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내용의 심화에 몰두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도 힘겹지만, 문체의 조탁에 전념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번역 무용론까지 떠오를 정도로 고통스럽다. 사르트르, 바르트, 블랑쇼 등 동시대를 풍미한 프랑스 지식인들이 공히 『이방인』의 문체를 상찬하고 있다는 사실은 카뮈가 거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적어도 『이방인』의 경우, 문체를 온전히 옮기려고 애쓰지 않는 번역은 그것이 아무리 잘 읽힐지라도 최선의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방인』 번역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작가의 스타일, 즉 카뮈의 문체를 되살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스타일, 즉 뫼르소의 성격을 되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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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마 어제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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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벌써 태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양이 대지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열기가 빠르게 올라왔다. 나는 왜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그토록 오래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두운 상복을 입은 탓에 나는 더웠다. 모자를 쓰고 있던 키 작은 노인이 다시 모자를 벗었다. 내가 약간 몸을 틀어 노인을 보았을 때, 원장이 내게 노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저녁이면 엄마와 페레 씨가 간호사를 동반한 채 마을까지 산책하곤 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주위의 벌판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맞닿은 언덕까지 줄지어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들, 적갈색과 초록색의 대지, 드문드문 흩어져 있으나 윤곽이 뚜렷한 집들을 보았을 때,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이란 우수에 찬 휴식과도 같았으리라. 오늘은 풍경을 일렁이게 하는 끓어 넘치는 태양이 이 고장을 비인간적이고 위압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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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영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들어오지 않고 문턱에 서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들어오라고 권했지만, 그는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구두 끝만 바라보며 딱지투성이인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를 마주하지도 않은 채, 그는 내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서 개를 빼앗지는 않겠지요, 그렇지요, 뫼르소 씨. 나한테 개를 돌려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되겠소?” 나는 그에게 동물보호소가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개를 사흘 동안 돌본다는 사실, 그런 다음 개를 적당히 좋을 대로 처분한다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내게 말했다. “잘 있어요.” 그가 자기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리고 벽을 통해 들려오는 작고 기이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왜 엄마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나는 배가고프지 않았고, 저녁 식사를 거른 채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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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자마자 그는 몸을 약간 일으켰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웃옷 속에 있는 레몽의 권총을 움켜쥐었다. 그러고서 그가 다시 뒤로 누웠지만,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꽤 멀리, 10미터가량 떨어져 있었다. 간간이, 반쯤 감은 두 눈꺼풀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대개는 불타는 대기 속에서 그의 이미지가 춤을 추었다. 파도 소리가 정오보다 훨씬 더 나른했고, 훨씬 더 잠잠했다. 똑같은 모래 위의 똑같은 태양, 똑같은 햇빛이 지금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한낮이 운행을 멈추고, 끓는 금속의 바다에 닻을 내린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수평선 위로 조그마한 증기선 하나가 지나갔고, 나는 아랍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그 증기선이 눈가의 검은 얼룩처럼 느껴졌다.
--- p.91
내가 돌아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러나 태양으로 진동하는 바닷가 전체가 내 뒤로 밀려들었다. 나는 샘을 향해 몇 걸음 옮겼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탓인지, 그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불타는 태양이 두 뺨을 엄습했고, 땀방울이 눈썹 위에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의 장례식 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때처럼 특히 이마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이 살갗 밑에서 한꺼번에 뛰었다. 더 이상 불타는 열기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움직인다고 해서 태양을 떨쳐버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단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 p.92
내 변호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 팔을 높이 쳐들며, 소매가 내려오면서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드러날 정도로 두 팔을 높이 쳐들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검사가 다시 일어났고, 법복을 고쳐 입으며 존경하는 변호인만큼 순진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두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심오하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고 단언했다.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힘주어 외쳤다. “저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가슴으로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유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 p.136
당신은 몹시도 확신에 차 있어, 안 그래? 하지만 당신의 확신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당신은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조차 확신하지 못해. 나, 나야 겉보기에는 두 손이 텅 빈 것 같지. 그렇지만 내게는 나에 대한 확신,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당신보다 더 깊은 확신, 내 삶과 다가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난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있어, 이 진리가 나를 굳게 붙들고 있는 만큼 말이야. 나는 전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을 거야.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았지만, 저런 식으로 살 수도 있었겠지. 나는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하지 않았어. 나는 이런 짓을 저지른 반면, 저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어.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마치 나는 늘 그 순간을, 내가 정당화될 그 이른 새벽을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 당신 또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심연으로부터,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월을 거쳐 나를 향해 올라오고 있고, 바로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정히 현실적이지도 않은 세월 속에서 사람들이 내게 제안한 모든 것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뭐가 중요해, 당신의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해, 오직 하나의 운명이 나를, 또한 나와 함께 당신처럼 내 형제를 자처하는 수많은 특권자를 선택하게 되어 있으니 말이야. 이제 이해가 돼, 이해가 되느냐고?
--- p.166
아무도, 아무도 엄마로 인해 눈물을 흘릴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게서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준 듯, 신호와 별들이 가득한 밤의 어둠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가슴을 열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았고 그토록 형제 같으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결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내게 남은 일은 처형일에 모쪼록 많은 구경꾼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기를 소망하는 것뿐이었다.
---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