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는 지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많고 특기 분야에선 더 잘 하는 아이들도 있다. 좋아하는 일은 아주 잘 한다. 지적 발달이 빠르거나 느리다는 그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뇌 기능과 학습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아직 이 연구는 막 시작일 뿐이어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 pp.104-105
'에이즈 무섭지 않니?' 하고 물었다. '에이즈에 걸려도 몇 년간은 살 수 있죠? 우리 가족은 당장 내일 먹을 게 없어요'하고 대답했다
(중략)
이 지구상의 87퍼센트의 아이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살며, 그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명을 걱정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머지 13퍼센트가 선진국 이린이. 이, 극히 한줌밖에 안되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물을 마시고, 밥도 먹고, 예방주사도 맞고, 교육도 받고 있다.
--- p.217
상콩(일본에서 활동중인 케냐 출신의 방송인-역주)씨의 말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이, "아프리카의 수도는 어디인가요?"라고 물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수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나라가 53개나 있는데 나는 케냐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라고 하면 또 많은 사람들은, "네? 아프리카에 53개나 되는 나라들이 있다구요? 와, 깜짝 놀랐어요..." 하며 놀라느라 케냐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산다고 해서 아프리카의 동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상콩 씨는 일본에 와서 동물원에 가서야 처음으로 얼룩말이며 기린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색다른 동물이어서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동물원이 있어서 누구나 코끼리나 기린을 아는 나라는 세계에서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 pp 129
다시 체홉의 편지로 돌아가서, 나는 그때, "평범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도 마음 아파한다"는 대목에서 또 한번 감동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도깨비인가, 뭔가?' 뭐, 당시의 나는 이런 정도만 생각한 어린아이였지만, 이 구절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자라면서 그 "평범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책을 더 많이 읽자고 마음먹었듯이, 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대책이 안 서는 문제아였을 게 틀림없다. 그 무렵 세상의 누가 나를 보며,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생각하며 체홉을 더듬더듬 읽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해 몇 달 만에 퇴학당한 아이가 실은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고 혼자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 천방지축 뛰어다니기만 하고, 침착하지 못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이내 머리를 들이밀고, 모든 구멍마다 뛰어들고, 어른들 이야기 따위 듣지도 않는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듣고 있었다. 생각도 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 역시 습관이 되지 않을 뿐, 만약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것들이 없어서, 책을 더 많이 읽는다면 분명 나와 마찬가지로 체홉의 편지를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신에게서 부여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케스트너는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마음으로 글자를 더듬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체홉의 편지를 그런 식으로 읽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 pp 40~41
나는 그 물건에 몹시 흥미를 느꼈지만 '말도 안 돼.'라는 생각에, 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으로도, 필요없어요, 하는 뜻을 보였다. '생큐.'는 알고 있었지만 '노생큐.'는 몰랐기 때문에, 생큐는 필요없어요, 라고 몸짓으로 말했다. 그래도 병사는 자꾸자꾸 그 상자를 내게 떠맡기듯 주려고 했다. 나는 곤혹스러워서, '필요없어요, 필요없어요.'하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발차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병사는, '저것 봐, 어서 가야 해.'하는 제스처를 하더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입에 넣는 거야.'라고 몸짓으로 설명하고, 내 손안에 그걸 쥐어주더니 기차를 타버렸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예사로 물건을 받는 아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하고 곤혹스러워하며 상자를 가슴에 안고 그곳에 그냥 서 있었다. 병사는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차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벙글벙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젊은 병사였다. 다른 병사들도 손을 흔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나도 손을 흔들었다. 긴 기차는 많은 미국 병사들을 태우고 아오모리 방면으로 연기를 뿜으면서 떠나갔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나는 "저능아!"란 말을 듣고 그대로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종이로 먼저 20개의 톱니바퀴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5개의 톱니바퀴도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작은 톱니바퀴가 큰 톱니바퀴 바깥을 돌도록 해보았다. 실제로 해보니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문제여서, 작은 톱니바퀴는 다섯 개밖에 톱니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톱니와 톱니 사이에 간격이 생겨 큰 톱니바퀴 둘레를 제대로 돌 수가 없었다. 분명 어떤 법칙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가 실험해본 바에 의하면, 톱니바퀴의 이를 맞게 하려면 거짓으로 돌리는 시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작은 쪽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20개의 톱니바퀴 둘레는 5개의 톱니바퀴가 돌려면 네 번 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예를 들어 '3과1/2+2와3/4=?'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나는 우선 사과를 갖고 온다. 그리고 사과 세 개와 사과 반쪽을 앞에 놓는다. 다음에는 사과 두 개와 네 쪽으로 나눈 사과 중 세 쪽을 놓는다. 그리고 전부를 세어보면 (자른 것도 자른 쪽을 맞춰나가면), 여섯 개와 사 분의 일, 즉 6과1/4이 된다.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물건으로 해보면 이런 답이 나온다. 아마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일이 사과를 가져와서 계산하느니 차라리 머리로 계산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며, 사과가 무진장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겠지만, 세상에는 나같은 인간도 있는 것이다.
