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한 자루의 칼과 같아서 자칫하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 전쟁 시대 때처럼 실제 칼에 찔리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사람의 말에 상처를 입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일본의 합기도는 절대로 먼저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전환해 역공한다. 고로, 상대방의 힘이 크면 클수록 내가 쓸 수 있는 힘도 커진다. 지혜로운 언어 패턴 또한 이와 같은 원리다. 어떤 공격이 든, 상위-횡적-하위 분류라는 전환을 통해 그 공격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
최면이라는 말과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는 ‘트랜스’가 있다.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는 금세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거나, 옆에 누가 오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처럼 무언가에 몰입돼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최면에는 전통적 최면과 에릭슨 최면,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치료의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방식이 좀 다르다. 전통적 최면은 일반적으로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추를 바라보며 진행하는 반면, 에릭슨 최면은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를 던져 알게 모르게 자신 혹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인생까지도 바꾼다.
사람의 잠재의식은 부정어를 처리하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빨간 사과를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즉각 빨간 사과가 떠오르는 식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측법과 부정어를 합쳐서 사용하면 잠재의식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신기한 작용이 일어난다
“언덕을 이용하여 나귀에서 내린다.”라는 말이 있다. 나귀의 높은 등에서 그냥 내리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스듬한 언덕을 이용해 나귀의 등에서 내린다는 말이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이유라는 하나의 계단을 주어서 상대가 그 이유를 딛고 부탁을 들어주게 만들면 된다.
만일 상대방과 거리를 좁히고 친밀감을 높이고 싶다면 ‘텅 빈 단어’법을 이용하면 된다. 상대의 하얗게 빈 공백에 소통, 느낌, 이해와 같은 공감의 단어를 넣으면 상대는 어느새 빗장을 풀고 그 비어 있는 공간에 당신과 가까워질 친화력의 다리를 차곡차곡 쌓고 있을 것이다.
낙관주의자는 아름다운 일의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반면, 비관주의자는 나쁜 일의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해 버린다. ‘부분으로 전체 판단하기’ 기술을 사용할 때, 낙관주의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대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비관주의자와 같은 판단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언어 방식으로 역최면을 걸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는 결국 소통으로 이뤄진다. 최면 기술을 어느 정도 알면 한편으로는
우리의 불안지수를 낮추어 마음을 더욱 평온하게 만들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과의 소통이 더욱 원활해지고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는 ‘내 사람 효과’라는 것이 있다. ‘내 사람’이란 자신과 같은 가치관과 지향하는 바가 같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자신과 같은 지역 또는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사람’과 어울리기를 선호하고, 내 사람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더 편하고 스트레스가 덜하며, 경계심을 품지도 않고, 그의 말을 쉽게 신뢰한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적당히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와 결과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접근할 수 있다. 또, 상대방과 대화에서 흥미를 돋울 수 있으며,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한 반복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당신의 관심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자신을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언어 기술을 ‘메타언어 모델’이라고 부른다. 메타언어 모델은 자신 또는 타인의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신속하게 자신의 사고나 논리에 숨겨진 맹점을 발견하게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