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올해도 끄트머리 달까지 달려왔고,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장엄한 새해와 이젠 뒤편으로 넘길 세속적인 헌 해 사이에서, 또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만날 것이다. 어느 해가 안 그랬으랴마는 유난히 흉흉하고 각다분하고 남루했던 한 해! 이젠 크리스마스의 감흥마저 너덜해지려는 참이 아닐까 괜히 아쉬워지려는 이때, 샘물처럼 맑고 시원한 성경책 한 권쯤 선물 받으면 어떨까. 내 선물 받아들고 한껏 신이 난 아이들 얼굴만큼 다시 힘이 되는 선물도 없을 텐데…….
성경의 무게를 덜다: 레고로 상상력을 채우는 그림책
안다! 성경처럼 좋은 책이 없다. 세계와 인류의 시작이요 끝이요 과정이요, 그 위대한 신성함과 뜨거운 신앙심과 아름다운 예술성과 신의 눈으로 심판된 인간사가 한 글자 한 글자 빼곡히 진리를 담고 서 있는 책이 성경 아니던가! 꼭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지성이라면 모두가 추천하고 권장하는 책,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전이며, 그리하여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셀러 성경이 아니던가! 그러나 어렵다. 고등학교 과정까지 제대로 마친 성인이 읽어도 모르는 말이 너무 많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성경은 종교적인 동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접근하기 어려운 성스럽기만 성경을 애들이랑 같이 읽자고 할 수 있을까? 음흠!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바로 그럴 때 권하는 책! 『하나님 처음 만드신 세상』과 『크리스마스 이야기』. 최고의 책과 최고의 장난감이 만든 유쾌한 성경책이 나왔다. 무엇보다 레고로 하나하나 꾸며진 성경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재미나다. 레고로 에덴 동산을 만들면 어떤 모양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아담과 이브도 만들 수 있을까? 큰 홍수에 뒤덮인 세상과 그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 그리고 하늘 높이 세워지는 바벨탑은 어떨까? 예수를 잉태한 배부른 마리아, 태어나자마자 마구간 여물통에 눕혀진 아기 예수……. 블록을 쌓고 끼우고 맞춰 그려낸 성경의 장면 장면들을 살피다 보면, 장난감들의 진지한 이야기라는 상큼한 느낌이 몰려온다. 만들면서 요모조모 고민하고 꾸몄을 작가의 손놀림이 성경이라는 무거움의 고정관념을 살짝 덜어주며 쉽고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물론 창의력을 생각해도 더없이 반갑다. 국내에서는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여겨지는 레고가 외국에서는 상당층의 성인 마니아들이 있어 독특한 모양들을 만들어 공개하곤 한다.
동화작가가 우리말로 옮긴 성경의 구절들도 어렵지 않아서 옛날이야기를 읽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예수님 나신 크리스마스가, 하나님 처음 세계를 지으신 창세기가 훨씬 가깝게 와 있는 듯하다.
성경의 무게를 더하다: 성경에 충실한 신실한과 섬세함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레고로 꾸민 일러스트레이션의 섬세함은 남다르다. 세세한 상처며 주름살이며 징표며 도구며 그 순서까지, 성경에 기록된 어떤 의미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레고들은 ‘하나님과 대화하며 작품을 만들었다’는 작가의 고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마치 무엇이든 원체험이 되는 어린아이들이 세계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들을 만들어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처럼 순수하고 정갈한 구성이다. 이 책들을 읽다 보면 성경의 어떤 대목이 어째서 중요하고 그래서 그것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저절로 알 것만 같다.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더욱 권하는 책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어른들에게도 권한다. 어린 신실함의 순수로 되돌아간 나의 신성함에 가만 눈을 주고 싶을 때,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면!
크리스마스와 창세기 그리고 밝아오는 한 해
도서출판 숲에서 나온 두 권의 성경 그림책 『하나님 처음 만드신 세상』과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피플> <타임> <스핀>지 같은 유명 언론에 벌써 소개된, 레고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브렌든 파월 스미스의 작품집이다. 예수님 탄생에 관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스토리화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창세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열 개의 이야기(1.에덴 동산 2.가인과 아벨 3.홍수 4.술 취한 노아 5.바벨탑 6.소돔과 고모라 7.아브라함의 시험 8.야곱과 사촌들 9.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10.구덩이에 던져진 요셉)들을 묶은 『하나님 처음 만드신 세상』은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곧 『모세 이야기』(출애굽기 편)도 출간될 예정이다.
하나님께 계시를 받고 레고를 이용한 성경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힌 브렌든 파월 스미스는 자신의 홈페이지(www.thebricktestament.com)를 통해 다른 레고 작품들의 성경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이는 것 이외에는 개인적인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며 스스로를 퍼즐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괴짜로, 성경 구절에 따라 레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멋지게 재구성한 성경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데 전념하는 재주꾼이다.
우리말 옮긴이는 올해 제1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은 동화작가 유영소 씨. 쉽고 정다운 글이 아이들의 재미와 이해를 돕는다. 수많은 이야기와 대화가 그득한 성경책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소망하는 ‘옮긴이의 말’도 아름답게 읽힌다.
원서의 텍스트를 그대로 살려두어, 성경의 참뜻을 먼저 파악하려는 어른들의 눈을 만족시킨 배려 역시 돋보인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혹은 둘을 한데 묶든, 누구에게나 쏙쏙 읽히는 아담한 성경책으로, 올 한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가 처음 창조되었을 ‘그때’의 장엄하고 성스러움 속에 빠져 새해를 맞이한다면 누구나 장엄하게 다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