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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주식 클럽

구로동 주식 클럽

: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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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00g | 138*195*18mm
ISBN13 9791168125407
ISBN10 116812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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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준수는 서울특별시 구로동에서 주식 중독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준수의 주식 중독 클리닉에도 행복한 일로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클리닉에 온 이들은 대부분 주식투자로 큰 경제적 손실을 본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안색은 흙빛이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준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면서 쉽게 말을 떼지 못하는 것만 봐도 환자가 대충 얼마를 잃었는지 감을 잡았다. 준수는 ‘삼프로TV’와 KBS, YTN 뉴스에서 주식 우울증, 주식 중독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난 뒤로 서울에서 손꼽히게 많이 이 분야를 다루게 되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주식 관련 환자는 하루 서너 명 수준이었으나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주식 우울증을 호소하며 클리닉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두 배 이상 늘었다. 2022년 6월부터는 하루에도 열 명 이상이 주식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아왔다. 주식 때문에 정신과에 내원할 정도면 손실액이 수천만 원 이상은 기본이었고 근태 문제로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 환자도 많았다. 공금을 횡령했거나 가족 명의의 아파트나 건물을 날리고 찾아온 경우, 파혼이나 이혼 혹은 부모나 형제와 의절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사례도 있었다.
--- p.28~29

준수는 B에게 절대로 추가 대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 애초에 초보자가 ‘빚투’ 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한참 설명했다. 리딩방, 지라시를 보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재무제표를 보지 않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거듭 타일렀다. 주식 중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잘못된 투자 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함을 수없이 강조했다. B의 어머니는 상담 내내 눈물을 흘렸다. B도 준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꼭 쥐었다. 한 시간 동안 진심 어린 표정과 예의 바른 자세로 준수의 말을 경청하던 그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그런데 저…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준수는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B가 침을 꿀꺽 삼키고 목소리를 낮췄다. “‘삼프로TV’에도 나오고 하시던데… 어디서 좋은 정보 들으신 거 없습니까?”
--- p.46~47

두 번째 상담을 한 날도 은비는 재혁의 자취방에 들렀다. 눈이 벌게져 각종 유료 리딩방을 들여다보던 재혁의 거북목을 째려보며 준수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의 해마체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기억만 취사선택해서 저장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분노,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고 회피하고 싶은 방어 기전이 존재한다고. 재혁의 집에 쌓인 뜯어 보지도 않은 대출 독촉장, 밀린 공과금 고지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은비에게 재혁이 말했다.

“야, 최은비. 나 진짜 마지막으로 1000만 원만 더 빌려줘. 이번엔 진짜 확실해. 지금까지 손해 본 거 다 복구할 수 있어.” 도대체 왜 오빠는 나한테 자꾸 돈 이야기를 할까? 은비는 네 가지 가설을 생각해봤다. 첫째, 나를 ATM으로 생각한다. 둘째, 제2금융권 대출 한도까지 이미 다 빌려 쓴 상태다. 셋째, 나한테 빌리면 무이자니까. 그리고 넷째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울컥 화가 난 은비가 재혁에게 쏘아붙였다.

“내 이름으로 대출까지 받아놓고 그 말이 나와? 오빠가 사람이야? 우리 부모님 돈까지 빌렸잖아! 이제 진짜 없어!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어!” “진짜 확실하다니까. 나 좀 믿어봐, 마지막으로! 우리 다시 돈 복구해서 결혼해야지.” 은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오빠 우리 그러지 말고 병원 다시 가보자, 응? 한 번만 다시 가보자.”
--- p.67~68

마석도: 제5항, 멤버가 정말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땐 모두가 나서서 돕는다.
부자곰: 오…
혜진공주: 오…
박스터: 오… 나 지금 감동받았어.
러시앤머니: 찐감동. 마석도 님 반했어요.
부자곰: 그러면 앞선 네 조항을 다 뒤집는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마석도: 정말로 심각할 때만.
박스터: 그럼 그날이 우리의 첫 정모가 되겠네요.
러시앤머니: 이 중 한 사람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날이 우리의 첫 만남이라니. 뭔가 복잡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네요.
혜진공주: 모입시다, 그날은. 누구보다 빨리 와서 힘이 되어줍시다.
부자곰: 그럼 다 동의하신 걸로 알고 이렇게 결정하겠습니다. 하나라도 규칙을 어기면 구주 클럽은 자동 해체되는 겁니다!
박스터: 철저히 엄수하겠습니다!
러시앤머니: 잘 지키겠습니다!
마석도: 땅땅.

신기하고 이상하지만 재밌고 따듯한 사람들이 모인 구주 클럽. 은비는 평일 저녁 9시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때만큼은 재혁도 회사도 다 잊을 수 있었다. 하루에 딱 한 시간, 서로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대화였다. 주말은 왜 안 하냐고? 주말엔 주식 장이 쉬기 때문이다.
--- p.86~87

부자곰은 한 상무의 말이 폭신한 무지갯빛 거품에 쌓인 독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다. 그런데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은 그 말이 어쩜 이리도 달콤하게 들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제가 어떤 역할을 하길 원하시는지….”
“우선 제가 설립할 자회사 장외주식을 좀 사시죠. 많이는 필요 없고 1억 원 정도면 됩니다.” 1억 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죄송하지만 전 그런 돈이 없습니다. 펠로 월급이 뻔해서…. 그리고 있다고 해도 1억 원이나 갑자기 장외주식에 투자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삼성전자 주식도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 p.105

오늘은 민지운 씨의 다섯 번째 상담일이다. 지운은 주식 중독 클리닉에서 아주 모범적인 환자였다. 단정한 용모에 예의 바르고 성실한 성격의 그는 5주 차까지 상담에 단 한 번도 늦지 않고 진지하게 임했다. 준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상담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죠? 좀 어때요?” 지운은 자신의 손끝으로 시선을 내렸다. 몇 초간 생각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봤어요. 그동안 왜 그렇게 초조하고 조급했는지도요. 빨리 성공해서 부모님도 도와드리고 남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었나 봐요. 불안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준수는 속으로 ‘옳지, 옳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객관화에 시동이 걸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또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할 것 같아요?”
“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절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준비되진 않은 것 같아요. 자신이 있는 날도 있고 다시 흔들리는 날도 있고 그래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 말씀 떠올리려고 합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에요. 보상회로와 도파민이 만든 욕망, 쾌감의 기억이 또 지운 씨를 흔들 겁니다. 복습이 정말 중요해요.”
--- p.120~121

상진은 입이 댓 발은 나온 지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야, 남들은 뭘 알고 시작하는 거 같냐? 별거 없어. 모르는 건 다들 마찬가지야. 이번에 그… 홍석이 알지?”
“롤 잘하는 그분요?”
“어, 그래. 걔 이번에 2차전지 관련주로 3억 원 벌었다더라.”
“3억 원이요? 얼마로 시작했는데요?” 지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5000만 원.”
“에이, 설마요. 주식으로 여섯 배를 어떻게 먹어요?” 의심 섞인 지운의 목소리에 상진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테이블 위에 놓인 김 빠진 맥주는 30분째 그대로였다.
“지운아,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발상을 바꿔야 해. 우리 같은 애들은요, 평생 모아도 집 못 사. 씨발, 존나 억울하지 않냐? 금수저들은 엄마 아빠가 집 다 물려주고 분양권 사주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울 아파트 받고 시작해요. 한 푼 두 푼 모아서 게네들 어떻게 따라갈래? 종잣돈을 모은 뒤에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 주식으로 종잣돈을 모으는 거야. 한 방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 p.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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