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호사다마
1832년 임진년. 순조 32년 임상옥은 곽산군수로 제수되었다. 한 갓 장사꾼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임상옥은 일찍이 신미년에 일어난 홍경래 난 때 수성의 공으로 국가로부터 오위장의 벼슬을 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신사년에는 변무사를 수행하여 연경에 들어가 공을 세웠으므로 완영중군의 벼슬을 받았으나 역시 이를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곽산군수로 제수된 것은 임금이 직접 내린 특지였으므로 임상옥이 이를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ㅏ. 이를 사양하면 어명을 거스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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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또한 칼은 쓸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 되는 것이지 예리하게 갈고자 하면 날은 지나치게 서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금은보화를 지나치게 가진 자는 남의 시기를 사게 되며, 도한 부귀해져서 교만해지면 상황이 어지러워져서 결국 이 모두를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적당히 성공한 후에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해서는 아니되며 적당히 때를 보아서 물러감이 바로하늘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은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않으며, 또한 무리하지도 않고 공을 이루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 즉 자연의 도리인 것이다'
우명옥은 노자가 말하였던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는 천도를 깨우쳤으며, 또한 그 깨우침을 노자가 말하였던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게 되고 만다 '의 문장에서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 즉 게영배의 이름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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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옥이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다.
"송이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소."
그러자 산홍은 긴 담뱃대에 불을 붙여 뻐끔뻐끔 연기가 나도록 빨고는 한참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어둠이 내린 바깥을 내다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이년이 송이의 어미를 만난 것은 한 20년 되었나이다. 그때가 어느 핸가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한바탕 온 나라에 난리가 났던 바로 그때였나이다. 그때 이년의 나이가 열넷인가 열다섯이었고 고행은 철산이었는데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서 아비가 방물장수에게 팔아넘겨 그 길로 기생어미 홍매의 양딸로 들어갔다가 기생으로 나섰던 바로 그해였나이다..."
산홍은 넋두리를 하듯 말을 이어 내려갔다.
"...바로 그해 봄인가, 여름인가에 어느 날 한 아낙이 관노로 들어왔었나이다. 소문에 듣자 하니 난리 때 능지처참당하여 죽은 대역죄인의 부인이었다고 하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싶고, 손은 섬섬옥수에 자태 또한 고와서 공노비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여인이었나이다. 신공으로 관아에서 나오는 대소 빨래는 물론 때에 맞춰 음식을 차리는 선상노비였는데 하는 짓이 영 서툴러 무진 애를 먹곤 하였나이다. 나이는 대략 스물대여섯 정도로 보였는데 남편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 당해 죽고, 있던 자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노비로 팔려간 뒤끝이라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나이다."
---p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