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클릭되는 그림 속 세계
--- 정민경 (bennys@yes24.com)
미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기억도 까마득한 예술 기원설을 떠올려 보면, 주술적인 효험을 믿었거나, 혹은 우연히 시작한 낙서가 즐거워서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답이 무엇이건 간에 태초의 미술과 인간의 생활은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미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회자되는 <모나리자>, 그림 못 그리는 현대 화가의 대명사 피카소, 혹은 (좀더 상식이 풍부하다면) 뚱뚱한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정도이다.
그러나 <모나리자>의 뒷배경은 르네상스의 과학적 정신을 대변하는 원근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피카소의 못 그린 그림은 현대 아방가르드의 실험 정신의 산물이며, 저 멀리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풍성한 생산을 위한 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미술관의 그림들은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림 한 장으로 지나간 시간과 세계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사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간다면 제일 좋겠지만 이건 지역적, 경제적 한계로 접어둘 수 밖에 없으니, 책의 도움을 얻는 방법이 있겠다. 캐롤 스트릭랜드의 『클릭 서양 미술사』는 이럴 때 살가운 동반자가 될 만한 책이다. (진품을 못보고 책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원서인 『The Annotated Mona Lisa』도 지척이 미술관이지만 그림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 미국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므로.)
『클릭 서양미술사』의 미덕은 우선 아주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보통 미술사 서적은 역사서인만큼 어느 정도 어렵기 마련이다. 대개 저자들은 하나라도 많이, 자세히 알려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긴 글과 전문용어의 유혹에 빠지기 일쑤다. 서양미술사의 바이블 격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Story of Art』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History of Art』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고전이지만, 명성 덕분에 오히려 덤벼들기에 다소 각오가 필요하다.
반면 『클릭 서양미술사』는 만만하고 부담이 없다. 긴 글을 피하고 곳곳에 비교 도표, 요약란 등을 사용해 이해를 돕는다. 친절하게 표로 정리된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 구별법", "아프리카의 미술이 서양 미술에 미친 영향" "한눈에 보는 건축의 역사"등은 당장 시험 답안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일목요연하다.
곳곳에 배치된 상자 글도 눈길을 끈다. V-8장 인상주의의 앞부분을 잠깐 살펴보면, 몇 안되는 페이지 안에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각각 구별하는 법', '마네의 패거리들', '살롱전' '아트 딜러' 등의 짧은 글들이 여러 개 들어가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의 또 다른 미덕 "쉽게 쓰면서도 학문적 무게를 잃지 않은 점" 이 빛을 발한다. 앞에 열거한 꼭지 글들은 아방가르드 미술가 그룹의 태동(마네의 패거리), 기존 미술계의 권위 붕괴(살롱전), 미술가와 후원의 현대적 형태(아트 딜러의 출현)라는 진지한 주제와 닿아 있다. 흥미거리 정도로 보이던 글들이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아, 역시 많이 아는 사람이 쉽게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도, 그래도 혹시 지루해 진다면 중간중간 곁가지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나 화가의 개인적인 사생활 등을 읽어보자. 여성을 싫어했던 드가의 인품, 고갱과 고흐의 남다른 우정, 파티광이었던 루소의 이야기가 솔깃하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의 미술까지를 다루고 있는 것도 반가운 점이다. 사실 미술 비평서가 아닌 미술사 서적에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father' of video art)로 백남준을 소개한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가끔씩 해외 토픽란을 장식하는 엽기적인 미술 작품들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한국판의 제목을 『클릭 서양미술사』로 결정한 것은 참 알맞은 선택인 듯 싶다. 클릭하면 끝없이 하이퍼링크로 내용이 연결되는 인터넷 화면처럼 서양 미술사라는 하나의 주제를 풍부한 내용과 다양한 관련 코너들로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이번 방학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대학생? (이제 루브르 미술관을 30분만에 주파하는 것은 그만두자),
아이들과 함께 갤러리를 찾고픈 어머니? (바스키아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미술관에 데려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여주었고, 그 충격은 평생 그를 이끌었다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찾는 직장인들? (이름이 남은 미술가들 정도면 각자의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이었으므로).
혹은 일상에 지친 우리들? (아름다움에 대한 화가의 신념과 의지가 눈물겨워 나태한 삶의 자세가 부끄러워질지도 모르니).
하지만 무엇보다도 『클릭 서양미술사』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면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 미술의 세계이므로… 그리고 이 책은 그 세계를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