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고, 성경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 또한 별개의 사안이다! 솔직히 성경은 군데군데 이해하기가 아주 힘들다. 그것은 성경이 신비나 주술, 혼돈의 책이기 때문은 아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역사와 동떨어진 역사가 담겨 있고, 성경은 본래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고대의 청중들을 위해 쓰였으며, 우리를 위해 쓰인 것이지 우리에게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즉 성경이 최초의 청중에게 어떤 의미였고 또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상당한 역사적 간극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문화와 더불어 고대 문화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론」중에서
율법서는 일반적으로 ‘모세의 책’(수 23:6; 스 6:18; 느 8:1; 13:1; 막 12:26; 행 13:39) 또는 모세가 직접 기록한 어떤 것(출 24:4; 신 31:22; 막 12:19; 눅 20:28; 요 1:45)으로 간주되지만, 모세가 실제로 율법서를 전부 다 기록했을 리는 만무하다. 우선, 모세가 신명기 34장에 있는 자신의 죽음과 장례 기사 혹은 그 연장선에서 자신이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민수기 12:3의 설명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1.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중에서
영감을 일차적으로 어떤 사람의 머릿속 개념에 대한 지휘로 상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번역 가능하다는 의미다. 만일 영감이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된 최초의 성경 단어들에만 적용된다면, 이는 그 단어들만이 신적인 계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영감을 인간 저자에게 실제 단어를 주기보다는 그들의 사고 속에 개념을 심어 주시는 하나님과 관련 있다고 여긴다면,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고 동일한 지식을 전달하는 번역본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성 있는 표현이라고 여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영감을 언어적 차원이 아니라 개념적 차원에 두는 것은 번역 성경도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사람이 저술한 것이다」중에서
따라서 일부다처제부터 돼지고기 금지까지 오늘날의 관점에 문제를 야기하는 본문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시 안에서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모세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지혜의 한 형태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 윤리를 위한 일차적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성경의 권위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절정에 이른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시의 빛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3. 성경은 규범적이며, 타협은 불가능하다」중에서
하지만 성경을 의미 있고 현실성 있고 적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경은 먼저 우리 자신의 시대로부터 멀어지고 낯설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청중들이 친숙하게 여기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기 전에, 우리는 성경의 세계가 얼마나 ‘낯선지’ 파악해야 한다. 혹은 성경이 우리 자신의 현대적 상황을 향해 말하도록 허용하기 전에, 성경이 우리 자신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지’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결국 피상적인 성경 읽기에서 끝마치거나, 혹은 결국 우리 자신의 상황과 시대를 성경 속에 투영해 읽는 데서 끝마치는 더 심각한 형편에 처할 것이다.
---「4. 성경은 우리 시대를 위한 것이지, 우리 시대에 관한 것이 아니다」중에서
그렇다면 의미는 어디에 머무는가? 저자인가, 텍스트인가, 아니면 독자인가? 내 생각에―우리가 지칭하는 의미에 근접한―해석은 세 가지 모든 지평의 전체적 융합과 관련 있다. 우리는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 안의 역동, 독자들의 이해를 고려하고, 우리가 지칭하는 ‘의미’는 이 세 가지 모든 것의 융합에서 발생한다. 궁극적으로 의미는 텍스트 배후에 있는 세계(저자의 지평)와 텍스트 안의 세계(문학적 지평),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텍스트 앞의 세계(독자의 지평) 모두와 우리가 형성하는 연관 관계의 그물망이다. 우리가 더 많은 연관 관계를 만들고 이 관계가 더 두터울수록, 텍스트에 부여된 특정한 의미는 더 바람직한 것이 된다.
---「5. 성경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항상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중에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 종교개혁자 장 칼뱅(John Calvin)이 이해했듯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혹은 더 중요하게, 하나님에게(by) 알려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회와의 관계에서, 또한 세상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참조. 고전 8:3; 13:12; 갈 4:9). 따라서 성경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특정한 사실에 대한 단순한 동의를 넘어 이것은 관계적 지식, 곧 우리를 구원하고 지혜롭게 만들며 예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따라 우리를 형성하는 지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6. 성경의 목적은 지식, 믿음, 사랑, 소망이다」중에서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토대 위에 그 믿음이 세워진 그리스도인으로서(엡 2:20), 우리에게는 성경을 선포하고 가르친 사도들의 전략을 따를 책무가 있다. 그렇다. 만일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위에 기반을 둔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사도들처럼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나아가 2,000년의 해석 역사를 돌아볼 때, 영적인 차원과 그리스도 지향적 초점을 겸비한 이런 사도적 성경 읽기는, 성경에 다가가는 세속적 접근에서 나타나는 끝없는 유행이나 단편화보다 훨씬 더 큰 안정성과 지속성, 일관성을 갖고 있다.
---「7.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