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엘렌 식수는 마틴 맥퀼런Martin McQuillan에게 편지를 쓴다. 맥퀼런은 ‘포스트-이론Post-Theory’을 주제로 한 선집 편집자 중 한 명이다. 식수는 맥퀼런에게 답장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가 식수에게 그 책의 에필로그를 청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수는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주제가 너무 방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그 주제가 아마도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라 말한다(p. 210). 대신, 식수는 자신이 쓰려했던 것에 관한 몇 가지 암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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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글쓰기ecriture feminine라는 개념으로 모아진 다양한 창조적, 시적, 철학적, 이론적 접근들은 식수 전작에 걸쳐 어느 정도 연속적인 맥락 내에서 흐르고 있다. 무엇이 그런 생각들의 배치와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정확하게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하는지’조차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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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의 픽션과 연극적 글쓰기는 시적 형식과 철학적 사유 사이 어딘가의 공간에서 작동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항상 관습적인 것들을 가지고 유희했다. 비표준적(비“남성적”) 접근을 문체, 성격묘사, 플롯에 적용하며 독자/관객이 갈피를 못 잡게 하고 기쁘게 하며 그들에게 도전한다. 식수의 픽션과 연극적 글쓰기에서 관찰되는 것은, 여성적 글쓰기의 기저를 이루는 많은 생각들이 실천으로 옮겨져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전개들은 여성적 글쓰기가 주체성, 정체성, 주제, 문체, 장르와 같은 문제들과 어떻게 담판을 지을지에 대한 많은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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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식수가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에서 1990년 5월에 행한 웰렉 도서관 비평이론 강연?《글쓰기 사다리의 세 단계Three Steps on the Ladder of Writing》라고 번역 출간된 시리즈 강연?을 소개하면서, 작가로서 식수의 성취는 그녀가 “시인-사상가, 매우 시인이면서도 바로 사유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밝힌다.1 데리다의 이 말은 식수가 해온 “시적” 글쓰기는 표준적(‘남성적’) 철학적 담론의 관심들과 전적으로 달라지는 기저의 사유 과정 체계를 통해 일어났음을 함축한다. 실제로, 식수의 시적 글쓰기는 철학적 훈련보다는 회화 예술과 훨씬 더 공통점이 많다는 점이 (특히 식수 자신에 의해) 자주 지적되어왔다.
--- p.115
식수는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때 일어나는 일에 매우 관심이 많다. 그녀에게 쓰기가 비로소 진정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대화나 상호교환이 읽기라는 행위와 함께 만들어질 때이다. 《세 단계》에서 그녀가 지적하다시피, “쓰기와 읽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읽기는 쓰기의 부분이다. 참된 독자는 작가이다. 진정한 독자는 이미 쓰기로 가는 중에 있다”(p. 21). 읽기는 글쓰기의 “기원”이자 “전생”의 주요 부분이다.
--- p.140
아니요. 전 계획하지 않아요. 제가 계획하는 것은 계획하지 않는 것이죠. 심지어 그것조차도 계획하지 않아요. 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어떤 책의 시작점으로 가죠. 그것의 성별도 모르고요. 그것이 무엇이 될지, 괴물이 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라요… 전혀요. 저는 그저 느낌만 갖고 있어요. 매우 이상한 느낌이요. 신뢰 같은 것. 마치 제가 약속 장소로 가면 그것이 올 것이라고 믿는 그런 느낌이요. 그게 다예요. 누가 될지,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죠. 오랜 세월 제가 지니고 있는 앎의 유일한 조각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예요.
---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