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2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588쪽 | 610g | 140*200*35mm |
ISBN13 | 9791156751298 |
ISBN10 | 1156751292 |
발행일 | 2022년 12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588쪽 | 610g | 140*200*35mm |
ISBN13 | 9791156751298 |
ISBN10 | 1156751292 |
MD 한마디
[위화가 복원해낸 근대 대격변기의 중국] 190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23년에 걸쳐 집필한 위화의 신작 장편소설. 시대의 격변은 평범한 시민의 운명을 어디까지 뒤흔들까. 미지의 도시 ‘원청’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처럼, 모두가 가슴 속 ‘원청’을 품고 산다면 수많은 다짐들이 현실이 될 것만 같다. - 소설 PD 이나영
한국어판 서문 -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원청 또 하나의 이야기 |
우리나라의 구한말에 해당하는 중국의 청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시대에 이르는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위화의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난세에 어려운 삶을 살아가지만 모두 평범하고 심성이 착한 백성들이다.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위화의 작품 특성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주인공은 역시 일반 백성들이다. 전쟁과 기근으로 일반 시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토비(도적)가 되며, 시민을 지켜야 할 군인은 오히려 시민을 강탈한다. 바람이 불면 먼저 몸을 굽히는 민초들은 가혹한 운명의 흐름에 순응하기도 하고 가끔씩 도전하기도 하지만 저마다 타고난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많은 등장인물 중에 주인공은 린샹푸와 샤오메이다. 스토리 라인은 다음과 같다. 린샹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이고 착한 농사꾼에다 목공기술까지 익힌다. 그는 결혼운이 없어 혼자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샤오메이와 결혼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샤오메이는 린샹푸 집안의 재산을 가지고 사라졌다가 임신한 상태로 아이를 낳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새출발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다시 한 번 사라지는 샤오메이. 그 이후 이야기는 갓난아이를 앉고 샤오메이를 찾아나서는 린상푸의 모험과 어려운 시대적 상황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된다.
린상푸의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샤오메이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린샹푸와 엮이게 된 배경, 그리고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한 사연들이 설명된다. 어려운 시기를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운명과 결단의 순간들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파란만장한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어 앞으로 무슨 운명이 다가오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책을 덮고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위화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감의 힘 때문인가 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라고 말하며 공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책의 감동적인 대목에서 문득 발견한 눈물자국과 같이, 눈물과 눈물이 만나고 감동과 감동이 만나는 순간이 바로 공명인데 소설 <원청>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이다. 샤오메이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소개한 '원청'은 사실 존재하지 않은 상상의 도시이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원청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시진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모두의 가슴에 원청이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알 수 없는, 또 찾을 수 없는 일이 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만 이해한다면 서로 공명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읽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예상보다 오래 읽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부유하는 시간의 잔재들이 떠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영혼이 채 영글지도 않았던 사춘기의 어느 시점에 용하다는 어느 무당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정해준 까닭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줄곧 자신의 삶 언저리에는 언제나 사춘기에 경험한 그 무당의 말이며 행동들이 시간에 부식되지 않은 채 쟁쟁거리며 떠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영혼이란 이렇듯 허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영혼의 지배를 받는 개인의 삶 또한 작은 운명의 둑이나 언덕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너무나 중한 나머지 예정된 운명의 향방을 미리 점쳐보거나 가늠해 볼 시간조차 없었던 운명 무지렁이의 삶은 얼마나 담대한 것인가.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편의 당혹감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p.546)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신작 소설 <원청: 잃어버린 도시>는 600쪽에 가까운 장대한 분량임에도 가독성이 좋아 생각보다 빠르게 읽힌다. 주인공인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삶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이 소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재주도 많고 의지도 강한 사람이었지만 그마저도 그가 살았던 불운한 시대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자취를 감명 깊게 그려내고 있다. 청왕조의 끝자락인 신해혁명기,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백성들이 무기를 모아 다른 무고한 백성들을 수탈하는 토비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무정부 상태의 암흑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양쯔강 건너 남쪽 600리 아래 도시를 일컫는 '원청'을 소설의 제목으로 내세움으로써 존재하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인간 군상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여 책을 덮는 독자들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안도하는 한편 시대의 역경 앞에서 너무도 쉽게 꺾이는 인간의 삶을 생각할 때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허무와 상실감에 한동안 사로잡히게 된다.
"이 북쪽 출신 농민은 땅에 대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이가 엄마 품에 매달리는 것과 비슷한 절절함을 가지고 있었다. 12년 전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딸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았을 때 그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처음 완무당, 물과 땅이 어우러진 그 넓은 전답을 보았다. 뿌리째 뽑힌 나무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벼가 짓밟힌 잡초처럼 여기저기 쓰러져 있으며, 망가진 배의 판자 조각, 수북한 띠, 굵은 나무와 뼈대만 남은 지붕이 수면 위로 떠내려가고 있었음에도, 린샹푸는 그 엉망으로 망가진 풍경 속에서 원래의 풍요로운 완무당을 볼 수 있었다. 노부인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미모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p.147)
소설의 주인공인 린샹푸는 '원청'에서 1000리 떨어진 황허 부쪽 남자로 5살에 아버지를, 19살에 어머니마저 여의었지만 적잖은 재산과 단단한 성품을 물려받았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목공 기술을 익힌 그는 집사인 톈다 5형제의 보살핌을 받고는 있으나 혼인을 하지 못한 24살의 노총각이 된다. 그해 가을, 꽃문양 치파오를 입은 여자와 그녀의 오빠라는 남자가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청하고, 이튿날 오빠라는 남자 아창은 아프다는 동생 샤오메이를 두고 떠난다. 곧 데려가겠다는 약속만 한 채. 홀로 남겨진 샤오메이는 린샹푸와 관계를 맺고 다음 해 초봄 보름치 음식과 새 옷을 지어 집에 남긴 채 린샹푸의 금괴를 훔쳐 사라진다. 다섯 달 만에 또 혼자가 된 린샹푸는 오열했으나 얼마 뒤 아이를 밴 채 나타난 샤오메이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또 떠나면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라던 린샹푸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샤오메이는 출산을 한 후 곧 사라진다.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p.559)
전 재산을 집사에게 맡긴 린샹푸는 딸아이를 업은 채 샤오메이와 아창이 왔다는 도시 '원청'을 향해 떠난다. 100여 집의 젖을 먹었다 해서 붙인 딸의 이름은 린바이자(林百家). 이 딸에게 젖을 얻어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찾아 들어간 집의 큰아들 천야오우는 그때 두 살이었다. 오누이처럼 성장했던 그들의 운명은 토비에게 인질로 끌려가던 린바이자를 대신하여 잡혀갔던 천야오우에 위해 뒤바뀐다. 토비에게 귀를 잘리고 고문을 당했던 천야오우.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틋하다. 어쩌면 그들도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운명처럼 기구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몸을 팔아 남편의 아편 값을 대는 여자 추이핑과 그녀에게 자신의 남은 삶을 의지하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과 상인회 회장 구이민 등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기는 린샹푸의 이야기도 펼쳐지고, 장도끼와 스님 일파와 같은 토비들이 저질렀던 일반인에 대한 잔혹한 행위와 이에 맞서는 상인회 회장 구이민을 비롯한 민병대원들의 처절한 대응도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당시 무정부 상태 중국의 일반 백성들이 겪었던 참혹한 삶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민중의 삶이 절절하기만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부유하는 시간의 잔재들이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