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조건화의 맥락에서 탑에 올라갔다가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바람에 고소공포증이 생긴 사람은 부정적인 강화로 말미암아 고소공포증을 느낄 만한 상황들을 피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하여 휴가 중에 나머지 가족들은 다 산이나 에펠탑에 올라가는데, 본인은 그냥 호텔방이나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행동으로 인해 이전의 경험을 교정할 기회가 차단된다. 즉, 전에 특수한 조건에서 A도시의 X탑에 올라갔을 때 나타났던 공포가 산이나 에펠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Y탑에서 멋진 경험을 하지 못한 채, 회피행동을 통해 불안이 계속 유지되고 강화된다. 이렇듯 고전적 조건화나 관찰 학습이 조작적 조건화와 맞물리는 것을 ‘불안의 2단계 모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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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의 유효한 분류 체계에 따라, 불안이나 공포 반응이 ‘병적인 것’이 되려면, 언제나 ‘심리·사회적 고통 내지 피해’로 이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자신의 불안과 공포로 인해 감정적으로 ‘고통’을 당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기분이 안 좋아진다거나, 두려움으로 아주 예민해진다거나,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정신 건강이 일반적으로 나빠진다거나 하는 식이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피해’ 역시 불안장애의 중요한 특징이다. 어두워지고 나서 개와 마주칠까 봐 더 이상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자신의 여자 친구처럼 다발경화증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된 나머지, 밤에 다발경화증에 대해 찾아보는 등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 때문에 극도로 피로해져서 낮 동안에 자신의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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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안장애는 당사자들에게 뚜렷한 고통과 피해를 안겨준다. 각각의 증상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스트레스 외에도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한 회피행동이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행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을 더 이상 겪고 싶어 하지 않으며, 도움 수단이나 특정한 전략을 빌려서만 그런 상황을 견딜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들과 동행해야 하거나, 안정제를 복용하거나, 여차하면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잘 충전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듣거나 뭔가를 마시면서 주의를 돌려야 한다. 보통 어느 순간부터는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땀이 나거나 어지럽거나 속이 메스꺼워지는 등 공포나 공황 증상을 유발하는 활동들을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더 이상 신체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사우나에 가거나, 따뜻한 날씨에 야외에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안장애는 이런 방식으로 행동반경을 무척 좁게 만들어 당사자들의 삶의 질을 대폭 떨어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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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수동적이고, 위축되고, 종종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전의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지면,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친구들 역시 굉장히 힘들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런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당사자조차 자신의 질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대개는 속수무책이고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친구들도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며, 이 고통은 종종 당사자가 겪는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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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를 취급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처럼 우리 역시 불안장애 클리닉에서 단계적 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가능한 한 인지행동치료 형태의 심리치료를 우선적으로 제공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약물치료에 비해 원칙적으로 더 유익하다. 약물치료보다 환자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행동치료를 위해 치료자는 환자에게 공포를 지각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환자들이 인지한 불안을 스스로 재학습하게끔 한다. 다양한 치료 기법들을 불안장애를 촉진하는 모든 요인들에 대응하는 알맞은 도구가 들어 있는 도구 상자처럼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기법들을 숙지할 뿐 아니라, 적절히 훈련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치료를 마칠 무렵에는 이상적인 경우 자신의 증상을 안정적으로 경감시키고, 불안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자기 효능감과 치료가 끝낸 뒤에도 지속되는 효과는 약물치료로는 달성할 수 없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기대인 까닭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 질환을 극복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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