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짜 인생은.
참 자극적인 말이다.
작가라는데 이 사람, 점쟁이이기도 한 걸까.
잠자코 있었더니 또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 p.19
모리와키 홀리가 마법사이고 내가 지금부터 마법사의 제자가 되는 거라면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 않겠는가. 정말 마법사라면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비술이나 비기를 갖고 있을 테고, 제자는 그걸 전수받게 될 테니까. 그러나 마법이 아니라 소설이다, 소설. 모리와키 홀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물론 맞지만, 소설의 비기를 전수받을 수 있는 걸까. 불가능하다는 걸 암암리에 알면서 태연하게 여기까지 따라온 건 소위 ‘팬심’ 때문이었을까. --- p.30
문장에 가짜가 어디 있고 진짜가 어디 있어. 문장은 실체라고. 거기서 모리와키 홀리를 느낄 수 있으면, 그럼 되는 거잖아. 나는 그런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어, 오랜 세월 동안. 모리와키 홀리 옆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고. 아주 넌더리가 나도록 가까이에. --- p.67
참 묘한 일이지만, 홀리 씨가 그녀를 처칠이라고 부른 순간부터 그녀의 모습이 뇌 속에서 변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냥 내 기분이 그런 걸까.
유연한 팔다리에 눈은 금색이고 꼬리가 긴 검은 고양이.
처칠과 아주 비슷한 그 모습.
이것이 홀리 씨의 힘일까. 무슨 힘? 언어의 혼? --- p.84
가가미 씨, 당신의 진짜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홀리 씨 때문에 뒤틀렸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당신의 진짜 인생은?
가가미 씨가 불쑥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 둘, 반짝이고 있다.
하얗게 반짝거리는 빛은 자그마한데 유난히 고결하고 명징하다. --- p.118
쓰는 걸 통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었어. 그렇잖아, 뭐든 쓸 수 있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무기를 내 손에 거머쥔 셈이잖아. 무기라고 할까, 아니 그건 마법이었을 거야. 끔찍한 마법. 정말 재미있었어. 모험을 떠나는 니키와 시키가 된 기분이었지. 답답한 세상을 뛰쳐나가 훨훨 나는, 그야말로 그런 기분. 뭐지 이건, 하고 생각했어.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펜 하나로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신이 된다는 거잖아. 신은 창조주잖아. 그걸 자유라고 착각했어도 무리는 아니지. --- p.134
너, 너 혹시 아니? 인간이란 생명체는 말이지, 눈앞에 있는 현실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야.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좀 다른 현실을 우걱우걱 먹는 것처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지. 탐욕스럽게. 틈만 나면 그걸 먹어.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겁이 날 정도로 탐욕스럽게. 뭐가 되었든 상관없어. 아니지, 모든 걸. 그러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 이야기에 목말라 죽을 지경이지. 이건 거의 병이야. 호모사피엔스의 숙명. 우리는 그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 --- p.164
동시에, 나 자신의 원고도 열심히 썼다. 그쪽은 이제 멈출 수가 없었다.
뚜껑이 활짝 열리고 말았으니 쓰는 수밖에 없다. 몰래 습작을 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종종 쓰곤 했다.
그렇다 보니 그 시기, 저택에서는 세 여자가 각자 서로에게 비밀리에 원고를 쓰고 있었던 셈이다. 각자 나름대로 쓰지 않으려야 쓰지 않을 수 없는 기분으로, 딱히 발표할 곳도 없는 원고를.
우스꽝스러운 얘기가 아닌가. 정말 우스꽝스러운 얘기다.
하지만 거기에는 타오르는 열기 같은 것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 타오르는 빛을 기억 속에서 바라본다. 지금은 그저 그립기만 하다.
그리움의 옷을 벗겨내면 더욱 빛난다.
저택은 배였다. 빛나는 배였다. --- p.293
홀리 선생님, 홀리 선생님.
이 고양이, 홀리 선생님이 보내신 건가요?
이 고양이가 이 배의 뱃머리에 서서 거친 바다로 나아가게 해주는 건가요? 안내해주는 건가요? --- p.297
반짝거리는 빛을 하나 찾았다.
이야기는 시점이다. 시점을 제 손에 거머쥔 자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언어가 그 뒤를 쫓아간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모리와키 홀리 또한 이제 곧 이야기하기 시작하리라.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