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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624쪽 | 862g | 153*224*60mm
ISBN13 9788991958562
ISBN10 8991958567

중고도서 소개

최상 새 상품같이 깨끗한 상품
  •  판매자 :   정수현책방   평점4점
  •  특이사항 : 김응수 장편소설 (비닐랩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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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응수
1966년에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예대 영화과와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에 들어갔으나 그만두었다. 그 후 스스로 영화이론을 공부하여 장편 데뷔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시작으로 「욕망」 「달려라 장미」 「천상고원」 「과거는 낯선 나라다」 「물의 기원」 「아버지 없는 삶」을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로카르노, 토론토,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 싱가포르, 피렌체, 트란실베니아, 프리부르그, 하와이, 예테보리, 함부르크,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정 상영되었고 볼로냐 시네마테크의 올해의 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파리한불영화제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유니코리아상,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주목할만한 리뷰가 「Cahiers du Cinema」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의 영화와 한국학의 권위 있는 전문지에 실렸다. 그의 영화는 코미디와 비극,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고전적 형식과 전위적 형식을 관통하고, 그는 가장 혁신적 감독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갑자기 화면보다 문장의 힘에 매료되어 첫 소설 《J》를 썼고, 20대 때 읽었으며 영화가 태어나거나 융성하기 전의 소설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에서 《J》의 무의식적인 문장의 흐름을 모방했다고 고백한다. 아마 그는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에는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듯하며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문학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J》를 통해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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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광화문 근처의 세종문화회관 뒤 계단에서 쉬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갑자기 직장인들이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감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통일적으로 입은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작은 공원마저 점령하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온통 하얀 색채의 향연이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청색 라운드티를 걸친 채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나는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다. 그때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흰색 사이를 무심히 걷더니 가운데 분수대에 털썩 앉아 빨간 샌들을 벗어 옆에 툭 던졌다.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녀는 뜨거워 갈증을 참을 수 없는지 누군가 놓고 간 페트병을 분수대에 푹 담가 그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그 병을 옆으로 휙 던지더니 얼굴을 들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주 청순하고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사랑스러웠다. 나는 당혹감으로 멍했다. 그녀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으며, 전화를 꺼내 무엇을 확인하였고, 심각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태양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풍경이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녀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하는 것이 나의 물음이다. 어떤 단어들을 떠올릴지도 상상이 간다. 나도 그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여자의 외로움을 이야기 할 때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너무 많은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예쁘게만 보이려고 노력하는 자들! 그녀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외롭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녀가 여자라고 해서 여자들은 모두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가 여자라고 해서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태도의 문제이다. 스스로 한번쯤 숨 막히는 세계의 견고함에 대해 소리를 질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남녀라면 모두, 그녀의 그 반항적 인상으로부터 출발한 J의 피, 살, 뼈, 몸, 사랑, 성격, 마음, 영혼,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책은 전자가 행복한 인간이고, 후자가 불행한 인간임을 문학적으로 정확히 증명한다. 뒤집는 것이 나의 목표다. 빈대떡을 뒤집어야 맛이 있듯이 삶도 뒤집어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삶의 뒷면에 달라붙어 탈 뻔했던 우리들의 육질, 부정적이라 생각해 뒤로 치워 놓은 단어들, 두려워 숨긴 우리의 비밀이 미소 지으며 맛있게 먹어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삶을 뒤집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니 빈대떡처럼 빨리 구워지기를 바라지는 말자. 다소 지루한 독서는 삶을 다른 길로 인도한다. 이 책을 읽을 분께! --- 저자의 말 중에서

