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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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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피천득 | 샘터 | 1996년 05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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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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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305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6405264
ISBN10 894640526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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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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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友情)은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것이다.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을 하듯이 우정은 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 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욱 어렵고 보람있다. 친구는 그때 그때의 친구도 있을 수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이별이 아니다. 죽음도 아니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不信)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극은 온다. '늙은 어머니가 계셔서 그렇겠지.' 포숙이 관중을 이해하였듯이 친구를 믿어야 한다. 믿지도 않고 속지도 않는 사람보다는 믿다가 속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마음 놓이는 친구가 없는 것같이 불행한 일은 없다. 늙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에게는 수십 년 간 사귀어온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그 수가 줄어간다. 친구는 나의 일부분이다. 나 자신이 줄어가고 있다.
--- 인연의 『우정』中에서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87-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 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욱 어렵고 보람있다.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극은 온다. -286-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다.
-119-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194-
--- p.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 p.87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 솜씨,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잇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 비너스의 조각보다는 이른 아침에 직장에 가는 영이가 더 아름답다. 종달새는 하늘을 솟아오를 때 가장 황홀하게 보인다. 그리고 종달새를 화려한 공작보다도 나는 좋아한다. 향상이 없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상에 불타지 않는 미인을 상상할 수 없다.
--- p.45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 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 p.110-111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는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분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 p.76
도산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선생이 잠깐 나가신 틈을 타서 선생의 모자를 써보고 나는 대단히 기뻐했다. 그후 어느 날 나는 선생이 짚으셨던 단장과 거의 비슷한 것을 살 수 있었다. 어떤 친구를 보고 선생이 주신 것 이라고 뽐냈더니 그는 애원애원한 끝에 한턱을 단단히 쓰고 그 단장을 가져갔다. 생각하면 지금도 꺼림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 친구로 하여금 그가 그 단장을 잃어버릴 때까지 수년간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하였으니, 나는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이다.
--- p.218
당신의 잘 알려진 작품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느 부분은 나와 우리 엄마의 에피소드였습니다....형은 나에게 있어 테니슨의 '아더 헬름'과 같은 존재, 그대가 좋아하는 시구를 여기에 적습니다.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형은 한 중국 여동학과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심이라는 아호를 지었습니다. 타고 남은 마음이라고....
--- p.193-194
네 인형 예쁜 것으로 사다 놓았다. 어서 태평양 바다를 건너 가서 너한테 안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름은 '난영'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머리가 금빛이고 눈이 파랗지만, 한국에서 살테니까 한국 이름을 지어주어야지?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붙여라.

눈 잠깐만 감아봐요. 아빠가 안아 줄게, 자 눈 떠!


11월 1일 서영이가 사랑하는 아빠.
--- p.123
나는 학생 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해 놓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나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그 여급은 아연한 듯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그후 그가 어떤 나의 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술을 못 먹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할 때 슬픔을 남들과 같이 술잔에 잠겨 마시지도 못하고, 친한 친구를 타향에서 만나도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피선생이 한 잔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 한이 없다.
--- p.252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갈대에 부는 바람소리를 좋아하며,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는 골목을 지나갈 때에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 본문 중에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약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정직을 위한 정직은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 죄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개빛 거짓말일 것이다.
--- pp.2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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