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빤한(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결말
산업혁명 이후, 특히 20세기 들어서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과 삼림벌채 등으로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이제 과학적 이론에 의해서건 경험적 지식에 의해서건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재앙의 정도나, 그러한 재앙이 닥칠 시기의 급박성, 혹은 그러한 변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세한 이견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인류가 오랜 세월 누려온 안정적인 기후 및 자연환경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태를 방관(한다고 여기면서 실은 악화)한다면 곧 상상을 초월하는 대재앙이 닥쳐오리라는 것이다.
지구는 이전에도 한번 지구온난화 때문에 멸망한 적이 있다. 2억 년 전 페름기 말 너무나 다양한 동식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지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에필로그」 참조) 화산 폭발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간 데 따른 재앙이었다. 이후 10만 년 동안 하늘에서는 매일같이 검붉은 산성비가 내렸고 바다는 지독한 메탄가스를 내뿜었으며, 살아있던 모든 존재들의 95%가 멸종했다.
이런 재앙을 초래한 기온 상승의 폭을 계산한 최근의 한 연구는 답이‘섭씨 6도’라고 발표했다. 한편 최근 IPCC에서는 지금과 같은 추세를 유지할 때 향후 수십년간 지구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다시 계산해보았는데 이전보다 조금 더 걱정스러운 수치인‘섭씨 6도’가 나왔다(이전에 발표한 수치는 3~5.8도 정도였다). 이쯤 되면 오히려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은 지구의 종말을 외치는 광신도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그 빤한 결말, 이전에도 있었던 결말을 연결 짓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우리 대다수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남아 있는 희망
책의 마지막 장은 2000년의 헤이그 회담과 2001년의 본 회담을 중심으로 교토의정서가 거의 쓰레기통에 폐기되기 직전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과정을 담고 있다. 미국과 우산그룹(호주?캐나다?일본 등 미국의 반환경 정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룹)과 석유자본의 치열한 로비가 그것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초라하게 만들어버린 과정도 빠지지 않는다. 라이너스는 이 국제적인 합의가 불완전하고 불순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것이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첫 출발점이라고 설득한다.
물론 이렇게 미국과 다국적 석유자본을 비난하는 것은 아주 쉽고, 또 정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어렵고 꼭 필요한 일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추상적인 과학적 지식으로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구체적인 고통과 슬픔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그것을 정치적인 실천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라이너스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중에 내뿜는 행위인 비행을 감수하면서까지 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것은 바로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아직 자기 삶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직접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고, 내가 한번 편하자고 저지르는 행위들이 투발루 어민을, 중국 내륙의, 인도네시아의 어느 가정을 파탄으로 내모는 행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그 은폐된 과정을 드러내 근본적으로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성찰성이 건강한 실천 지향성, 곧 현실적 대안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온난화 수치섭씨 3도가 되느냐 6도가 되느냐는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열려 있는 결말이다(그리고 그 차이는 결코 우스운 것이 아니다). 교토의정서가 성실하게 이행되고 또 확대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선진국과 제3세계의 평등 문제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수준까지 완화시키면서 제3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감축과 수렴’ 방식을 지지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승용차를 공유하며, 비행을 자제하고, 난방비를 아끼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를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정직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대안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최전선에서 만난 증인들 ― 지구온난화의 실체란 바로 이런 것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투발루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이미 섬들 중 하나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정부에서는 주민들을 노아의 방주에 태워 뉴질랜드로 대피시킬 계획을 짜놓았다. 대체로 온화한 투발루의 원로들과 달리 한 환경부 관리는 솔직하게 문제를 지적한다. “문제를 일으킨 건 선진국들인데 당하는 건 우리지요. (……) 주범인 선진국들과 산업체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한 일이지요. 그게 바로 오염자부담원칙 아닙니까.”실제로 영국인들은 투발루인에 비해 20배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호주인들은(호주인들은 투발루의 이주 요청을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난민들이 자기네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용소를 지어달라는 몰상식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30배 이상을 배출한다. 한국인들의 배출량 역시 2003년 기준으로 영국인 경우와 비슷하며 증가세는 훨씬 높아 몇 년 안에 웬만한 유럽 선진국들을 앞지를 가능성이 크다.