--- pp 122~123
그 해 크리스마스에도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산타 할아버지에게 뭘 부탁하고 싶니?" 하고 물어셨다. 나는 "커다란 리본이 갖고 싶어" 라고 말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커다란 리본을 단 여자아이의 예쁜 그림을 보고 나서 그런 것이 갖고 싶어진 것이다. "꽃무늬 같은 게 있는, 폭이 넓은 거."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그래, 부탁이야 해보겠지만 산타 할아버지, 그런 리본을 알지 모르겠네." 하고 대답했다.
그 무렵 하필이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동네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모조리 모습을 감추어, 먹을 것이나 과자 같은 것은 물론 없고, 장난감 류도 몇 개만 겨우 있었다. 그래도 나는 전쟁과 산타 할아버지는 아무 상관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전쟁이든 말든, 내가 부탁한 건 무엇이든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내 손은 베갯머리를 더듬어 선물을 찾았다. 탁! 손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리본치고는 좀 이상하네!' 나는 벌떡 일어나 선물을 보았다. 예전처럼 예쁜 선물용 포장지가 아닌, 그냥 물건 싸는 낡은 종이로 포장되어 있었다. 조금 길고 네모난 느낌의 그것을 손에 들고, 그래도 나는 가슴 두근거리며 꾸러미를 풀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하고이타('하고'는 모감주나무 열매에 새털을 달아맨, 일종의 제기 같은 것. '하고이타'는 '하고'를 쳐올리고 받고 하는 나무채-역주)였다. 내가 부탁한 리본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하고이타에는 여자아이 그림이 나무판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 나무판이라는 게 사과 상자에나 쓰였을 법한 그런 나무판자였다. 나무결도 거친 데다 손잡이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색깔도 촌스럽고, 짙은 물색 배경에 평범한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조잡한 하고이타를 들고 생각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물건이 없다니! 그때 나는 '산타 할아버지란 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만약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렇게 부탁도 하지 않은 것을 줄 리가 없다. 그리고 만약 하고이타를 준다면, 당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쿠루쿠루쿠루미짱 그림이 있는 하고이타를 주었을 것이다. 더욱이 나는 꽃무늬 리본을 부탁했으니까.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없을지 모른다는 것보다, 산타 할아버지도 물자 부족을 겪고 있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어디에 가나 '물자 부족'이란 말을 듣던 시대였으니까.
세상은 그랬지만, 그래도 산타 할아버지는 다른 곳에선 본 적 없는 것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는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고이타의 여자아이는 머리에 핑크색 커다른 리본을 매고 있었다. 분명 어머니가 사방을 뛰어다니며 내가 원했던 리본과 비슷한 물건을 찾았을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 리본을 맨 서툰 여자아이 그림과 구멍 뚫린 얇은 하고이타의 감촉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래,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 그런 리본 알지 모르겠네." 라고 말할 때의 어머니의 좀 곤란한 듯한 얼굴 표정도 떠오른다.
--- pp 15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