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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 파람북 | 2022년 1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4 리뷰 41건 | 판매지수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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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60g | 131*192*22mm
ISBN13 9791192265834
ISBN10 1192265831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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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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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
--- p.23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新生)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 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 마리가 달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모든 말이 소리를 토해내며 달려갔다. 말들의 울음소리는 날카롭게 치솟았다. 말들은 한없이 달렸다. 초승달은 가늘었고 빛에 날이 서 있었다. 초승달이 희미해지면 말들은 사라지는 달을 향해 소리를 모아 울면서 더욱 빠르게 달렸다. 초승달이 지고, 달 진 어둠에서 흐린 별이 보일 때까지 말들은 달렸다.
--- p.48

해가 수평선 쪽으로 내려앉고 바다와 하늘이 붉어지면, 비혈마들은 저무는 해를 향해서 달려갔다. 노을은 빛 속에 어둠을, 어둠 속에 빛을 품으면서 어두워졌다. 비혈마들은 어둠에 잠겨가는 마지막 빛을 향해 더욱 빨리 달렸다. 소멸하는 빛에 비혈마들은 조바심쳤다. 말들의 눈동자에 저무는 빛이 번득였다. 밤에 말들은 해안에 당도했다. 말들은 고개를 들어서 인광이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안에서 말들은 건너갈 수 없는 저쪽을 향해 높이 울었다. 말들의 이마에 박힌 흰 점에서 빛들이 흔들렸다. 새벽에 말들은 초원으로 돌아왔다.
--- p.70

전쟁의 조짐은 신기루와 같았으나, 희뿌연 것이 더 확실히 세상을 사로잡았다. 백성들이 가을걷이를 서둘러서 들을 비웠고, 곡식을 항아리에 담아서 땅에 묻었다. 젊은 군장들은 닥쳐올 싸움에 가슴이 설레었고, 군장의 젊은 아낙들이 그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 p.94

산 자는 죽은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기에 죽일 수가 없었고, 죽어 널브러지고 문드러진 자세로 산 자를 조롱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영광에 침을 뱉고 있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뒤엉켰지만, 죽은 자에게는 산 자의 칼이 닿지 않았다.
--- p.115

아기손꽃은 요의 신기로 피어났는데, 영험한 능력이 있어서 이 꽃에 다친 몸을 비비면 상처가 아물고 어혈이 풀렸다고 부락민들의 이야기는 전한다. 팔풍원 전투에서 다친 군병과 말, 개들이 아기손꽃 위에서 한나절씩 뒹굴고 나면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걸어갔다고 한다.
--- p.128

야백은 성벽의 순찰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앞 다리가 땅에 닿기 전에 뒷다리가 땅을 차서 몸은 무게를 버린 듯이 빠르게 흘러나갔다. 네 다리는 몸을 공중으로 띄울 뿐, 몸이 스스로 나아갔다. 재갈과 안장이 없이, 방향도 없이, 사람을 태우지 않고, 야백은 순찰로가 끝나는 상양성의 끝까지 달렸다. 별이 깔려서 눈이 내리는 듯했고, 야백의 이마 빛에 푸른 서슬이 돋아났다.
--- p.148

이 유역의 눈은 물기가 많이 배어서 촐싹거리지 않았다. 눈송이는 무겁고 알이 굵어서 땅에 내려앉을 때 갈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를 냈고, 눈 쌓이는 소리가 설원에 가득 차서 밤새 수런거렸다. 눈 오는 저녁이면 아이들은 일찍 잠이 들었는데 사람들은 눈 쌓이는 소리가 아이들을 쓰다듬어 재운다고 말했다.
--- p.169

말을 타고 달릴 때 말이 몰고 가는 모든 힘은 말 탄 자의 창끝에 한 점으로 집중되었다. 집중은 빛나고 강력했다. 닥쳐오는 힘이 지나간 힘을 끌어당겼고, 지나간 힘은 닥쳐올 힘과 합쳐지는 순간에 다시 살아나서 창끝의 힘은 늘 살아 있는 현재였다.
--- p.196

근본 없는 백성들이 버섯처럼 돋아나서 마을들을 이루었다. 다스림이 헐거웠으나 풍속은 순했다. 땅 힘이 두텁고 비바람이 부드러워서 초목의 결실이 넉넉했고 짐승들이 때맞추어 털갈이를 하였다. 문자가 없어서 쓰거나 읽지 못했으므로 말로 전하는 이야기들이 어지러웠으나 지나간 일들이 살아 있는 자들을 가두지 않았다. 월은 나라가 아니므로 월의 지경(地境)이 어디까지인지를 말할 수 없다.
--- p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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