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을 처벌하는 붉은 책과선행에 축복을 주는 푸른 책“착한 일을 하면 상을, 나쁜 일을 하면 벌을…….누군가를 불행하게 한 사람은 벌받아야 하잖아.” 우울함과 무기력에 잠식된 나날을 보내던 다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쩍은 책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의 주인이 되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화 같은 일들을 겪는다. 바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 이를 직접 처벌할 수 있게 된 것.『불행한 이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일명 ‘붉은 책’은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범행을 직접 본 뒤, 가해자의 몸에 손을 대고 처벌을 말하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고 나서부터 불우한 피해자로 살아온 다온은 ‘죄를 지은 자는 벌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망설임 없이 가해자들을 처벌한다. 그러나 몇 차례 사건을 해결하면서, 선과 악, 상과 벌을 구분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기만 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다온이 가진 ‘붉은 책’과 반대되는, 선행을 한 자에게 축복을 주는 ‘푸른 책’의 주인인 이해준, 그리고 다온과 오랜 악연으로 얽힌 친구 서연우가 각각 ‘붉은 책’의 피해자로 나오면서 다온의 세계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소설 『불행한 당신을 위하여』는 사람에게 상처받아 점점 더 벽을 세우는 이들에게,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끝끝내 낡고 닳아버린 우리의 마음을 구제하는 것 또한 타인의 선의라고 말한다. 사람들 때문에 우울하고 힘들 때, 나를 에워싼 주변의 모두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때, 그들도 각자의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열심히 분투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우리는 조금씩 너그러울 수 있게 되니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다온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생을 들여다보고, 어쩌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그들의 과오를 용서하는 법을 얻어 가길 바란다.끔찍한 화재로 모든 걸 잃었던 청춘들의 멈춰버린 시간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8년 전,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가 저지른 방화로 엄마가 죽고 난 뒤, 그전에 아빠를 신고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다온은 점점 더 불행해진다. 그리고 신고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자신을 말렸던 연우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지만, 그런다고 어깨를 짓누르는 죄책감과 우울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질기디질긴 악연의 끈으로 묶여 있던 다온과 연우의 관계는 ‘붉은 책’을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달라진다. 다온은 어렸던 연우 역시 피해자임을 깨닫고, 연우는 자신을 꽁꽁 얽매고 있던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된다. 무게 추가 다온에게로 한껏 기울어져 있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서로를 마주 보면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거듭난다. 그렇게 8년 전 멈추었던 두 사람의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역설적이게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하게 나뉘는 ‘붉은 책’을 통해 다온은 그 경계를 의심하게 된다. ‘붉은 책’은 작중 절대적인 존재가 만들었을 거라 추정되는 신비한 물건이지만, 그러한 책에서마저도 선과 악, 상과 벌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책이 보여주는 대로 자신만만하게 악인을 벌하던 다온은 피해자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보고 나서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점차 배워나간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희롱 단톡방의 가해자를 벌해도 피해자의 고통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고, 음주 운전자를 벌해도 이미 죽은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붉은 책’은 가해자를 처벌하게는 해주지만, 피해자를 위한 조치는 알려주지 않는다. 사건이 지나간 뒤에도 그 여파를 견뎌야 하는 피해자들이 회복하여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온전히 다온, 자신의 선한 의지다. 고통을 겪는 과정은 괴롭기만 하지만 이를 견디고 마침내 이겨내는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비록 현실에 ‘붉은 책’이나 ‘푸른 책’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타인의 삶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서로를 구제해 줄 손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게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어쩌면 다온과 연우, 그리고 ‘붉은 책’에 피해자로 나왔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주변에서 마주하는 얼굴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