나쁜 경우 수많은 죽음에 대한 병적인 쾌락은 악으로 구분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판단할 수 있다.
- 이브 코셰 (전 환경부 장관, 모멘텀 연구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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