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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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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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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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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608g | 153*224*30mm
ISBN13 9788995884904
ISBN10 899588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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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덕일 / 김병기 /신정일
이덕일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예리한 시각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냄으로써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이다. 『교양 한국사 1~3』,『조선왕 독살사건』,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공저),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장군과 제왕』,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등, 학문적 깊이와 지적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역사서를 다수 집필했다. 일제 식민사학과 중화사관의 왜곡을 벗겨내어 한국사의 참모습을 복원하고, 더 나아가 우리 역사의 광대했던 대륙성과 해양성을 되살리는 것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역사 저술에 힘쓰고 있다.

김병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증조부와 부친을 이어 가학(家學)인 한국사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증조부 김승학 선생은 <독립신문> 사장과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한국독립사』를 펴낸 역사가이기도 했으며, 그의 부친 김계업 선생 역시 대한독립운동총사 편찬위원장으로서 『한국민족총사고』를 저술한 역사가이다. 이런 가학의 배경에서 민족주체성에 입각해 우리 역사에 덧씌워진 중화사관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벗겨내고 우리 역사의 본래 모습을 복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국대에서 한국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전문위원으로 한국사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3』(공저), 『한국사의 천재들』(공저)이 있다.

신정일
문화사학자이자 답사가.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묻혀 있는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1989년부터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다시 쓰는 택리지 1~5』,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지워진 이름 정여립』, 『나를 찾아가는 하루 산행 1, 2』, 『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 『금강 401km』, 『섬진강 따라 걷기』, 『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1~3』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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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자가 동쪽으로 가서 조선을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쪽 조선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동쪽에 이미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사 교과서는 이런 기술을 외면한 채 단군조선도, 기자조선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사 교과서는 위만조선이 사실상 고조선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모순이 생겼다. 중국 기록에, 위만이 조선왕이 되기 전에 조선에는 이미 부왕과 준왕이라는 임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는 부왕과 준왕이 단군조선을 계승한 인물인지, 기자조선을 계승한 인물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고,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모두 부인한 채 마치 위만조선만 실재했던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 <1.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어떻게 가르치나?> 중에서(p. 22~23)

국사 교과서의 “동방의 예와 남방의 진”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구절일까? 이는 놀랍게도 이병도의 1948년도 판 『조선사대관』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 이병도는 왜 동쪽의 진국이 남방의 진국으로 바뀌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의 『한국고대사연구』에도 진국과 진왕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서술했을 뿐, 왜 동쪽이 남쪽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고 있다. 이병도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렇게 서술한 지 60여 년이 지났건만, 실증사학을 표방하는 국사 교과서는 아직도 동쪽의 진국을 남방의 진국이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의 예도 마찬가지다.
― <1.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어떻게 가르치나?> 중에서(p. 32~33)

조한전쟁 때 한나라에 항복한 조선 항신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후로 책봉받은 후 자자손손 영화를 누렸을까? 항신들의 뒷이야기를 추적하면 고조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 우거왕의 아들인 장항은 조선 부흥운동 세력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거왕의 아들이라면 부흥운동의 군주로 충분한 혈통적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부흥운동의 싹을 끊어버리기 위해서 한나라 군이 그를 때려죽였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조선 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조선의 멸망 후에도 조선 부흥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산동반도 지역에 봉해졌던 홰청후 참과 하동 지역의 기후 장항까지 부흥운동에 가담했다면 그 지역도 광범위하다. 이 광범한 지역에서 고조선 유민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 <5. 고조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p. 86~92)

고조선 멸망 48년 후에 등장하는 단군에 대해 『삼국유사』는 「단군기」를, 『제왕운기』는 「단군본기」를 인용해 단군과 해모수를 동일 인물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북부여를 세운 단군, 즉 해모수는 고조선 왕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 ‘북부여조’에 천제가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한다”며 주몽의 건국을 예견하는데, 이는 주몽 역시 고조선 왕실의 후예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고조선은 멸망했으나 그 유민들은 경주 부근에서는 박혁거세와 손잡고 신라를 건국하고, 고조선 왕실의 후예들은 부여와 고구려를 건국하는 것이다.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고조선 후예들의 왕국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 <5. 고조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p. 97)