“선생님. 오래 통화하지 못해요.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전 사라져요. 멀리도 가까이도 아니에요. 어쩌면 선생님 곁에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곳은 다른 세계에요. 우리는 정말로 타인이 되는 거예요. 저는 그곳으로 가야해요.”
“J?”
“저를 보호하던 분이 살해되었고 나를 알던 피아니스트가 죽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께 저를 공개해서. 선생님도 위험해요. 저를 잊어요. 그리고 아직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면 진료기록에 이렇게 써요. megalomania. persecution mania. 꼭!”
--- 본문 중에서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광화문 근처의 세종문화회관 뒤 계단에서 쉬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갑자기 직장인들이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감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통일적으로 입은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작은 공원마저 점령하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온통 하얀 색채의 향연이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청색 라운드티를 걸친 채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나는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다. 그때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흰색 사이를 무심히 걷더니 가운데 분수대에 털썩 앉아 빨간 샌들을 벗어 옆에 툭 던졌다.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녀는 뜨거워 갈증을 참을 수 없는지 누군가 놓고 간 페트병을 분수대에 푹 담가 그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그 병을 옆으로 휙 던지더니 얼굴을 들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주 청순하고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사랑스러웠다. 나는 당혹감으로 멍했다. 그녀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으며, 전화를 꺼내 무엇을 확인하였고, 심각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태양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풍경이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녀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하는 것이 나의 물음이다. 어떤 단어들을 떠올릴지도 상상이 간다. 나도 그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여자의 외로움을 이야기 할 때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너무 많은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예쁘게만 보이려고 노력하는 자들! 그녀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외롭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녀가 여자라고 해서 여자들은 모두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가 여자라고 해서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태도의 문제이다. 스스로 한번쯤 숨 막히는 세계의 견고함에 대해 소리를 질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남녀라면 모두, 그녀의 그 반항적 인상으로부터 출발한 J의 피, 살, 뼈, 몸, 사랑, 성격, 마음, 영혼,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책은 전자가 행복한 인간이고, 후자가 불행한 인간임을 문학적으로 정확히 증명한다. 뒤집는 것이 나의 목표다. 빈대떡을 뒤집어야 맛이 있듯이 삶도 뒤집어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삶의 뒷면에 달라붙어 탈 뻔했던 우리들의 육질, 부정적이라 생각해 뒤로 치워 놓은 단어들, 두려워 숨긴 우리의 비밀이 미소 지으며 맛있게 먹어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삶을 뒤집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니 빈대떡처럼 빨리 구워지기를 바라지는 말자. 다소 지루한 독서는 삶을 다른 길로 인도한다. 이 책을 읽을 분께! --- 저자의 말 중에서

“선생님 저에요. 방금 거기에 들렀던 사람이에요. 부탁이 있어요. 저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누군가 거기를 찾아갈 거예요. 남자가요. 그럼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 여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망상과 현실을 혼동한다.’ 저는 살해의 위협을 느끼고 있어요. 잘 보셨어요. 저는 정신질환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께 갔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께서 잘 속아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드려요. 아뇨. 선생님이 명민한 의사라면 속지 않으신 게 맞아요. 저는 망상 속에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해야 해요. 그럼.”
“여보세요?”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 영화감독 김응수가 쓴 첫 번째 장편소설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상 수상 감독 김응수. 그가 소설을 썼다. 김응수 감독은 벌써 20년 가까이 영화를 찍고 있다. 격동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바로 눈 앞에서 두 선배의 죽음을 목격하여야만 했던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 서울예대 영화학과를 입학했다. 바로 그렇게 그의 영화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영화를 위해서는 러시아도 프랑스도 또 어디도 가리지 않고 갔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배우고자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가 그렇고, 「욕망」이 그렇다. 「천상고원」이 그렇고 「아버지 없는 삶」이 그렇다. 그는 많은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아직 그의 영화가 우리 시대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의 세상 읽기는 오늘도 계속되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영화작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영화 만들기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혼자 되었다는 공포스러움이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가 쓴 소설 《J》는 바로 그러한 절박함과 진실성이 있는 소설이다. 영화에서도 못한 이야기들을 문자라는 매체를 통해서 독자들을 향해서 소리치고 있다.

2. 알람브라 궁전의 석주

주인공 J에게는 알람브라 궁전의 석주가 필요하였다. 그녀가 기대고 쉴 수 있는 곳.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에게 석주가 될 사람은 없다. 그녀는 석주를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하지만 석주는 어디에도 없다. 의사가 석주의 역할을 하는 듯 하지만 그도 역시 석주는 되어주지 못한다. 그녀의 석주는 어디에 있을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두고 그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행복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알람브라 궁전의 석주는 어디에 있는가?

3. 소설가 김응수가 본 우리 시대

영화 감독으로서의 김응수가 만든 영화들을 살펴보면 스크린 밖에 항상 어떤 인물이 존재한다. 그 인물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스크린 밖에 있는 그 사람이 영화의 모티브와 주제를 이끌고 나가고 있는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J》에도 소설 밖에 존재하는 인물이 전체 소설을 이끌고 나가고 있다. 1권에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주인공 J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이 소설 밖의 인물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엄청난 존재감으로 소설 안의 사람들을 짓누른다. 그리고 그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소설 속 사람들은 갈팡질팡 길을 헤맨다. 이렇듯 현실은 우리와는 어쩌면 상관없는 논리들에 의해서 이끌어져 나가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제 삼자의 어떤 사상, 의견, 행동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고 행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이 만연된 현실세계를 J를 통해서 보여준다.

