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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레니와 마고의 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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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500쪽 | 574g | 133*203*30mm
ISBN13 9791164798209
ISBN10 116479820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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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곳이 대답을 주는 곳이었으면 해요.”
“그럴 수 있지.”
“그럴까요? 종교가 정말 질문에 대한 답을 줄까요?”
“레니, 성경 말씀에서는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도록 그리스도가 우리를 안내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단다.”
“하지만 실질적인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정말 솔직하게요. 신부님은 제 질문에 답을 주실 수 있어요? ‘인생은 미스터리다, 모든 게 신의 뜻이다, 네가 찾는 답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이런 말 말고요.”
“네가 궁금한 게 뭔지 일단 한번 털어놔 보렴. 그래야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신께서 도와주실지 어떨지 함께 알아볼 수 있지 않겠니?”
신도석에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히니 의자에서 삐걱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저는 왜 죽어가는 거죠?”
--- p.22

순진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가장 얇은 붓에 노란 물감을 묻혀 별 그림 아래에 ‘레니, 17’이라고 적었다. 내 걸 보더니 마고도 똑같이 했다. 마고는 ‘마고, 83’이라고 썼다. 그런 뒤 우리는 그림들을, 어둠 속에 빛나는 두 별을 나란히 놓았다. 나는 숫자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눗셈이나 백분율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내 키나 몸무게도 잘 모르고, (예전에는 기억했지만) 지금은 아빠의 휴대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언어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즐거운 단어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두 숫자는 중요했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 둘 나이를 합치면 백 살이네요.” 나는 마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 p.71

또한 그렇게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거로는 충분치 않다. 거대한 실체의 작은 입자로 존재했던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우리는 더 많은 걸 원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살았던 매해를 그림으로 그릴 것이다. 백 년을 기록한 백 개의 그림을. 결국, 청소부가 보고 ‘어이쿠, 웬 그림이 이렇게 많아?’라고 생각하며 그림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린다 할지라도. ‘레니와 마고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 해 한 해를 손으로 꼽아가며 우리의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다.
--- pp.101~102

우리는 매일 밤 죽음을 연습했다. 어둠 속에 누워 휴식과 꿈 사이 무(無)의 세계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면, 그곳에는 자아도 의식도 없고 연약한 몸을 지배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밤마다 죽었다. 설령 죽지 않는다 해도 죽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밝아 올 새 아침을 꿈꾸면서도, 이 세상의 모든 걸 놓아버리려 했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잠들지 못했던 건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잠드는 건 죽는 일과 너무 비슷한데, 엄마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엄마는 의식을 좇고, 삶에 목을 매며 항상 깨어있으려 한 게 아니었을까. 모든 걸 놓아버리기엔 두려운 게 너무 많았던 엄마는 그렇게 몇 년 후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p.259

“아, 전 평생 별들만 보라고 해도 볼 수 있어요. 심지어 망원경도 안 갖고 왔는걸요. 내 눈이 보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요.”
내 차는 뒤에 계속 서있었어. 헤드라이트 때문에 배터리가 나갈 것 같았지.
“다른 차가 또 오면 어떡하죠?” 내가 물었어.
“그럼 수리비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밤이 되겠죠!”
그는 자기가 한 말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기라도 한 것처럼 껄껄거리고 웃었어.
“매일 밤 나오세요?”
“대개는 다락방에서도 충분한데, 이건 제대로 봐줄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게 무섭지 않아요?”
그는 내 질문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어.
“전혀요, 마고. 밤을 두려워하기에는 나는 별을 너무도 깊이 사랑하는 걸요.”
--- p.344

“우리 눈에 보이는 가장 선명한 별도 이미 죽은 별이라는 거, 알고 있어?” 마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뭔가 되게 슬픈 말인데요.” 나는 마고의 손을 놓았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녀는 내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말했다. “슬픈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야. 별들이 얼마나 오래전에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별들을 볼 수 있잖아. 별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있는 거야.”
별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있는 거였다.
--- p.410

마고는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다음, 내가 잘 볼 수 있게 가까운 곳으로 끌어다 놓았다. 케이크 위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검은색 아이싱으로 ‘레니와 마고의 백 번째 생일을 축하해요’라고 적혀있었다.
“백 번째 생일이라고요? 우리가 해낸 거예요?” 내가 물었다.
(중략)
“백 살이 되니 기분이 어떠니?” 아서 신부님이 물었다.
“기분이 묘해요. 제가 열일곱이었던 게 엊그제 같아요.”
“난 여든셋처럼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어.”
마고가 내게 윙크했다. 우리는 케이크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고, 마고와 내가 지상에서 맞은 백 번째 기념일을 함께 축하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생이었다. 사람들이 가져온 그 빛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내 옆에 남아있었다.
--- pp.465~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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