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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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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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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620g | 130*200*35mm
ISBN13 9788975276125
ISBN10 897527612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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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그러니까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나 써줬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마커스 가비라는 청년으로 지금 감방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감옥까지?”
“판결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두 형제를 살해한 죄로 기소됐지요. 리처드와 윌리엄 크레이버라고.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교수형인가요?”
변호사 노튼은 환멸적인 탄식을 내뱉고는 서류를 하나 열었다.
“증거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건 피해자들이 일반 신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크레이버 공작의 자제들이거든요.” --- pp.57~58

얼굴을 보기 전에 먼저 소리가 들렸다. 저만치 복도에서 쇠와 나무가 움직이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리면서 마커스 가비가 나타났다. 실제로 그는 가증스런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쇠사슬에 팔목과 발목이 묶인 채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들이 부딪치면서 독특한 소리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커스 가비는 한마디로 이국적인 사내였다. 뿌연 촛불에 살갗이 빛나면서 몸매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외모에서 맨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몇몇 여자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모로코 풍의 숱 많은 곱슬머리였다. (……)
처음 보았을 때 마커스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딘가 석연찮았다. 무엇일까. 그를 데리고 온 간수들은 거구는 아니고, 그렇다고 조그만 체구도 아니었지만 가비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 보였다. 그랬다. 문제는 정상적인 사람보다 대퇴부가 훨씬 더 짧은 다리에 있었다. --- pp.64~65

“다음 날 아침이었을 거요. 광산 앞에 낯선 인간이 서 있더군요.”
나는 노트를 바라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네?”
“남자였어요. 광산 입구 앞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꼭두각시 같았어요.”
마커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몸에 바짝 갖다 붙이며 꼿꼿이 일어선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막연하게 허공으로 시선을 향했다.(……)
“광산에서요?” 내가 물었다. “낯선 인간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처음엔 우리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마커스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황금을 훔쳤나요?”
“아니요. 벌써 말했지만 광산 밖에 있었어요. 밖에서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고요.”
“광산을 엿보고 있었나요?”
“아니요. 광산 구멍을 뒤로한 채 천막 앞에 서 있었어요.”
“흑인이었나요?”
“아뇨, 백인이었습니다.”
“백인이라고요?”
“예, 백인이었어요. 하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백인은 백인인데, 우리 같은 백인종은 아니라는 겁니까?”
“천만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피부가 막 짜낸 우유보다 더 하얀 인종이었다는 겁니다.” --- pp.145~147

포탄이 터졌다. 식당에 떨어졌던 불발탄이 터지면서 대저택에 시퍼렇고 새까만 화염이 치솟았다. 우리는 길바닥에서 하숙집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았다. 이어 4층이 3층으로, 3층이 2층으로, 2층이 1층으로 마치 거대한 아코디언처럼 차곡차곡 접히면서 무너져 내렸다.
핑커튼 부인은 맥마흔의 품에 안겨 구슬프게 울었다. 맥마흔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를 껴안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참담한 비극의 무게를 절감하지 못했다. 저만치에서 핑커튼 부인이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다 잃었다고 한탄하고 있었지만, 나는 연방 웃기만 했다. 다 잃다니? 반면에 나는 잃을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낡은 축음기와 타자기……, 아!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 원고.(……)
“맥마흔 씨, 우린 모든 걸 잃고 말았습니다.”
“모든 건 아니지. 목숨은 아직 붙어 있잖나.”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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