알래스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모순을 지극히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래스카 역시 투발루만큼이나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에서 위협받고 있다. 일년 내내 얼어붙어 있어야 하는 땅이 녹아버리면서 집과 도로 곳곳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적 삶의 방식이나 북극곰 등 오랜 친구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슬퍼하면서도 석유 개발을 위해 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개발은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재앙과 같던 실업률도 떨어졌고 수명도 훨씬 길어졌다. 하지만 기적이란 애초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오랜 삶의 방식을 무너뜨리는, 지속 불가능한 개발에 대한 욕망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책이 던져주는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중국의 황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황사의 최전선인 중국 내륙, 네이멍구(내몽골)자치구역에서는 아예 마을 전체가 생존이 불가능한 불모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있다. 한때 5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자리에 홀로 남게 된 한 여성은 자신들도 그런 위험이 닥치기 얼마 전까지 전혀 그것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페루의 웅장하던 열대 산악빙하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이것은 단지 대단한 구경거리가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페루와 인근의 남미 국가들이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애초에 강수량이 적은 이 지역의 물 순환과 생태계는 전적으로 거대한 안데스 산맥이라는 자연의 급수탑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히말라야의 빙하에 의존하고 있는 인도나 텐샨 산맥의 빙하에 의존하는 중앙아시아 건조지역 국가들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미국의 허리케인은 지구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활동의 주기와 방식이 점점 더 불안정적으로 바뀌고, 최고 강도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1998년 온두라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미치는 온두라스 전체 교통 인프라의 60%를 무너뜨리고 7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손실을 입혔으며 셀 수 없는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온두라스의 대통령은“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건설해온 것을 단 72시간만에 잃었습니다”라는 슬프지만 정확한 표현으로 그 피해 규모를 설명했다. 1991년 방글라데시를 강타해 13만 8,000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도 이름을 갖지 못한 사이클론 ‘열대성사이클론 02B'가 가져온 피해(236~239쪽 참조)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증상들, 하나의 원인 ― 기후과학이 밝혀낸 재앙의 징후들
이 책의 곳곳에는 지구온난화에 있어서 중요하고 기본적인 징후들을 포착하고 설명하는 기후과학의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한 정보들은 쉽고 명쾌하고 다양하다. 무엇보다 재앙의 원인과 결과와 그에 따른 전지구적 규모의 고통을 무리 없이 연결시킬 수 있는 설명들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가령 대부분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나라들이 통째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위험은 해수면 상승 때문만은 아니다. 산호초는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바다 생태계지만, 특히 열에 대단히 약하다. 해수면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산호초 띠가 허옇게 변하면서 조류가 죽어버리는 백화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해수면 온도가 임계치에 도달한 1970년대 말에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는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재앙이 되었다. 특히 1998년의 엘니뇨 피해 때는 지구 전체의 6분의 1에 이르는 열대산호초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스리랑카와 몰디브, 인도양 일대, 호주에서 수백년 된 산호초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열대해양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동식물들 역시 빠르게 서식지를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유럽뱀눈나비는 지난 60년 동안 100킬로미터 이상을 북상했다(그래도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일이고. 새나 나비가 아닌 동물들, 그리고 모든 식물들 등 대부분의 자연생태계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도시나 집약영농, 주요도로 등 온갖 인공적 장애물 때문이기도 하고, 또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종들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이동성이 뛰어난 소수 종들만이 획일적으로 살아남고 수많은 재래종들이 멸종 위기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극지방은 지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가장 대규모로 눈에 띄는 지역이다. 가령 그린란드의 대륙빙하는 너무 빨리 녹고 있어서 녹아흐르는 양이 나일 강 한해 유수량과 맞먹는다. 남만구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2002년 3월에는 5,000억톤에 이르는 대륙빙하(라르센 B 빙붕)가 한 달 만에 분해되어 전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극지방 생태계 역시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아 빠른 속도로 망가져가고 있다. 또 따뜻해진 기후가 갑충 알의 번식을 도와 삼림지대의 파괴를 가속화한다.
통상 열대성폭풍이나 태풍, 허리케인을 지구온난화와 직접 연결시켜보려는 노력은 과학계에서나 언론에서나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너스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최근 피해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허리케인이 분명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추세와 연관이 있으리라고 보고 집요하게 그 증거를 추적한다. 그렇게 수집한 증거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구물리유체역학연구소의 연구원 톰 넛슨의 연구다. 그의 기후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이산화탄소 비중이 높은 기후에서 폭풍의 강도가 5~10%까지 더 강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통상 폭풍의 풍속이 높아짐에 따라 피해는 거듭제곱으로 늘어난다. 풍속이 5~10% 정도 올라간다면 폭우는 3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재앙의 요소다. 또 태풍의 피해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평균치의 상승이 아닌 최대 규모 태풍의 최고 풍속이기 때문에, 최고풍속이 10% 올라간다는 것은 추가적인 피해가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최근 인구와 개발이 늘어났다는 현실적인 조건은 열대성폭풍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지구 곳곳에 물난리를 불러일으킨다면 도대체 사막화와 황사는 왜 생기는 걸까? 대륙 내부의 열이 올라감에 따라 식물과 땅 표면에서 수분이 더 많이 증발하고, 따라서 기온이 올라가면 총 강수량이 변하지 않아도 가뭄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온이 솟으면서 수분이 빠르게 증가하자 강수량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나왔다. 과잉방목과 삼림채벌은 위기를 가중시킨다. 또 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 물의 순환 과정은 점점 심화되어 어떤 곳에서 물난리가 나면 다른 곳에서는 가뭄이 든다. 최근에는 미국 남부,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에 걸쳐 일어난 주요 가뭄이 인도양의 기온상승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해수면이 따뜻해지면서 열대지방에는 비가 많이 내리게 되고 중위도 지역에서는 대기가 내려앉으면서 가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