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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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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372g | 138*203*20mm
ISBN13 9791159098413
ISBN10 115909841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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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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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길평의 사특한 이면에 머릿속이 아득했다. 왜 마땅히 의심하지 않았을까. 육중한 소리와 함께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시뻘건 불덩이로 변한 대들보가 재겸의 머리 위로 쓰러졌다. 간신히 몸을 피한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또렷했다.
반드시 살아야겠다.
--- pp.10~11

“정말로 너에게는 거짓말이 보이는 게야?” (……)
“예, 본시 사람의 마음이란 감추고 감추어도 터럭 같은 감정이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놀란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라도, 그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으로 또 다른 감정을 발견할 수 있사옵니다. 감정은 얼굴의 수많은 근육 중에 저마다 각기 다른 근육을 이용하여 독특한 화풍을 그려내는 화가와 같습니다. 그런 미세한 움직임은 벼락이 치듯이 찰나에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하나, 저에게는 그 찰나에 스쳐 가는 표정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좋은 눈썰미가 있사옵니다.”
--- p.60

“나를 실망시키지 말길 바라네…….”
임금이 낮게 속삭였다. 임금의 손에 쥔 게 엽전이 아닌 그를 향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느껴졌다. 실수할 경우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양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임금의 눈빛은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는 범과 같이 강렬했다.
--- p.61

심 대감의 얼굴을 관찰했다. 눈 위의 전택이 넓어 눈썹이 허공에 떠 있는 듯했고, 가늘게 찢어진 눈은 속내를 감추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콧방울은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자의 얼굴에 가까웠다. 대감이 임금과 뜻을 같이한다면 임금에게 큰 힘이 될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극히 위험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p.77

번개가 치자 대로가 창백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갓모 아래로 10년 전 재겸이 기억하던 그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깨비와 같은 눈을 한 개성상단의 대행수 길평이었다. (……) 단주 내외가 죽자, 상단의 단주 자리를 꿰찼다고 들었다. 재겸은 좌우를 둘러싼 이들을 살폈다. 어떻게 도망칠까 궁리했다. 이대로 정체를 들켰다간 길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겸을 죽이려 할 것이 자명했다.
--- p.110

“임금의 부름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겐가. 자네 같은 이들이 도성에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저 같은 사람이라뇨?”
재겸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대감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니.
“늦은 밤에 편전과 각료 사이를 오가는 이가 자네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p.133

도성의 4대 소문에 방이 붙은 건 이틀이 지난 뒤였다. 소식을 물어 온 건 소문에 귀가 밝은 서조였다. 임금과 심환지 대감이 비밀리에 서신으로 내통을 하여 탕평을 어지른다는 내용이었다. 재겸은 정수리에 대침이 찔린 듯이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임금께 이를 어찌 고해야 할지. 자신의 불찰인 양 머릿속이 새하얬다.
--- p.196

“나는 자네가 임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낭’을 위한 ‘패’가 될 거라 생각하였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으니, 주위 사람을 믿지 못하는 임금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자네 같은 이가 임금을 완전히 믿게 된다면 임금 또한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온 사람에 대한 불신을 누그러뜨릴 것이라 기대하였지.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게로구먼. 안타까울 뿐이네.”
--- p.223

재겸의 눈가에 살포시 눈물이 맺혔다.
“형님 왜 그래?”
복수심에 휘둘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임금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부탁한 일이 어그러지지 않았을 터였다. 재겸의 눈에서 촛농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슬펐다.

낭을 잃은 패의 얼굴이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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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정조의 ‘비밀 편지’가 과연 어떻게 오고 갔으며, 정조의 리더십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편지 심부름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그것이 이야기에 마지막까지 집중시키는 힘이다.
- 서미애 (소설가)
처음 읽을 때도, 그리고 두 번 세 번 읽을 때도 몰입할 만큼 작가의 솜씨가 비범하다. 성실하게 고증하고 그것을 재해석한 이야기의 무게감 역시 만만치 않다.
- 주원규 (소설가)
시정잡배에 불과한 주인공이 정조와 노론의 중요한 인물인 심환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이 흥미롭다. 게다가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그 사람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다는 착상도 돋보인다.
- 배상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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