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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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392g | 128*188*30mm |
ISBN13 | 9788936438883 |
ISBN10 | 8936438883 |
발행일 | 2022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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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392g | 128*188*30mm |
ISBN13 | 9788936438883 |
ISBN10 | 8936438883 |
1막 1장 / 픽업(Pick up) / 어른의 맛 / 연극 연습 1. 벚꽃 동산 / 연기의 연기 / 변기를 찾아서 / 온 우주가 당신을 밀어내더라도 / 사진의 이해 / 외근 일지 / 일의 범주 / 연극 연습 2. 하녀들 / 오디션 / 회의주의자의 하루 / 하녀들의 저녁 식사 / 별책부록 / 굳이 만나는 사이 / 별의별 일 / 밥값의 무게 / 감정 교육 / 연극 연습 3. 고도를 기다리며 / 리콜(Recall) / 나한테 잘해주지 마 / 연극놀이 / 청테이프로 만든 집 / 대머리 여가수는 어디로 갔나 /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작가의 말 |
꽤 오래전 설계사무소를 다녔던 나는, 제시간에 퇴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심지어 현상설계나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하면 집에 가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네 업무가 다 그런 거지 했었다. 회의할 때마다 깨지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도 일을 배우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게 죽을 것 같았는데, 참 이상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다시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슬펐다. 회사라는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일은 이제는 없겠구나 하는, 묘한 기분. 회사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곳이지만, 취직하기 전까지는 미치도록 정규직이 되고 싶은 곳.
대학 때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배우를 꿈꾸던 연희는 4학년이 되자 연극배우의 꿈을 잠시 뒤로 하고 취업을 결심한다. ‘드림출판사’에 인턴으로 취직한 삼 개월 후, 연희는 악명 높은 팀장이 있는 키즈 콘텐츠 1팀으로 발령이 난다. 이 부서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한 동기들을 생각하며 일을 한다. 연희에게는 대학 친구 장미와 연인 종민이 있다. 장미는 같이 연극을 한 친구다. 자신은 현실에 타협했지만, 장미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한심한 듯하면서도 부러움을 느낀다. 사귀고 난 후, 십 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는 종민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와 준 사람은 종민이다. 힘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갈 무렵 키즈콘텐츠 1팀이 기획한 아동전집이 대박 난다. 대박에 힘입어 전집이 홈쇼핑에 론칭을 하게 되지만 별책부록으로 제공한 퍼즐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44)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참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지. 좋은 건 좋은 거고, 힘든 건 힘든 건데.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해결되거나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 이러다가 무대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다 소진해버리면 나중에 뭐가 남는 거지? 뭔가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때로는 형벌 같아.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이걸하고 있는 게 아닌데. (306)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 오십이 넘었다고 해서 내가 진정 어른이 되기는 한 것일까? 나는 좋아한 일에 대해 완주를 하지 못했다. 건축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고, 그와 관련된 회사에 취직했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이라면. 아니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이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것도, 어른이 된다는 것도 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것에 대한 동경과 후회가 뒤섞이는 것.
인생이라는 무대는 그렇다. 입장하는 순간 퇴장하고 싶지만 퇴장할 수 없고, 어떻게든 내가 그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사실. 타인의 정답에 따라 흘러갈 수 없고, 오로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 생각대로 극본을 써야 하는, 내가 주연인 1인극. 어떻게든 내 인생은 굴러왔고, 살아간다. 이제 20대가 된 아이들을 보며 이 녀석들은 자신의 무대를 어떻게 꾸미고 어떤 극본을 쓸지, 걱정되면서도 기다린다. 어떻게든 자신의 인생 무대를 만들어 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는 건 누구든 힘들고 아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면 좋겠다고. 세상 모든 단짠 청춘들이여. 파이팅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고 나니 예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던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연상되기도 했던 즐거운 읽을거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시대 신입사원, 청춘들을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단짠단짠의 연속이었다.
사무실과 월세방을 오가는 주인공 연희는 당장 내일 출퇴근길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공감백배였던 시트콤의 한 토막 같은 회사 생활 이야기도 일품이었다. 원래는 연극배우가 꿈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취업을 준비하게 되고 결국 드림출판사에 취직하게 된 연희는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는 ‘천팀장’과 여차하면 일을 떠넘기기 일쑤인 ‘성대리’와 고군분투 좌충우돌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이 책의 제목은 매일매일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삶의 무대에서 하고 싶지 않은 배역을 맡아 연기해야만 하는 모든 직장인 애환을 표현한 듯 하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 순간이 지나가면 기억 속에만 남겨둬야 한다는 것, 연극과 인생은 닮은 구석이 아주 많다. 나를 매료시켰던 연극의 속성이 실제 삶의 무대에서는 잔인한 가르침으로 돌아와 짓눌렀다.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 한때의 배우 지망생이라는 알량한 자의식이 없었다면 회사생활을 견디기 좀더 쉬웠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연극에 매달렸던 청춘의 시기를 지워버린 나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나’보다 ‘꿈꾸던 시간조차 지워버린 나’가 더 싫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무대처럼 반짝이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회초년생 연희는 드림출판사의 인턴을 거쳐 정규직이 되었다. 배정된 키즈콘텐츠1팀은 폭언을 일삼기로 유명한 천팀장과 일을 떠맡기며 알랑거리기 잘하는 성대리가 있는 곳이다. 이들과 일하게 된 연희는 매일 화장실에 숨어 훌쩍이곤 하지만 카드값, 월세, 공과금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연희는 대학시절의 전부를 연극동아리에 바칠 정도로 연극을 사랑하고 재능이 있었다. 그 꿈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기 장미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낀다. 일을 통해 만난 연인 포토그래퍼 권은 힘든 회사 생활 한탄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기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뉴욕에 10년간 만난 또 다른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배신감을 준다. 그러나 장미와 권은 연희가 힘든 사회초년생 시절을 견디고 꿈을 간직할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연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부당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사회생활은 낭만적인 청춘과는 거리가 있다. 배우를 꿈꾸는 장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을 보여준다. 한차례 막이 내렸지만 다시 새로운 막이 열릴 희연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