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가 〈대중 연설〉 〈도시인처럼〉에서 인터뷰한 프랜 리보위츠,
이토록 ‘불편한’ 70대 뉴요커에게 왜 세상은 존경과 웃음으로 화답했는가?
“프랜은 무궁무진하다. 그 개성하며, 박학다식함, 명석한 생각, 그 무엇보다 유머가 끊이지 않는다.”
_마틴 스코세이지
2021년 넷플릭스에서 마틴 스코세이지가 프랜 리보위츠와의 인터뷰 영상을 주제별로 엮어낸 7편의 인물 다큐 시리즈 〈도시인처럼〉이 방영되면서, 프랜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 뉴욕의 1970년대를 인상적으로 묘파해 보인 〈택시 드라이버〉(1976)의 감독이자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봉준호 감독이 존경을 표하기도 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노장다운 여유 있는 추임새와 시원한 웃음을 곁들여 시리즈 내내 이 70대 뉴요커 프랜 리보위츠의 화통하고도 솔직한 화술에 빛을 더해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 이미 HBO 〈대중 연설〉로 프랜 리보위츠를 매스미디어의 스타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이 노장 감독은, 왜 일찌감치 이 인물에 주목해 이토록 여러 편의 영상으로 담아내려 했을까?
오늘날 딱딱한 세대 및 계급 담론의 경계를 허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촌철살인의 유머로 대도시를 사는 현대인과 그 문화 전반을 통렬한 한 방으로 깨부수는 지성인, 그를 가리켜 영미 언론은 오스카 와일드와 도러시 파커의 명맥을 잇는 진정한 위트와 격언의 재담가로 추켜세웠다. “미국의 지성인을 상징하는 작가”(르 몽드), “뉴욕의 위대한 칼럼니스트이자 풍자 작가”(리브르애브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고 재치 있는 인물”(슈테른), “미국에서 제일 재밌는 여자”(워싱턴 포스트), “지금도 앞으로도 지성과 유머의 기준이 될 인물”(데이비드 세다리스) 등 해외 유수의 언론에서도 그에게 공감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가 소리 높여야 할 일에는 체면과 실속을 챙기느라 눈을 감는, 이른바 인정 욕구에 잘 길들여진 현대인의 능수능란한 처세와 매너와 계발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프랜은 대놓고 사람들의 통념을 까발리며 (어떤 사상이나 인물의 대변자로서가 아닌) 오직 프랜 리보위츠 자신으로서 신랄하며 지독한 비판에 진정 짓궂은 현자마냥 웃음까지 곁들여 물렁머리와 고무가슴을 강타한다. 심술을 이렇게 써도 좋다면, 그는 진정 심술궂은 독심술사다.
세상에 날 때부터,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만사가 요리조리 다 보여 절로 나오는 ‘불평불만’과 오만상 찌푸리게 하는 ‘언짢음’을 맵시 있게 장착한 프랜 리보위츠, 그에게는 “일상생활 자체가 도전”인 만큼 만인의 도시 생활과 일상의 문화가 자기 재담의 소스다. 모두의 공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비판이든 찬탄이든 허를 찌르는 그의 농담에는 불편한 진실이 스며 있다. “책은 거울이 아니라 문”이라고 말하는 엄청난 다독가이자 토니 모리슨, 마틴 스코세이지, 찰스 밍거스, 로버트 메이플소프, 루 리드, 칼 라거펠트 등과 교류한 뉴욕 문화예술계의 산 증인이기도 한 그는, 세상에 대한 “복수 계획”과 “애정하는 흡연”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러브콜을 받는 이 시대 최고의 강연자이기도 하다. 누구든 아는 만큼 똑똑히 웃을 수 있게 하는 체화된 지성, 막힘없이 불꽃처럼 터져올라 현대인의 불면과 몽매의 밤을 반짝반짝 날카롭게 수놓는 자유로운 웃음은, 세상에 선 단독자로서 적당한 타협도 속셈 있는 침묵도 어설픈 공감도 바라지 않은 채 명랑한 매운 맛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오늘의 비평 언어가 감히 가닿길 주저한 자리에서, 유머와 지성을 겸비한 인물 프랜 리보위츠의 화법은 더없이 폭넓은 대중을 끌어모은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도시인이, 진정 화통한 웃음이, 지금 우리에게 도착했다.
만평가이자 유머 작가로서의 프랜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책
: 『대도시 생활』과 『사회 탐구』 2권의 새로운 부활!
