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이나 규범 속에 처음부터 몸담고 있으며, 설사 약속이나 규범 자체가 억지스럽고 불합리한 것이더라도 그걸 따져 보기 이전의 무의식적으로 인정해 버리기 쉬워. 뭐가 옭고 그른지, 뭐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지 불행하게 하는지 따져 보는 비판 정신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무서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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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은 저에게 매우 소중해요. 거기에 진정한 나 자신이 있으니까요."
"음"
"그런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거지?'하고 단정짓거나 딱 부러지게 말하라고 요구하는 게 싫어요."
잠깐 생각한 뒤 구즈하라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한테 상처를 주는 건 이럴 때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한다면서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거죠."
"그 질문, 자기 자신에게도 해 보았나?'"
"네, 해 봤어요. 나는 이러이러하다고, 억지로 규정해 버린다면 나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된다고요."
선생님이 편애한다고 말한 학생이 바로 이 소녀였던 것 같았다.
"그 점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바로 교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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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뭐냐고 물으면 당연히 선생님이 맘에 안든다. 편애한다 등을 말하겠죠. 하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불만의 일부일 뿐이에요. 시미즈가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보다 훨씬 더 깊은 고통이라는 말을 했지만, 우리의 진짜 불만은 학교나 선생님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말하자면 온몸으로 느끼는 슬품과 분노죠 그런데 우리가 무슨 모르모트인 양, 설문 조사 결과만으로 중학생의 실태를 이러이러하다고 결론지어 버리는 건 너무 서글퍼요. 그런 어른은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다가가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요? 다가가는 족도 당연히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신경이 없어요, 학교 선생님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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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가와 선생은 좀 전에 자유를 준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자유는 모든 인간 속에 있는 것이지 누가 주가나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자유에는 이를테면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
오가와 선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끝까지 들어보세요.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지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자는 결코 살인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요."
구즈하라 준은 시게노부 선생의 얼굴을 새삼 보았다.
"굉장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함축적인 말이에요. 사람들은 살인할 자유가 어디 있냐, 사람을 차별할 자유가 어디 있냐고들 하죠. 폭력, 비행, 등교 거부 모두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아무한테도 그럴 자유는 없다, 이렇게 단정적인 생각이 점점 확대되어 우리는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는 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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