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서후는 그 아무것에 상처받고 있었고 무심코 뱉은 말과 행동들로 서후에게서 받아온 달콤하고 무한한 사랑을 잃을 뻔했다.
---「정말 다행이다」중에서
적당히 비슷한 온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한 공간을 채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위안이 된다. 그 시간 안에는 종이책도 읽고 노트북과 씨름도 할 수 있으며 피식피식 웃어 보이기도 할 수 있다.
---「주말의 온도」중에서
밤낮으로 켜 있는 형광등 아래서 잠을 청해야 하고, 방금 전까지 눈을 맞추었던 옆 침대의 사람이 다음 날 숨을 거두는 것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들은 이곳이 죽을 만큼 싫을 테지만 다른 선택지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어 반찬」중에서
한 공간 안에 누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잠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잠을 청하는,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게 부디 꿈이기를 바라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둥글게 행복했으나 또 모질게 아픈, 여기 모든 이들의 이름 세 글자. 우리는 보.호.자.이다.
---「보호자」중에서
고작 몇 글자로 이루어진 쪽지를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우리」중에서라는 두 글자가 주는 힘은 흔들바위도 밀어 추락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쪽지를 서후 머리맡에 붙여두었고 서후에게도 엄마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전했다.
---「잘 먹고 힘내요, 우리!」중에서
인간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뇌사자가 나왔대요!” 하며 기뻐 환호하는 사람을 보며 누군가의 죽음이 그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에 소스라쳤고, 그 누군가의 가족이 울어낼 거센 울음을 생각하며 마른세수를 해댔다.
---「호박 캐러멜」중에서
육체적으로 나에게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펼쳐 들었다. ‘인간이 저런 환경에서도 살아지는데」중에서 하고 생각하고 나면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느껴졌다. 그도 그랬듯이, 이 세상 안에서도 분명 성취욕을 느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은 나를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위로받지 않은 시간」중에서
내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별안간 구멍이 숭덩 뚫려버린 기분이었다. 모두가 ‘도대체 언제까지 서후를 그렇게 힘들게 할 거야.」중에서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몸 어딘가에서 잃게 된 한 움큼 정도의 힘은 서후의 보살핌에 있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비누 냄새 좋다」중에서
절망만 가득했던 시간 안에 누군가의 ‘유머」중에서는 틈틈이 나를 살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없어선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참 재미있다. 공기, 시간, 평화, 자유, 사랑, 우정 그리고 유머.
---「사람들」중에서
추운 날엔 감기에 걸릴까 싶어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고 온갖 영양제를 털어 먹는 내가, 돌부리에 걸려 휘청이면 내 몸 어디라도 다칠까 싶어 애써 중심을 잡고, 아침이면 미세 먼지를 체크하는 내가. 나는 정말 죽음이 무섭지 않을까.
---「그 말이 그렇게 슬프더라」중에서
침대로 돌아간 할머니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낼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나와의 약속을 기억할 수 있을지, 잠이 안 올 땐 어떻게 그 긴 밤을 보낼지, 하루에 몇 개의 문장을 말하고 사는지, 그 와중에도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지, 죽는 게… 무섭지는 않은지.
---「왕할머니의 어떤 하루」중에서
한 인간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살아가던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 줄 누군가가 필요해졌다. 가끔 어린아이처럼 울었고 자주 좌절했다. 신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주신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큰 아빠」중에서
국어사전에서 개그맨을 검색하면 ‘익살이나 우스갯소리를 하여 일반 대중을 즐겁게 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중에서이라 정의되어 있다. 얼굴에 닥작닥작 끼어 있는 슬픔을 자그마한 익살로 거둬낼 수 있다는 것을, 당장에 오늘을 살아내기가 버거운 사람의 우환을 시답잖은 우스갯소리로 당장은 살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은 나의 친구이자, 관객이자, 시청자였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은 언제나 뜻깊다.
---「나만의 무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