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다. 진정 능력주의는 20대 남성의 정치적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는 가치인가. 능력주의는 구조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평등을 낳는다. 그런데 20대 남성은 다른 세대의 남성보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사회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사회적 안정망 및 복지제도에 대한 요구도 높다. 다른 세대 남성도 아닌 20대 남성이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어딘가 부정교합처럼 느껴진다.
이 글에서는 부정교합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과연 시의적절하냐, 비판할 수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겪으면서 이준석, 박지현 등 대표적인 청년 정치인들이 퇴장했다. 청년 의제도 같이 사그라지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난 대선에서는 청년층 중심의 공정 담론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었던 반면, 사회의 다양한 균열을 반영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은 부재했다. 실체 없는 청년이 노동자, 학생, 취업준비생, 창업자 등 다양한 형태로 실재하는 청년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공정 담론에 주목할 때다. 정치적 갈등을 미답으로 남겨두는 것은 언제든 점화할 수 있게 방치하겠다는 의미다. 지역주의라는 망령이 선거철마다 한반도 일대를 떠돌듯, 청년을 강제 소환하는 정치가 선거 국면을 배회하게 둘 수는 없다. 가장 이상적인 출구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공정을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일시적인 봉합을 넘어 새로운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으로서 ‘역량(capabilities) 접근’을 생각해본다.
--- pp.46~47
한국 사회 청년세대의 불안은 단순한 ‘불안’의 감정뿐 아니라, 좌절과 분노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사회에 의해 정의되는 ‘청년’들은 끼인 세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안을 표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바탕으로 한 청년세대의 불안은, 이를 넘어 세대 간 갈등과 젠더 갈등,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자리를 능력이 부족한 어떤 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오해 속, 청년세대는 방황한다. 그러나 청년세대에서 발생하는 폐단과 오해를 청년 각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는 제도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이며, 우리 현실 정치의 문제다. 청년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바, 윗세대에서는 청년들의 무게감에 대해 역설하고, 아랫세대에서는 청년들을 일종의 ‘어른’으로 파악하며 그들을 보며 성장한다.
한편 현실 정치 속에서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각종 공약을 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현실 정치로부터 청년들의 눈을 돌리게 한다. 또는 이를 지키더라도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왜곡해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청년들을 속이며 자신의 지역구의 표심을 얻으려 한다. 이런 정치적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없다는 불안, 그 감정은 좌절과 분노로 발현되고, 특히 분노는 자신과 비교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대상에게 향한다. 비교 가능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불행을 대비하며 드러나는 세대 갈등, 다른 성별과의 차이 및 차별이 가시화되며 나타나는 젠더갈등 등이 그 예라 하겠다.
--- p.88
여성 혐오는 현재까지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대표적인 구조적 혐오다. 비록 약 23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일들이 많다. 기분이 좋았거나 이득이 되는 일들은 아니었다. 이 글의 서두에 등장했던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게 된 사실을 할머니께 알리는 상황에서, ‘데모’에 대한 걱정 다음으로 들은 이야기는 “정외과? 그것도 여자가…”였다. 상처가 되는 말이었고, 내가 손녀가 아니라 손자였다면 반응이 달랐을까 싶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살아오신 세상은 ‘여자가 정치하는’ 시대는 아니었으니, 충분히 이러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머니와 친척 어른께서 “정외과에는 너처럼 워낙 기 센 여자애들이 많아서 남자들이 기를 못 펴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여학생들이 워낙 야무지다는 칭찬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칭찬이 남학생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의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나는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남성의 앞길을 막지 않을 정도의 여성이어야 한다는 거야?’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옳지 못하다고 따지는 나에게 어른들께서는 농담도 못 하냐고 하셨지만, 농담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야 농담이다. 이는 기분이 나쁜 정도를 넘어서서 능력 있는 여성에 대한 이 사회의 평가 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이었기에, 스스로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p.146
이름하여 학생증 사태. 장소는 그의 집 앞 카페다. 때는 커피 한 잔과 그냥저냥 간만의 여유 시간을 만끽하고 있던 날.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커플 하나가 느닷없이 앞에 오래 서 있더랬다. 삼 초, 사 초, 일상생활의 상호작용 규범 위반 정도가 차츰 심각해지자 웬일인가 싶었다. 올려다보며 말씀하시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랬더니 곧바로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름 아닌 학생증 두 개였다는 것이다. 저희 고대생인데요, 자리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위반 실험의 한 장면으로서가 아니고서야 그려보기만도 어려운 일이다.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마패를 떡 들이밀면, 삽시간에 좌중이 술렁이고 카메라가 돌며 꽃비가 내리고 어이쿠 지체 높은 분 납셨다며 홍해 갈라지듯 길 터주는 그런 전개를 기대한 것일까. 한술 더 기막히게 뜨는 코너가 남았다. 어리둥절한 마음을 붙잡은 지인이 그보다 ‘높은’ 곳이라 인식되는 대학의 학생증을 주섬주섬 꺼내 보이자 “죄송합니다” 하며 잽싸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나, 둘, 셋, 카드를 탁 까면 누구누구 숫자가 더 큰가 결판나듯이 되어버렸 다. 웃기지만 슬프다는 말이 이보다 알맞을 때가 없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