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민주화, 글로벌화, 디지털화라는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이건희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기 위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고 삼성의 대대적인 변신을 주도했다. 신경영은 삼성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질적 고도화를 통해 21세기 글로벌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신경영의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성은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신경영 초기의 유명한 슬로건처럼 대대적인 변신을 꾀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여 휴대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전자산업의 주요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삼성의 전략, 경영시스템, 핵심역량 등 경영의 모든 요소는 신경영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재정렬되었고 그 결과 세계 일류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pp. 5-6
21세기 초반 지식기반경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컨버전스 현상의 심화로 기존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데다가 글로벌 초경쟁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이클 포터가 주장한 것처럼 하나의 전통적인 경쟁우위 원천에만 의존해서는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기 힘들어졌다. 다시 말해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선 서로 상충되는 복수의 경쟁우위 원천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지식기반경제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초경쟁 상황으로 인해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고자 하는 일류기업들은 앞다투어 차별화와 저원가, 창조적 혁신과 효율성, 규모의 경제와 스피드, 글로벌 통합과 현지화 등 복수의 상충되는 경영목표 내지 경쟁우위요인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 이처럼 복수의 경쟁우위 확보를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과 일부 선도 기업들의 성공사례에 힘입어 소위 ‘패러독스 경영’이 최근 경영학의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순적인 성질을 지닌 사물이나 상호배타적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패러독스(paradox, 逆說)’라고 한다. 패러독스 경영이란 차별화와 저원가, 창조적 혁신과 효율성, 글로벌 통합과 현지화, 규모의 경제와 빠른 속도 등과 같이 얼핏 보면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요소들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을 의미한다. ---pp. 34-35
삼성은 신경영 선언 초기에 추진했지만 사회분위기 및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구조개혁을 과감하게 실행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면모를 보였다.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신경영의 추진이 외환위기라는 큰 위기를 변신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똑같이 IMF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삼성만 성공한 비결은 신경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신경영의 정신인 창의, 도전, R&D, 국제화, 고객 중시 등이 잘 조화가 되었고, 경영진과 핵심인력 사이에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학습되었다. 질 경영으로 가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되었고, 이것이 외환위기 극복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감축, 삭감에 그치지 않았다. 전자, 금융, 무역, 서비스와 같은 핵심사업에는 더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는 불요불급한 투자는 줄였지만 삼성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유망 사업부문에 대해서는 집중투자하여 세계 1위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울러 철저한 책임경영과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경영평가와 보상제도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한 결과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pp. 95-96
삼성은 세계 초일류기업을 비전으로 선택하고, 신경영 혁신으로 ‘질’ 중심의 경영을 추구하면서 ‘가장 좋게’, ‘가장 먼저’를 중심으로 제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No.1 또는 Only 1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월드베스트(World Best) 경영철학이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을 이끌어온 기본 모토였다. 한 회사에서 한 개의 제품이라도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자는 ‘1사 1품’ 운동,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자는 ‘월드베스트 운동’, 전 세계 소비자들이 ‘와우(Wow!)’ 하고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자는 ‘와우 프로젝트’ 등이 삼성이 추구하는 제일주의의 새로운 내용을 반영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최근 삼성은 단순히 시장점유율, 기술에서의 1등만 추구하지 않고 해당 산업에서 진화를 주도해나가는 기업, 새로운 유행과 문화를 창조하는 기업을 지향하면서 제일주의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 그런 기업이 되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선발, 영입, 개발하고, 기술력은 물론 마케팅 역량, 디자인 역량, 브랜드 역량을 높이기 위해 집중 투자해왔다. 이런 노력이 성과로 연결되면서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p. 188
자원기반 이론 및 보다 진화된 형태로서의 동태적 역량 이론을 적용하여 다수의 인터뷰와 자료를 심층분석해본 결과, 삼성이 신경영 혁신 이후 ‘질적 도약을 통한 초일류기업’이라는 전략적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반도체, 휴대폰, TV, 디스플레이 패널 등 전자산업에서 창출해온 동태적 핵심역량은 ‘스피드 창출역량’, ‘복합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역량’, ‘진화적 혁신역량’ 등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었다. 스피드 창출역량은 신제품개발부터 출시까지 소위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의 관점에서 경쟁자보다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복합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역량은 그룹 및 회사 내에 광범위하게 산재한 지식, 정보, 기술 등의 자원을 협업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연계하여 추가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을 뜻한다. 진화적 혁신역량은 기존의 기술경로 내지는 제품 도메인 내에서 기존 제품이나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역량을 의미한다. ---p. 203
삼성의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신경영 이후 21세기 들어 경쟁자가 쉽게 모방하기 힘든 차별화된 핵심역량과 경쟁우위를 확보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실적을 달성해왔다. 하지만 경쟁우위를 영속시키고 창조경영을 실천하는 글로벌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삼성 웨이를 진화, 발전시켜 나가야만 한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에도 경고했듯이 삼성은 아직 글로벌 초일류기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은데다가, 장기적으로는 삼성의 주력사업들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초일류기업이란 원천기술 및 표준을 장악하여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나 신산업을 창출함으로써 산업발전을 주도하고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창조적 혁신을 주도하거나 필요시에는 자신의 기존 제품과 사업을 잠식하는 창조적 파괴까지도 실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기업이다. 또한 글로벌 초일류기업은 위대한 CEO 한 명에 의해 높은 실적이 달성되어서 그가 물러나면 더 이상 그러한 수준의 실적을 보일 수 없는 기업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우월한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지속시키는 기업이다.
---pp. 34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