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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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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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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95쪽 | 376g | 148*210*20mm
ISBN13 9788996775768
ISBN10 899677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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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는 게 이토록 급습이더냐. 삶이 이토록 허술한 것이더냐! 마치 길 가다가 누군가와 어깨가 툭 스쳤는데 그것도 인연이라고 당신이 이번에 죽을 차례군, 하고 생짜를 부리는 거와 뭐가 다르냐. 복불복인데 뭐 어쩌겠냐고? 좋다. 그렇담 사람을 수십 명 죽인 흉악무도한 연쇄살인범조차 최소 몇 년은 살다가 형이 집행된다. 근데 뭐라? 삼 개월? 육 개월?
에라이 이 개 같은 눈도 못 뜬 저승사자 놈들아! 난 아버지다. 두 아이의 아빠다. 너거들은 애 한번 안 키워본 고자고 내시들이냐!
그는 발버둥질 치면서 고래고래 울분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거칠게 울음을 사방의 벽에 뿌렸다. 하지만…… 이게 어디 싫다고 해서 뿌리칠 수 있는 것이며 감춘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것인가. 삶에 이미 죽음의 얼룩이 선연하게 묻어버렸다. ---pp.82-83

사람 사는 게 뭐 이러냐? 나는 사람이 아니고 유령 같다. 내가 이렇게 좀비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될 줄…… 난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 그동안 많이 지난 과거를 되짚어보고 생각해봤다. (……) 근데 말야. 우리나라 사회가 진짜 너무너무 야박하지 않냐. 누군가 한번 무너지면, 스러지면…… 절대 다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패도지(一敗塗地)야. 다신 못 일어나! 난 그게 너무나 서럽고 원망스럽다. 그 어디에도 패자부활전이란 게 없어. 생각해봐라. 넌 무섭지 않냐?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판단을 잘못 내릴 때도 있고 실수도 하잖아. 실패할 수 있어. 사람이니까…… 그래…… 모두가 실수를 저지른 내 탓이라고 해서 당연히 나도 그렇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pp.113-114

무섭습니다. 아버지…… 그 생각만으로도 전 숨 쉬기조차 힘듭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께 자랑할 마땅한 게 하나도 없는 못난 자식일 뿐인데…… 그것도 모자라 숭악하기 그지없는 놈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처자식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홀어머니를 세상 아닌 지옥에 남겨두고서 제가 무슨 면목이 있어…… 그 세상으로 건너가 아버지를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이런 운명이 제게 주어진 게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어떻게…… 아버지, 아버지께서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너무나 염치없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로선 아버지께 하소연을 올리고 간청 드리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다면…… 네, 절 좀 구해주시고 제발 살려주십시오. 도둑처럼 들이닥칠 제 운명이 비켜나게, 저로부터 비켜나게 해주십시오. ---pp.151-152

그녀는 슬픔과 충격에 탈진한 얼굴이 되어 간신히 방문턱을 다시 넘어와서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슉슉슉, 서걱 서걱 서걱……. 그렇게 하염없이 쏟아지는 흰 눈발…… 그녀의 눈물이 끊임없이 눈송이가 되어 허공에서 흩날려 내려오고 있었다. 방문 밖을 그렇게 한참이나 넋 놓고 바라보던 그녀는 어떤 생각이 미치자 지난밤 그가 기대앉았던 맞은편 벽 쪽을 황급히 돌아보았다. 문득 그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여전히 앉아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없다. 벽과 방은 그의 부재로 텅텅 소리가 나도록 완전히 비었다. 그녀 마음도 하얗게 질린 채로만 터엉 비었다.
---pp.286-28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주민등록번호 630812-1690×××, 그의 이름은 김민호다

실직과 동시에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사십대 가장 김민호는 갑작스럽게 찾아든 죽음을 앞두고 여느 남자들과 다를 바 없었던 직장생활과 가장으로서의 입지를 돌이켜보면서 비탄에 잠긴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가장으로, 아버지로 살기 위해 단순하리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가족을 위해 회사에 몸 바쳐 충성했으나 결국 회사와 가정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다. 죽음을 앞두지 않았다면 돌이켜보지 못했을 그의 인생은 내내 소리 없는 전쟁 같았고,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이라는 시집살이보다 더 맵고 쓰라렸다. 김민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와 처자식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세상의 볼모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향해, 그리고 그를 그토록 무력한 병사로 만들어버린 세상을 향해 북받치는 눈물과 떨리는 주먹을 날린다.

좌절과 분노를 삭이고 삶을 정리하는 김민호는 고향에 계신 노모에게, 추억을 나누고 마음을 녹여주는 동창생들에게,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와 아들, 딸에게 앞으로의 삶을 당부하며 진정한 애정과 책임, 삶과 죽음을 반추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는 결국 혼자서 죽음을 맞으며 ‘용감한 무명병사’로서 자기의 세상을 끝까지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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