『나, 프랜 리보위츠The Fran Lebowitz Reader』(1994)는 프랜이 이삼십대 여러 잡지에 기고한 칼럼 에세이를 묶은 선집이다. 부별 큰 제목에서 보다시피, 『대도시 생활Metropolitan Life』(1978)과 『사회 탐구Social Studies』(1981)로 이미 별도의 책으로 발간된 바 있다. 21세에 (재즈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부인) 수전 그레이엄 응가로가 창간한 잡지 『체인지스』에 실은 프랜의 영화 및 도서 리뷰를 본 앤디 워홀이 프랜을 그가 창간한 잡지 『인터뷰』의 정기 칼럼니스트로 고용했고 이후 프랜은 『마드무아젤』에도 글을 발표했는데, 이를 묶어낸 것이 『나, 프랜 리보위츠』의 첫 부분 ‘대도시 생활’이고, 그후 여러 잡지에 발표한 글을 묶은 책이 뒷부분 ‘사회 탐구’다. 방송 출연으로 점점 유명해져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새로 1994년에 단행본으로 낸 것이, 오늘날 보기 드물게 40여 년의 시차를 너끈히 뛰어넘어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그간 그의 글을 찾아 읽으려는 독자들의 요구로 거듭 재출간되던 이 책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현재 그는 2023년 4월까지 영미, 유럽 등지에 강연 투어가 예약되어 있을 정도다.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는 70대 뉴요커, 이 고독한 웃음 사냥꾼 프랜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핸드폰도 이메일도 쓰지 않건마는, 그런 현대 기기들로 퍼져나간 영상 덕에 오늘날 새롭게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마틴 스코세이지의 소개로 영상이 공개된 당시, 이 책 『나, 프랜 리보위츠』는 미국 온오프 서점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공공도서관 도서대여 시스템에 열띤 예약 대기가 줄을 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논평에 엄청난 청중들이 공감과 존경 어린 환호를 보내며 그의 신작 출간에 대한 기대가 끊임없이 쇄도했으나, 1994년 동화 한 편을 더 낸 이후부터 지금까지 프랜은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 더이상 책을 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책은 독보적인 만평가이자 유머 작가로서의 프랜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라 할 수 있다.
프랜의 글은 편편이 짧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정말이지 게으른 사람이다. 글쓰기는 진정 고된 노동이다. 나는 힘든 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 기자가 90년대부터 쓰고 있다던 소설이며 논평 에세이에 대해 묻자 프랜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의 글줄 어느 하나도 그냥 쓴 게 없다는 반증이다. 그저 농담 한번 던지고 말겠다는 자세는 어디에도 없음을 이 책 속 여러 챕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한 편 한 편이 생존형 작가로서의 각오와 소신을 확실히 밀어붙여 나온 프랜 특유의 중의적 유머로, 강렬하고도 반짝이는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사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사람의 진실과 세상의 이치’를 겨냥하고 있기에,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그의 탄산성 유머는 짜릿하기만 하다.
생활밀착형 위트의 최고봉, ‘촌철살인 중의적 유머’의 시원한 한 방
“동시대의 독자?이 고독한 존재여?당신에게 이렇게 고하고 싶다. 여기 담긴 글들을 원래 쓰인 당시, 그리고 지금 또다시 의도한 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바로 예술사로서. 하지만 조금은 다른... 현재진행형인 예술사.” _프랜 리보위츠
프랜이 첫 책을 낸 1970년대 말의 뉴욕을 가리켜 “뉴욕 역사상 가장 어둡고 황량한 시기”로 이야기한 작가 에드먼드 화이트는 프랜을 가리켜 “미국에서 제일 재밌는 여자”라고 했다. 물론 프랜의 유머 속에는 냉전의 연장선상에 있던 불안정한 미국의 소비사회에서 자본과 문화가 자유와 타락의 쌍생아처럼 붙어 있던 1950~1970년대 말까지의 긴장이 있다. 일례로 초등학교 시절 당시 미국의 사회 교과에서 가르치던 반공 교육 도표와 이후 성장해서 만든 자기만의 도표를 비교한 글 「읽어야 산다: 의견 수정안」에서는, ‘러시아와 미국, 공산주의자와 뉴욕 시민’이 생활 물품을 구입하는 데 얼마만한 노동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를 비교하며 신랄한 웃음을 자아낸다. 또 자신이 겪은 뉴욕의 소호를 중심으로 한 예술문화 한복판의 도시문화 풍경이 스케치되기도 한다. 추상표현주의와 개념미술 등 당대를 풍미한 현대미술계와 대중의 이해도 간의 괴리감,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설리번, 르코르뷔지에, 반데어로에 등의 건축가들의 구호가 아주 착실히 유머 소재가 되는가 하면, 이제 막 영화산업이 일어나며 (성공한 영화들이 소설로 각색되어 출간되던) 소설화에 대한 세태 비판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손톱 손질에서 시작된 전화 통화가 손톱은행으로 화하는 상상에서부터 보석(돌)을 어떤 걸 착용하는지에 따라 인간의 기분이나 내면까지 건드리는 액세서리까지, 미용산업도 그의 기발한 만평으로 되새김질된 걸 보면 그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디지털시계와 전화기 같은 첨단기기 발명과 한창 화성 탐사와 원자핵 연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1960~70년대의 과학계 이슈, (미정부에서 처음으로 에이즈를 명명했던 1982년 이전이긴 하나 1969년 스톤월 항쟁이 있던) 당시의 예술계 주변부와 성소수자 문화를 짐작케 하는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스케치 등이 군데군데 촌철살인 만평의 소재로 기막히게 활용된다.