진실로 진실치 못한 우리의 진실
―김응수 장편소설 《J》를 읽고

두동원(전북대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청춘예찬?이라는 수필은 내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그때 느낌은 수식이 번잡하고 교훈이 진부하다는 거였다. ‘청춘’이라는 말이 우리 세대에게 처음 비쳐진 건 딱딱한 교과서에서였고, 지금과 같이 일종의 유행어가 된 건 아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부터인 것 같다. 당시 내게 ‘청춘’이라는 말의 어감은 청춘은 이래야 해, 같은 태도가 단어 자체에도 배어있는 것처럼 칙칙해 보였다. 어른들의 위선이나 훈계 같았다. 내게 울림을 주던 책들은 한창 유행 중이던 자기계발서였다. 너희들의 세계는 이렇게 전쟁 같다고 말하던 가식 없는 태도가 차라리 맘에 들었다.
내가 고3 시절을 보내던 2007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자기계발서가 휩쓸었고, 그해 말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 둘 사이에 왠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러자 자기계발서가 불편해졌다. 어쩌면 인간을 지배하는 건 합리적인 이성이 아니라, 여전히 신화적 세계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가 쇠하고 나온 근대소설이라는 것도 사실 이성의 산물이다. 과학의 존립 근거가 인과율에 있듯, 근대소설은 인과성과 개연성으로 똘똘 뭉쳐진 리얼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시크릿》과 같은 자기계발서가 제아무리 현대의학을 끌어들이며 관념론적 세계관이 삶이나 현실에 기적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해도, “상식”(2권, 315쪽) 선에서 볼 때 그런 자기계발서는 신화적 세계관에 가깝다.
2006년 국내에서도 떠들썩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책에서는 근대문학이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을 잃게 됐다고 진단했다. 근대화 시기 문학이 힘을 발휘했던 건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생산해낸 까닭이었다. 그 시대에는 문학의 간접성과 은유성 때문에 문학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사회가 민주화된 탓인지 문학은 그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됐다. 장편 《J》를 볼 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은 바로 그 시절 문학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함이었다. 정치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대화체로 논쟁을 이어가는 방식은 최근이라 봐야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이후로 처음 봤다.
선이 악보다 깨끗할 것도 없고, 다양성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인 데다 복잡다변하기까지 해서 좀처럼 무엇이 옳은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옳은 것을 좇았던 지난 시대의 열정은 낡고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아니면 소설 속 주인공 J처럼 누구나 부러워하는 강남 청담동에 살면서도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는 전부 ‘미용사’를 ‘헤어 아티스트’(1권, 75쪽)라고 부르는 것처럼 시대가 변하는 탓일까. 문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근대문학도 그렇게 피다 지는 한 철 장사였던 것 같아 적잖이 씁쓸했다.
여전히 어긋난 문제들이 많은데 성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행복하면 된 거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는 건 그 의견을 마음속까지 찬성하는 길뿐이다. J는 그런 사회와 내면과의 괴리,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릿해짐을 예민하게 느낀다. 처음엔 이상한 환자라고 생각했던 J의 뒤틀린 내면의 칼자국이 읽다보니 내게도 깊숙이 그어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근대국가의 기획이 완성되었으니 근대문학의 효용이 다한 게 아니라, 근대성의 많은 문제점에 대해 가치의 척도를 세워줄 수 있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것은 유행에 따라 시대가 변하니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진실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7~80년대를 살아오면서 어쨌든 우리는 부유해졌고, 소수의 민주투사들이 고생했던 것이지 서민들 입장에선 그때만큼 태평하던 때가 없었다는 말을 어른들께 왕왕 듣곤 한다. 나는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그 시대에 대해 어두웠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짐작 때문이다. 마시면 밤새울 수 있는 음료가 ‘청춘 음료’가 되고, 잠 줄여가면서 도서관에서 제각기 섬처럼 배타적으로 앉아 취업 수험서만 주구장창 풀고, 누군가는 이걸 청춘의 특권이라 말하고… 나는 지금도 우리 사회가 이렇듯 기만적으로 보여서 지난 시대에도 마찬가지 같다는 추론을 할 뿐이다.
구닥다리 말 같았던 청춘이 어느새 가장 잘 팔리는 매혹적인 단어가 되고, 진리나 정의를 위해서라는 말이 배고파서 일하겠다는 말보다 진정이 없어 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설 《J》를 읽고 나는 이 모든 가치 부재의 문제가 시대의 변화 탓이라고 합리화하던 내 태도를 검토해볼 수 있었다. 근대문학은 죽었다는 고진의 냉정한 선언보다 내 가슴을 팔딱거리게 하는 건, 지금-여기에서 생산되고 있는 구체적인 작품이다. 엘리트주의나 계몽주의의 귀환이 아니다. 꼰대들의 계몽 의지를 거부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 사라져가는 모든 애처로운 것들이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곡진한 성찰은 어떤 일방성을 전제하지 않았다. 진지하고 생동에 찬 대화이고 결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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