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봉이 김 선달'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아. 이 사람이 전국방방곡곡을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마을마다 그 사람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씩은 꼭 있지. 지금부터 내가 들은 봉이 김 선달 이야기를 해줄테니 잘 들어 봐. 참, 배꼽이 빠질지 모르니까 배꼽을 단단히 잡고 있어. 알았지? 어, 정말이야.
봉이 김 선달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았지. 그 날도 이 고을 저 고을 떠돌아다니다가 하루는 한양 땅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겠다. 그런데 배가 너무너무 고픈 거야. 그래서 시장 안에 있는 주막에 들어갔지.
"어이, 주모! 국밥 한 그릇 주구려."
김 선달은 배가 고프던 차에 국밥 한 그릇을 단숨에 비우고는 또 한그릇을 시켜 먹었지.
"키야! 끄윽, 잘 먹었다."
김 선달은 트림을 하며 배가 불러 툭 튀어나온 배꼽 언저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거 양반 먹성이 돼지보다 더 좋으시네.'
주모는 놀라 눈을 왕사탕만하게 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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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비는 베를 팔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어. 그 날이 일 년의 마지막인 섣달이 어느 날이었지. 음력으로 12월이간 말이야.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 선비는 오들오들 떨며,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 고개를 넘고 있었지. 그런데 고갯마루에 웬 사람이 떡 서 있는 거야. 그 사람은 버선도 신지 않았고, 저고리도, 바지도 입지 않았어. 그냥 홀라당 맨 몸으로 서 있는 거야. '아이고, 불쌍해라. 이 추운 겨울에 홀랑 벗고서 서 있으니, 얼마나 추울까?' 선비는 지나가려다 말고 등짐을 풀고는 팔지 못한 베를 꺼내 그 사람의 몸에 둘둘 감아 주었어. '이제 좀 따뜻하겠지?' 그런 다음 맨손으로 집에 돌아온 선비는 아내한테 한바탕 야단을 맞고는 잠을 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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