낙랑군의 위치를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갈석산이다. 『사기』 「하(夏)본기」에 인용된 갈석에 관한 『태강지리지』의 주석에 그 단초가 나와 있다.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는 구절이다. 갈석산이 있는 곳이 낙랑군이며, 바로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것이다.
한국 학자 중에서는 이병도가 이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는 『한국고대사연구』 ‘낙랑군고’에서 수성현에 대해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썼다. 낙랑 수성현의 遂(수)자와 황해도 수안의 遂(수)자가 같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가 이런 비실증적인 주장을 한 이후 낙랑 수성현은 황해도 수안으로 둔갑했고, 이곳이 졸지에 장성의 기점으로 변했다. 이로써 오늘날 중국의 여러 박물관 지도들은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연장해서 표시하고 있다.
― <6.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중에서(p. 106~107)

낙랑군이 고구려에게 멸망하는 것은 이보다 281년 후인 미천왕 14년(서기 313) 때이다. 대무신왕 15년에 망한 낙랑이 어떻게 미천왕 14년에 다시 멸망할 수 있을까?
이는 한국 고대사에 낙랑이란 이름의 정치세력이 둘이 있었음을 뜻한다. 하나는 최리가 국왕으로 있던 낙랑국이고, 다른 하나는 한사군의 낙랑군이다. (……) 대동강 유역에 있던 국가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이며, 낙랑군은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 <6.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중에서(p. 114~117)


유럽에서 선철이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4세기경부터였다고 하며, 선철로부터 강철을 얻는 제련 방법이 사용된 것도 대략 이때부터라고 한다. 그전에 사용했던 강철은 연철을 단조하여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 사람들은 기원전 수백 년 전에 이미 연철과 선철을 제련하고 강철도 제련하여 사용했다. 이는 고조선 사람들의 철에 대한 지식과 가공 기술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준다.
― <8. 고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중에서(p. 179)

길은 끝없이 편평하다. 자동차에 실려 앞으로 가는 길과 뒤에 남겨진 길을 구별할 뿐이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가 없다. 바라보면 막막하기만 한 끝없는 벌판, 이처럼 넓은 벌판이 우리의 옛 땅이었다니, 반도에 갇혀 살아온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우리 옛 선인들은 이 땅을 우리의 역사 속에 포함시키기를 꺼려했다.
― <11. 고조선, 아! 고조선이여> 중에서(p. 248)

헌원은 치우와 탁록에서 싸웠다는 중국인의 시조이다. 중국인들은 헌원로에 거대한 귀근원을 세우고 그 안에 중화삼조당을 세워놓았다. 중화삼조당이란 중국인들의 조상인 염제 신농씨와 황제 헌원씨,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의 조상이 아니었던 치우씨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치우는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것이 이덕일 선생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현재 동이족의 조상까지 자신들의 조상으로 편입시켰다는 뜻이 아닌가? 중국땅에서 이른바 동북공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뿌리박혔는지 새삼 실감했다.
― <11. 고조선, 아! 고조선이여> 중에서(p. 280~281)

적봉 박물관에 들어가기 직전 우리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박물관에 비파형 동검을 비롯한 청동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을 경우 무슨 수를 써서든 사진을 찍는다는 거창한(!) 작전이었다. 작년에 왔을 때 청동 유물들을 다 치워버려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시 갖다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짠 계획이었다. 이덕일 선생이 작년, 적봉 박물관에 비파형 동검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왔었지만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북경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유물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찾아오면 일부러 치웠다가 그들이 가면 다시 꺼내서 전시한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년엔 없었던 청동 유물들이 보였다. 그때 여직원 한 명이 우리를 따라붙었다. 플래시만 터지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자 중앙에서 특별한 지시가 내려와서 절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우리는 작전대로 재주껏 사진을 찍었다.
― <11. 고조선, 아! 고조선이여> 중에서(p. 286~287)

---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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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바로잡기’ 시리즈에 대하여

-이슈와 쟁점으로 한국사의 진실을 재점검하는 새로운 역사 읽기의 장!
식민사관과 중화주의로 인해 왜곡되고 뒤틀린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모순들. 우리 역사에 덧씌워진 이념의 장막들을 이제는 말끔히 걷어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올바른 정체성, 더 나아가 세계 속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학계의 입장 차이로 굳어진 통설이나 그릇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재점검해야 한다. 이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시리즈는 역사학계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논쟁의 불씨들을 끄집어내 풍부한 사료와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의 산물이다. 이 시리즈는 고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 발해, 백제 등 앞으로도 한국사의 이슈와 쟁점을 찾아 우리 역사의 진실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의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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