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굴에 뛰어들다]
어느 나른한 오후, 앨리스는 흰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별로 이상할 바 없다고 여긴 순간, 토끼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았다! 그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앨리스는 흰토끼의 뒤를 쫓아 달리다가 깊은 토끼 굴을 발견한다. 우리의 당찬 앨리스! 어떻게 돌아 나올지, 아니 나올 수는 있을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토끼 굴로 뛰어들고 마는데…….
앨리스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찬장에서 병을 하나 집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만 실망스럽게도 빈 병이었다. 병을 그냥 버리려다가 아래 누가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다시 눈앞을 스치는 찬장에 재빨리 도로 집어넣었다.
앨리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사정없이 떨어져 봤으니 앞으로 계단에서 구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겠네. 집에 가면 다들 나더러 용감하다며 감탄을 늘어놓겠지? 이젠 지붕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시침 뚝 떼고 있을래.’
--- p.14
[애벌레의 조언?]
토끼 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는 신기한 경험 - 아니 당혹스럽다고 해야 할까? - 을 하게 된다. 동물들이 말을 하고,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마다 몸 크기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게다가 아름다운 정원이 빤히 눈앞에 보이지만, 몸 크기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정원으로 가는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좌절한 앨리스는 문득 고개를 들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데, 과연 이번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애벌레와 앨리스는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침내 애벌레가 물고 있던 담뱃대를 내리며 한껏 따분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물었다.
“넌 누구니?”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사는 절대 아니었다. 앨리스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난……, 나도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는데, 그 사이에 몇 번이나 바뀌었거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니? 네가 뭘 어쨌다는 거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보다시피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니까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나조차도 뭐가 뭔지 모르겠거든요. 하루에 몇 번이나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면 누구든 헷갈리지 않겠어요?”
“아니.”
--- p.68~69
[체셔 고양이를 만나다]
나름 몸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된 앨리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죄다 괴상해서 도무지 정원으로 가는 길을 알아 낼 수가 없다! 길을 헤매다 공작 부인의 집을 방문한 앨리스는 여태 본 것 중에서 가장 기이한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주방 도구를 죄다 던지는 요리사와 그걸 맞고도 꼼짝하지 않는 공작 부인이라니? 게다가 그 옆에는 항상 웃는 얼굴의 고양이, 체셔 고양이가 앉아 있다!
“혹시 여기서 나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
체셔 고양이가 대답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어디든 상관은 없는데…….”
“그럼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겠네.”
앨리스가 대꾸했다.
“……어디로든 나갈 수만 있다면요.”
“어디로든 반드시 나갈 수야 있겠지.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중략)
체서 고양이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옅어졌다. 꼬리 끝에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마지막에는 미소만 남았다. 미소는 나머지 몸이 다 사라지고 나서도 얼마간 더 남아 있었다.
‘미소 없는 고양이는 많이 봤지만, 고양이 없는 미소는 처음이네. 여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신기해.’
--- p.96~99
[여왕님의 정원에서]
아름답고 청량한 정원, 앨리스는 드디어 여왕의 정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성마른 여왕의 눈 밖에 나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인데, 다혈질의 여왕과 함께 크로케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게다가 공은 고슴도치고, 채는 홍학이며, 골대는 병정들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경기에서 앨리스는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앨리스는 먼저 채로 쓸 홍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부터 익혔다. 홍학의 다리를 위로 가게 한 다음, 몸통을 겨드랑이에 단단히 끼우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홍학의 머리로 공을 치려는 순간, 홍학이 고개를 돌리며 곤혹스럽게 바라보는 바람에 그 모습이 우스워서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중략)
선수들은 아무도 차례를 기다리지 않았다. 동시에 채를 휘두르는 통에 말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고슴도치를 서로 차지하려고 쉼 없이 다툼이 벌어졌다. 여왕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흥분해서 일 분에 한 번 꼴로 발을 구르며 고함을 질러 댔다.
“저놈의 목을 쳐라!” “저년의 목을 베어라!”
--- p.137~138
[소녀, 홀로 모험을 떠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대로 읽기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멍청하다고 지적하는 건 예사이고, 닥치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또 자기 나이가 많으니 아는 게 더 많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앨리스는 당황하기는 해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궁금하면 물어보고 부당하다고 여기면 따지고 든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고, 도움이 되는 건 호기심과 용기뿐이니까!
이 시기의 동화 주인공들은 거의 남자아이였어요. 그마저도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던 데 비해, 앨리스는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 어려움에 맞서 싸워 자신감을 얻으며 스스로 성장해 나가요. 이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어린이에게 상상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새로운 이야기였기에 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와 동시에 어린이 문학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그래서 1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