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물원, 목장, 도축장, 유기 동물 보호소, 동물 부검실…
다양한 공간의 동물들에 관한 속 깊은 이야기
수의사로 일하는 동안 저자는 다양한 공간을 거쳐 왔다. 현재 일하는 곳인 광주 우치 동물원 외에도 대관령 목장, 도축장, 연구원 등 여러 장소에서 동물들을 돌보아 왔다.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은 저자가 머물렀던 일터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동물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반려동물의 의미와 동물원의 존재 이유
1장에서는 광주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연구원 옆 동물보호소를 드나들며 만났던 유기견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주인에게 버림받고 동물보호소에 들어와 안락사의 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분양해 주는 사업을 기획해서 추진한 적이 있다. 동물에게는 새로운 안식처를, 사람에게는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만들어 주는 이 아름다운 일에 종사하는 동안 있었던 일들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물들을 새 가족으로 맞아 삶의 온기를 되찾은 사람들의 사연은 ‘반려동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생명이 주는 사랑과 안도감 그리고 삶의 충만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들이 보여 주는 사랑의 지속 기간은 정말 길어서 때로는 평생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 무한한 애정과 충성의 기쁨은 가족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동물들이 한결같아서 참 다행이다.(32면)
2장에서는 저자가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는 우치 동물원 이야기를 다룬다. 광주광역시 우치공원에 있는 우치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동물원으로 700여 마리 동물들의 보금자리이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물들의 모습, 저녁나절이면 한바탕 펼쳐지는 동물들의 합창, 겨울나기를 위해 털갈이를 하는 모습 등 동물원 풍경이 섬세한 관찰력과 다정한 필치로 묘사된다. 동물원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동물 세계가 약육강식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협력하는 세계이며, 동물의 본능이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것임을 설명하는 등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수정하기도 한다.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수의사의 견해도 담았다.
동물원 동물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자연에서 온 손님이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 다양한 생명들의 움직임, 호흡과 울음소리는 그 자체로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 준다.(35면)
가축이 지닌 생명의 무게
3장은 저자의 첫 근무지였던 대관령 목장 이야기를 담았다. 수의사로서 첫 인공 수정을 하던 날, 목부들과 더불어 소들의 출산을 돕던 일, 소의 지병을 치료하던 일 등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 속에 양질의 우유를 생산하고 젖소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목부들의 헌신을 담았다. 우유가 어떤 노력을 거쳐 우리에게 배달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 수의사! 이렇게 해야 송아지 입과 코 속에 남은 양수가 남김없이 빠져나와 자유롭게 숨을 쉬게 되는 거여.”
그건 알겠는데 그 덕분에 아저씨는 온몸이 양수와 소똥에 완전히 젖어 버렸다. 아저씨에 비하면 소들이 훨씬 깨끗한 편이었다.(129면)
4장은 광주의 한 도축장에서 도축 검사관으로 일하는 동안 알게 된 것들을 담았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한, 도축 검사는 수의사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업무이다. 저자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축장 한복판에 서서 그 안의 풍경을 전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느꼈던 수의사 자신의 번민, 희생되는 가축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도축장에서 일하는 도부들의 애틋한 마음 등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소를 위해 헌신한 과학자도 소개하면서, 소가 더 나은 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도 짚어 보고 우리의 식탁 문화 또한 되돌아본다. 가축을 단순히 육류 생산 도구가 아니라 생명으로 바라보고 그 생명의 무게를 묵직하게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축장에서 일한다고 해서 죽음에 무감각해하거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더욱 생명을 아끼고 돌보고, 살아 있는 동물에 애착을 가진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날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161면)
동물 부검 현장과 야생 동물의 소중함
5장은 동물 부검실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동물들도 사람처럼 사인이 석연치 않을 때 부검을 한다. 물론 동물들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보다는 다른 동물들도 같은 이유로 죽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부검을 한다. 저자가 묘사하는 동물 부검 과정은 마치 동물판 「CSI」라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죽음의 원인을 하나하나 추론하고, 프로파일러처럼 동물의 움직임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동들을 함께 전한다. 이국땅에서 의연하게 생을 마감한 백곰에게 느낀 감탄, 투병 중에도 진한 모성애를 발휘한 바바리양에게 느낀 감동, 별똥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보고서에는 급성 폐렴이라고 적었지만, 이건 그저 과학적인 기록일 뿐이고 내 가슴속에는 이미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것을 못 느낀다면 진정한 부검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부검의란 과학적인 사실 너머에 있는 동물들의 진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것을 통해 동물의 죽음을 더욱 멋지게 장식해 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195면)
6장은 도시나 도시 근교에 사는 야생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만을 따로 모았다. 사람들이 무심한 탓에 잘 포착하지 못하지만 도시에는 아주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사람의 그 무심함 덕분에 도시 생태계는 꽤 안정적인 단계까지 성장했다. 저자는 반려동물에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아쉬워하면서 도시에 사는 다른 야생 동물들도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로드 킬을 막는 대안, 스라소니와 수달 같은 멸종 위기 종들의 현실, 농약 등으로부터 철새를 지켜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한다. 도시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과 공존, 상생해야 한다는 것은 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로드 킬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동물들의 처참한 죽음 앞에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공감 능력은 기르고 욕심은 조금 버리는 것이 도로 위의 죽음을 막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238면)
2. 동물과 함께하는 직업의 매력
다양한 공간에서 얻은 경험담들은 그 자체로 수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보여 준다. 흔히 수의사라고 하면 동물 병원만을 상상하지만,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훨씬 많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청소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수의사는 물론 동물과 함께하는 다양한 직업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진지하게 진로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