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해 알아보자. 자, 여러분은 노동이 뭐라고 생각하지?”
노동이라니! 노동에 대해 딱히 무슨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전에 아파트 공사장을 지나다가 본 벽돌을 나르는 아저씨들이 생각났다. 함께 걷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우리 아들은 저렇게 힘든 막노동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회사 다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노동에 대해 말했다.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는 거요!”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요!”
선생님께서 우리를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질문했다.
“노동이라고 하면, 공사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이 생각나지? 그럼, 육체적으로 힘을 쓰는 것만 노동일까?”
그게 노동이 아니면, 뭐가 노동이란 말인가? 이때 똑 부러지는 목소리, 역시 진경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노동이에요. 사무직 노동자나 가사 노동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 맞았어.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하는 일이나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나 모두 노동이야. ‘노동’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나 문화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만드는 일이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는 직업 대부분이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
삼촌은 이제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을 보러 다니지도 않는다. 내 눈에는 자기 방에서 게임만 하던 삼촌과 기타를 치고 밴드 활동을 하는 삼촌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삼촌은 여전히 사람 구실 못 하는 아들이고, 대학까지 나와서 놀고먹는 ‘백수’다.
“대학까지 나와서 언제까지 놀고먹을 거냐? 아이고, 언제 사람 구실을 하려나…….”
삼촌이 예전처럼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삼촌은 삼촌 말로 하면 ‘음악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음악은 돈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할아버지 눈에는 노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돈이 되는 일과 돈이 안 되는 일로 나누어진다. 돈이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중요하고 신 나는 일이라도 그냥 ‘노는 것’이다.
“교수님! 그러면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일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은 마치 의자 놀이와 같아.”
네그리 교수님은 일자리 경쟁을 의자 놀이에 비유해서 설명해 주었다.
의자 놀이는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차지하려고 벌이는 경쟁이다. 마찬가지로 일자리 경쟁은 사람 수보다 적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이다. 다른 사람이 실패해야 내가 승리할 수 있는 놀이!
그리고 의자 놀이가 진행될수록 의자는 하나씩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으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진 사람은 늘어나고 이긴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의자 하나만 남게 되고, 마지막 의자를 차지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한 사람의 승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머지 모든 사람이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리고 학교, 직장, 이웃 등 전체 사회가 경쟁에 둘리게 되면 모든 사람이 불행해진다. 친구들이 경쟁 상대가 되고, 동료가 적이 된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을 위해 자신의 생활과 삶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 경쟁만 하고 살아간다면 정말 힘들겠어요. 그리고 친구 하나 없이 모두가 경쟁 상대가 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요.”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사회, 열심히 일하는데도 먹고살기 힘든 생활, 1:99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1명의 승자를 위해 99명이 패배자가 되어야 하는 사회……. 이런 생각을 하면 어때?”
“그런 생각을 하면 절대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무래도 미래가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요.”
“지금의 사회, 지금의 모습에 갇혀서 미래를 생각해서는 안 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해.”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란 말인가요?”
“가령 말이지, 지구는 둥글지만 땅 위에서는 둥근 지구를 볼 수 없지. 지구 안에 살면서도 지구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해. 그래야 둥근 지구를 볼 수 있어. 땅 위에 살면서 우주를 생각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거야.”
“지구 안에서 지구 밖을 생각하는 상상력이요?”
“그래, 마찬가지로 현재에 살면서도 현재를 벗어난 상상력이 필요해.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상상하기! 지금의 노동, 지금의 모습에 갇혀서는 미래로 갈 수 없어. 미래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질 테니까.”
“상상한다고 미래가 그대로 이루어지나요?”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지?”
“네그리 교수님이 그랬어요.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고요.”
“현재의 생각에서 벗어나 미래를 상상하는 것! 그것이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야. 자, 눈을 감고 미래를 상상해 봐!”
내가 눈을 감는 순간, 자전거 버스는 나의 상상력을 가로질러 미래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상상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나도 모르는 나의 의지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었을 테지.
호세 신부님은 개인의 소유가 정해지면 어떤 문제들이 나타나는지 덧붙여 설명했다. 개인의 소유가 분명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빈부 격차가 생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고, 심지어 해치는 일까지 생긴다.
“그럼, 공동체 사회는 다른가요?”
“그렇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소유라고 할 수 없지. 공동체 사회에서는 마을 회사처럼 주인이 없는 소유가 대부분이야. 내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것이 되는 소유! 그런 의미에서 ‘소유가 아닌 소유’인 셈이야. 그렇게 되면 개인이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게 되지.”
“내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것? 소유가 아닌 소유?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아요. 그런데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면 내가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는 않겠어요.”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