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20쪽 | 290g | 128*188*15mm |
ISBN13 | 9791191861167 |
ISBN10 | 1191861163 |
발행일 | 2022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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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쪽 | 290g | 128*188*15mm |
ISBN13 | 9791191861167 |
ISBN10 | 1191861163 |
MD 한마디
[아니 에르노의 기억 속 마지막 퍼즐]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가 2016년에 발표한 작품. 소설가 백수린이 번역했고, 에르노가 써야만 했던 ‘1958년 어느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타의로 자기가 상실되는 경험을 해봤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잃었던 자신의 퍼즐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 소설 PD 이나영
(독서후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50년 전 나와의 조우 <여자아이 기억>
“나 역시 그 여자아이를 잊고 싶었다. 정말로 그녀를 잊기를, 그러니까 그녀에 대해서 더 이상 쓰고 싶은 욕구를 갖지 않기를. 그녀와 그녀의 욕망과 광기, 그녀의 어리석음과 오만, 그녀의 허기와 말라버린 피에 대해 써야만 한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를. 나는 끝내 그렇게 되지 못했다. (16쪽)
끝내 그러지 못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히려 더 자세하게, 꼼꼼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리마스터링하고 디지털화하여 1958년의 그녀를 소환시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AI를 결합하고, VR로 죽어버린 자녀를 만나는 홀로그램 장치처럼, 완벽하게 그리고 괴롭게 그녀는 자신의 잊고 싶은 자신을 끔찍하게 만나고 기록한다.
”나는 매일, 빠르게, 내가 쓰는 날짜를 1958년의 날짜와 정확히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글을 이어갔다. 무질서하게 떠오르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중단되지 않는, 매일 매일의 기념일을 챙기는 방식의 글쓰기가 45년이란 세월의 간극을 무너뜨리는 데 가장 적합한 것처럼 느껴졌다. (17쪽)
그녀는 1958년, 잊을 수 없는 H와의 만남의 기억이, 50년의 세월에도 무색하게 불쑥 나타나 또 다른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녀는 글을 쓰면서 다시 무너지고, 1958년의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1958년의 그 여자아이는 그러니까 내 안에 숨은 채 확고부동하게 존재하고 있다. ... 그 여자아이는 내가 아니지만 내 안에서 실재다. 일종의 실재하는 현존.” (24쪽)
그녀는 기억 속의 여자아이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이야기일 거라고 회피하지만 여전히 세월을 뛰어넘어 실재하는 현존임을 깨닫는다. 무섭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써야 했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블록쌓기처럼 배열해야 했다. 그것이 결국 50년 전의 여자아이가 지금의 늙은 작가와 합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과연 이런 장르를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주인공과 작가가 책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아이러니한 비극을. 저자는 3인칭 시점도 아니고, 소설 속 화자가 되어 자신의 소설쓰기를 함께 버무린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손을 그리는 바로 그런 작품처럼.
“글을 써나갈수록, 내 기억 속 이야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단순함이 사라진다. ... 의심 : 나는 내 글쓰기의 한계를 실험하고 글쓰기가 현실에 가능한 한 가까이 밀착할 수 있또록 밀어붙이기 위해 내 인생에서 이 순간을 펼쳐보이길 은연중에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74쪽)
1958년 여름방학 캠프에서 H와 하룻밤을 보내고, 여자아이는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된다. H만을 갈구하면서, 여러 남자와 계속해서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 H는 여자아이의 인생에 50년이 지나서까지 그를 생각하고, 그 일을 잊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인 기억을 남겼는데, 정작 H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그 부부는 1960년대에 결혼했고, 그들에겐 많은 자녀와 손주들, 증손주까지 있다고 한다. 남자의 인생.
...
이 남자와 보낸 두 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데도 나는 그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불균형.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 (131쪽)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여전히 40년이 지나서도 여자이이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씀으로써 오히려 더 확고하게, 50년 전의 여자아이의 기억을 미라처럼 만들어 놓는 것.
그래서 여자아이가 50년이 지난 뒤, 지금의 자신으로 환생하듯 완벽하게 복원되는 것.
매우 작고 얇아, 문고책 같아, 한 손에 쥐고 후르륵 면치기하듯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앙증맞은 책.
그러나 책 속에는 1958년부터 지금까지 기억의 더께가 의식의 흐름과 세월의 왜곡과 의지의 거부와 켜켜이 엎어지고 얽히고 꼬이고 쌓여있어,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결연한 의지로 끝내 이 책을 다 완성한 것처럼, 독자인 나도 결연하게 글쓰는 그녀와 1958년의 그녀를 동시에 읽어낸다. 그 호흡을 따라간다.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1958년의 여자아이는 욕망, 광기, 어리석음, 오만, 허기였을까.
아니면, 사랑, 사랑, 사랑이었을까.
나는 그래서 50년 전, 40년 전의 남자아이를 떠올린다.
결국 그때의 나를 만나지 않고서 내 인생을 완성시킬 수 없다면,
나 역시 1980년의 남자아이를 만나러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