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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것이다

[ 작가 사인 인쇄본(한정 수량) ]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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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430g | 128*195*30mm
ISBN13 9791191842432
ISBN10 119184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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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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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검은 나무는 그의 눈앞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자주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진보라색, 그리고 그가 이름도 알지 못 하고 존재한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색깔들로 불타오르며 형 형색색의 빛으로 주위의 대기를 채웠다
---「나무」중에서

태풍이 지나간 여름의 어느 날 하늘에서 씨앗의 비가 내렸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지만 도시의 땅은 모두 콘크리트와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뿌리를 내릴 곳이 없었다. 그래서 씨앗은 열린 창문 사이로, 건물 벽 속으로, 도로의 아스팔트 속으로, 보도블록 사이로 파고들어 그곳에서 싹을 틔웠다. 씨앗이 터져 싹이 난 자리에서는 머리카락이 자라 나왔다.
---「머리카락」중에서

시작은 소리였다. 그것은 밤중에 천장에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위층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것 같았다. 슥슥슥. 가끔은 긁기도 했다. 끽끽끽. 드물게는 발걸음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삐걱삐걱. 쿵쿵쿵.
---「가면」중에서

흉터는 짙은 갈색으로 가늘고 뚜렷했다. 하얀 피부 위에 길게 이어진 자국을 본 순간 남자는 흉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쩐지 여자의 피부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다. 그때 여자가, 여전히 화면을 내려다보며, 손목에 금이 간 오른손을 무심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금」중에서

그가 느낀 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다. 여자의 손가락에서 배어 나온 물기는 그의 혀를 통과하여 그의 뇌에 직접 침투했다. 그는 3차원의 공간에 고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보았다. 그러한 생명체의 존재를 느꼈다.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전화기가 진동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물」중에서

백 년에 한 번 산은 거대한 안개 속에 잠겼다. 그 안개 속에서 두 거인이 춤추듯이 칼을 휘둘렀다.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한때 모두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잊혀버린 이야기다
---「산」중에서

나는 그녀의 왼쪽 신발 속에 산다.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이 땅을 때리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와 비슷하다. 오래전의 말발굽 소리.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비 오는 날」중에서

그리고 지금은 하늘을 가로질러 어딘지 모를 땅에 내던져졌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휘파람으로 대화하고 나뭇잎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휘파람」중에서

Nessun sapra. 물론이다. 아무도 알지 못해야만 했다. 자신이 사랑한 간호사도 자신과 똑같은 혐의를 쓰고 체포되어,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어쩌면 자신과 같은 병원에 환자로 수감되게 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몰라야만 했다. 사랑만이, 오직 그의 사랑만이 그녀를 그의 것으로 만들었다.
---「Nessun sapra」중에서

혼돈의 시기가 끝나가던 어느 겨울에 그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찾아온 손님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로 생존을 위한 하룻밤의 온기를 청했다. 그는 문을 열어 손님을 맞아들였다. 식탁에 앉히고 빵과 소금을 대접했으며 날이 저물자 난로의 불빛이 미치는 따뜻한 자리를 양보했다. 남자가 잠든 후에 그는 오랫동안 그 앞에 서서 잠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남자를 알아보았으나 남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완전한 행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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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새벽, 정보라의 단편을 보며 위로받았는지 모른다. 그의 이야기에는 이상한 에너지가 있어서 밤에는 도무지 읽기 싫은,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 에너지를 전달받고 만다. … 무엇보다 나는 정보라가 원형을 아주 멋지게 휘두르는 작가라서 좋아한다. 오래된 틀에 갇히지 않고 놀라운 생명력을 얻어 꿈틀거리는 그의 소설에서, 이야기는 다리가 많은 절지동물처럼 복잡하게 매력적인 리듬으로 나아간다. … 원형을 다루는 솜씨 말고도 애정을 느끼는 부분은 그의 비정함이다. 용서와 화합이라는 뜨뜻미지근한 결말로 내몰려는 압박에, 정보라는 타협하지 않는다. 웃음기 없이 비정하게, 추악하고 끔찍한 세계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마주 본 다음 본 대로만 쓴다. 정보라의 소설에서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구원받지 않고,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아주 보기 드문 종류의 만족감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 정세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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