또한 대도시에서 필연적으로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만인의 문제, 일상 전반이 모두 그의 유머 소재다. 오죽하면 “물리법칙은 재미가 없고 수학기호는 중의적으로 손쉽게 이용해먹기 힘들고 화학적 성질은 경박한 유머 소재가 흔히 될 수 없기에” 과학은 물론 과학자를 재미없다 할까. 말인즉슨 그의 불평불만 유머 소재는 확실히 생활밀착형이다. 집 또는 가사도우미 구하기의 어려움, 길거리 혼잡 소음과 음악 사이의 간격, 옷에 박힌 로고나 개념 없는 프린팅에 대한 불만, 택시기사끼리 주고받는 놀라운 은어의 세계, 우편배달 지연의 이유와 우체국공무원의 내면을 연계시킨 상상적 변명 사유, (안 그래도 식물이 싫은 사람인데) 난처한 실내화분 선물과 인간관계 문제, 애완동물(프랜에게 인간은 집안에, 동식물은 집밖(자연)에 있어야 할 존재들로, 오늘날의 ‘반려’를 내세울 수 없다)에 관한 의견, 무작위로 잡다한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에 대한 의문, 빌트인 가구가 딸린 최첨단식 주거건축 인테리어의 무신경함과 고가의 집값에서 오는 혼돈이 묻어나는 속엣말, 현대인의 필수품인 고강도 스트레스를 활용한 비장의 황당무계한 다이어트 방법 소개, “배심원 앞에서 재판받을 권리뿐인 이들이 수행하는 위험하고도 피로한 활동”으로 스포츠를 정의하는 프랜이 소개하는 획기적인 이색 스포츠, 공공장소와 흡연자 간의 문제, 돈과 날씨와 부동산의 관계, 부모와 자녀, 어른과 어린이, 청소년과 성, 세금과 빈부 격차 문제, 심신단련의 자기 개발 열풍과 사이언톨로지의 부흥에 대한 심심한 유감 등이 재치 있는 격언과 더불어 펑펑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장사는 어떠냐?”라고 묻는 할머니한테 밥벌이로 글 써서 사람 웃겨 먹고사는 직업을 어떻게 알아먹게 설명해드릴까 하는 차원에서 구상한 「최후에 웃는 자」, 시기심도 열기도 대단한 뉴욕의 작가들이 전면 파업에 돌입해 온갖 언론매체와 시군 행정단체가 교섭에 나선 세상에 한 번도 없던 파업을 상상한 글 「작가 파업: 오싹한 예언」, 아직 쓰지 않은 작품에 고액 계약을 내미는 출판 및 할리우드의 상업적 시스템을 농락하는 프랜만의 통쾌한 일격을 보여주는 「갖기와 안 하기」 등은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절절한 공감을 표하며 실소를 머금게 할 만하다.
이처럼 프랜의 유머에는 도시인으로서 마주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인식과 인종, 계급, 젠더, 경제 및 문화 불평등에 관한 교차적 사유가 촘촘히 녹아들어 있다. 일명 ‘모두까기’로 불리는 프랜은 자신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 방법을 배우고픈 마음도 없다”며 “역사 전반에 걸쳐 무리를 지어 단결하는 안타까운 경향”을 보여온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누구의 입장도 아닌 오직 자신의 편에서 말한다. “난 혁명가가 아니다. 댄디에 더 가깝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감옥에 안 가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며 자신이 건너온 세월을 갈무리한다.
그러하기에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자 유대인이자 칼럼 써서 그날그날 먹고사는 작가로서의 여러 정체성이 그가 겪은 도시사회 및 일상생활과 차지게 버무려져 타격감 있는 유머로 다가온다. 젊은 날에 청소부, 대학생 과제 대필, 개인 기사, 택시 운전사, 포르노 작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만큼, 이른바 그가 겨냥한 신랄한 웃음은 소위 뼈 있는 경험에서 나온 한마디인 것이다. 현재 11,000여 권의 장서를 지닌 다독가이자 정독가인 그는 “세상에 버릴 책은 없다.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인간은 있어도”라며 이렇게 말한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읽어라. 혼자 지어내지 않은 것을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