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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선

에디터스 컬렉션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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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330g | 120*188*30mm
ISBN13 9788931023008
ISBN10 893102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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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많은 연극이나 소설에서도 아름다운 자는 모두 강자이며 추한 자는 약자였다.
--- p.9

엄지에서 새끼까지 가지런하게 이어진 섬세한 다섯 발가락의 형태, 에노시마 해변의 연분홍 조개 같은 발톱의 색, 구슬처럼 동그스름한 뒤꿈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에 씻은 듯한 피부의 윤택. 이 발이야말로 남자의 피를 먹고 남자의 몸을 짓밟는 발이었다.
--- pp.12~13

그는 왼손의 새끼손가락과 약지와 엄지 사이에 끼운 붓으로 소녀의 등에 그림을 그린 후, 그 위에서 오른손으로 바늘을 찔러나갔다. 젊은 문신사의 영혼은 먹물 안에 녹아들어 피부에 스며들었다. 소주에 타서 찔러 넣는 주홍 물감 한 방울 한 방울은 그의 생명에서 나왔다. 그는 그곳에서 자기 영혼의 빛을 보았다.
--- p.17

나는 너를 진정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기 위해 문신 속에 나의 혼을 심었다. 이제 앞으로 온 나라에서 너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다. 너는 이제 과거처럼 두려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남자란 남자는 모두 너의 거름이 될 거다.
--- p.19

세 사람은 뭔가 새롭고 진기한 유희 방법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쁘게 미쓰코의 명령에 복종하여 미쓰코가 “의자가 되어라”라고 말하면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등을 내밀었고, “담배통이 되어라”라고 말하면 즉시 입을 벌렸다. 미쓰코는 점점 더 거만해져서 세 명을 노예처럼 부렸다.
--- p.93

손바닥으로 얼굴 전체에 고루 펴 바르자 생각보다 화장이 잘 먹었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서늘한 물기가 모공에 스며드는 피부의 쾌감은 각별했다. 연지와 분을 바르자 석고처럼 하얗기만 한 내 얼굴이 발랄하고 생기 있는 여자의 얼굴로 변해가는 즐거움이란.
--- pp.104~105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종류의 여자가 확실했다. (……) 긴 속눈썹에 촉촉한 둥근 눈이 씻은 듯이 맑아 남자를 지배할 듯한 늠름한 권위마저 갖추고 있었다. 건드리면 붉은 피가 묻어 나올 것 같은 촉촉한 입술과 귓불을 덮는 긴 솜털은 옛날과 다름없지만, 코는 이전보다 조금 가파를 정도로 오뚝해 보였다.
--- p.110

이목구비만 보면 이 정도의 미인은 적지 않지만, 오유 님의 얼굴에는 무언가 뽀얀 느낌이 있다. 눈에도 코에도 입에도 얇은 막을 하나 씌운 듯이 뽀얗고 각지거나 또렷한 선이 없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보는 이의 눈앞이 몽롱하게 흐려지는 것 같고 그 사람 주위에만 안개가 끼어 있는 듯한, 옛날 책의 기품 있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얼굴이다. 그게 오유 님의 매력이다.
--- p.189

그러니 당신은 그 오구라 연못의 저택에 가서 휘황찬란한 장지문과 병풍이 있는 방에서 살아주세요. 당신이 그렇게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면 저는 함께 죽는 것보다도 즐겁습니다.
--- p.215

아버지도 지금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이 “너는 이 가을밤의 슬픔을 알지 못하겠지만 머지않아 알 때가 올 거다”라고 가끔 말씀하셨지요.
--- p.180

그럴 때 아버지는 그 별장의 여주인을 ‘그분’이라고 하거나 ‘오유 님’이라고 부르며 “오유 님을 잊지 마라. 내가 이렇게 매년 너를 데려오는 것은 그분의 모습을 네가 기억해두었으면 해서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 p.186

두 묘석은 낮은 돌 단상 위에 나란히 서 있고 슌킨 묘의 오른쪽에 심긴 소나무 한 그루가 초록의 가지를 묘석 위에 지붕처럼 뻗치고 있는데, 그 가지 끝에서 왼쪽으로 두세 자 떨어진 곳에 검교의 묘가 황송하다는 듯 몸을 굽혀 슌킨을 모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면 생전에 검교가 정성을 다해 스승을 섬겨 그림자처럼 따르던 모습이 떠올라, 마치 돌에 영혼이 있어 지금도 여전히 행복을 누리는 듯했다.
--- p.224

나는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불쌍하다든가 안타깝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스승님에게 비하면 눈 밝은 사람이 더 비참하다. 그 기품과 미모를 갖춘 스승님이 어찌 남들의 동정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나를 불쌍하다고 동정해야 할 것이다. 나와 너희는 눈과 코가 갖춰졌을 뿐, 다른 것은 무엇 하나 스승님에게 미치지 못하니 우리가 더 불구가 아니겠는가.
--- p.237

슌킨의 고집과 심술은 이러했지만, 유독 사스케를 대할 때 그랬고 모든 고용인에게 그렇지는 않았다. 원래 그러한 소질이 있었는데 사스케가 뭐든 기꺼이 받아주니 그에게만 극단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인 것 같다.
--- p.240

사스케는 그 어둠을 전혀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맹인은 항상 이런 어둠 속에 있구나. 아가씨도 이런 어둠 속에서 샤미센을 연주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자신도 같은 암흑세계에 몸을 두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 p.243

때때로 손바닥을 펴서 스승님의 발은 정확히 이 손 위에 얹을 크기였다고 말하고, 또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스승님 발뒤꿈치 살은 나의 여기보다 매끈하고 부드러웠다고 말했다.
--- p.270

“스승님, 저는 장님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평생 스승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 p.302

사스케는 이제야말로 외계의 눈을 잃은 대신 내계의 눈이 열린 것을 깨달아 ‘아, 이것이 실로 스승님이 사는 세계로구나. 이제 마침내 스승님과 같은 세계에 살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 p.304

“잘도 결심해주었다. 고맙구나. 나는 누구의 원한을 사서 이러한 경우를 당했는지 모르지만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지금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일 수 있어도 너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그것을 잘도 헤아려주었구나.”
--- p.305

누구나 눈이 머는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장님이 되고 나서 그런 감정을 맛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세상이 극락정토가 된 것 같아 스승님과 단둘이 연꽃 궁전에 사는 기분이다. 눈이 멀면 눈 뜬 때에 보이지 않던 많은 게 보인다. 스승님 얼굴의 아름다움이 절실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장님이 된 후다.
---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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