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담: 왕이 이루어 낸 여러 가지 치적 중에서 현재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왕께서 치세 기간 내내 추진했던 ‘개혁’과 100년 동안 계속된 원의 간섭 속에서 이루어 낸‘국가의 자주권’입니다. 그중에서도 개혁이 손꼽히는데요. 가시적인 성과가 가장 많았다고 평가받는 기간은 왕이 신돈을 앞세워 개혁을 추진했던 6년간입니다. 또한 신돈의 출신과 권력 탓에 더욱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것입니다. 신돈은 절의 노비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신돈에 대한 정보는『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한 몇몇 사료에 기록된 것으로 신돈의 출신에 대한 내용도『고려사』에 실려 있습니다.
“신돈은 영산인(靈山人)인데, 어머니는 계성현(桂城縣)에 있는 옥천사(玉川寺)의 비(婢)였다. 어려서 승(僧)이 되어 법명을 편조(遍照)라 하고 자를 요공(耀空)이라 하였다. 어머니가 천하였기 때문에 그의 동류(同類)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산방(山房)에 거처하였다.”
당시 고려의 법에 의하면‘천인은 자기 어머니에 속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어머니가 노비면 신돈 또한 노비인 것이죠. 따라서 신돈은 승려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신돈을 왕께서는‘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감찰사사 취성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 판서운관사(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領都僉議使司事判重房監察司事鷲城府院君提調僧錄司事兼判書雲觀事)’라는 공신 칭호와 관직을 주어 왕 다음의 최고 권력으로 개혁을 추진케 하였습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하루아침에 그를 수원에 유배시켰고, 불과 사흘 만에 처형했습니다.
자극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심리입니다. 어찌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신돈에 대한 관심은, 미천한 신돈을 등용하고 그로 하여금 개혁을 추진케 하고 종내는 죽게 한 왕에게 미친다 하겠습니다. 왕은 그 4년 뒤에 의문의 암살을 당하셨지요. 저는 이런 일련의 급격한 변화가 결국은 고려를 멸망으로 가게 하지 않았나 보는데요. --- p.18~19

이기담: 저는 태조 왕건 시대를 지향하는 방향성이 다른 의미 또한 담고 있다고 보는데요, 그것은 고려가 원과는 다르다는 독자성과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즉위 5년 7월 표문에서 왕은 한반도인들이 “수와 당의 융성기에도 단지 견제되는 것에 불과했다.”라 밝혔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에 대해 왕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낸 것이라 봅니다.
공민왕: 잘 보았소. 나는 원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는 것만이 앞으로 고려가 살 길이라 여겼소. 그것이 무엇이겠소. 고려 초기로의 회복을 의미하오. 더 나아가 몽고의 문화는 절대 긴 미래의 보편적인 문명이 될 수 없을 거라 여겼소. --- p.100

이기담: 왕께서는 개혁에 대한 식지 않는 열망을 가지고 여일하게 추진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안정 또한 개혁 못지않은 중요한 정치적 목적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공민왕: 맞소. 그러하오.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오. 정치란 인간들이 모여 사는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오. 한 가지의 목적이 주가 된다고 해도 사회 전반의 다른 문제들 또한 다루어야 하는 것이오.
이기담: 맞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 세상의 문제들을 다루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 아닐까요?
공민왕: 이제야 알겠소. 그러니까 개혁과 정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함에 있어서 균형감각이 결여되었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구려.
이기담: 그렇습니다. 사실 왕의 치세 전반에 걸쳐 이런 문제는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 즉위 초 단행한 개각입니다.

고려 제31대 임금인 공민왕은 고려 태조 왕건 못지않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고려말 과감한 반원정책을 추진하여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았고, 북벌정책으로 옛영토를 회복하는 등의 치적은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노국공주와의 애틋한 사랑은 공민왕을 로맨티스트로 인식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정도가 지나치다 하여 재위 말기의 실정(失政)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천산대렵도」와 수덕사 거문고(‘공민왕금(琴)’으로 전함)를 통해 보는 예술가로서의 공민왕도 친근하다. 또한 신돈이라는 인물도 빼놓을 수 없어, 중학교 국사교과서에는 “고려 공민왕은 개혁을 위해 신돈을 등용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실패했다.”고 나와 있다.<br/>이처럼 다양한 공민왕의 면모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한 나라의 왕으로서 펼친 정치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현재 사학계에서 대체적으로 공민왕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공민왕은 원이 고려를 간섭하기 시작한 이후 누적된 사회·경제적인 모순을 척결하고 새로운 개혁 정치 모델을 제시한 왕이다.”(17쪽)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br/><br/>이 책에서는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초점을 맞추어,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당시 고려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개혁가로 거듭나게 된 공민왕의 성장배경, 왕이 되기까지의 우여곡절 등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공민왕 개혁정치의 기본철학과 내용, 함께한 사람들, 성과 등을 살펴본다. 또한 초기의 야심찬 개혁의지를 흔든 여러 사건들과 재위 말기에 신돈을 등용하여 새롭게 펼친 개혁정책들을 살펴보고, ‘실패한 개혁’, ‘미완의 개혁’으로 일컬어지는 개혁의 결과를 ‘균형감각’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br/>이 과정에서 독자는 공민왕에 대한 많은 오해들, 예를 들면 ‘요승’ 신돈과의 관계, 자제위의 존재, 우왕과 창왕의 출생비밀 등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그토록 개혁을 열망하였던 공민왕의 의지가 왜 꺾일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br/>공민왕의 개혁이 결국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br/><br/>“왕의 개혁 실패는 정치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의 균형감각 결여와 지나친 권력 중심 사고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239쪽)<br/><br/>저자는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궁극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를 위와 같이 분석한다. 공민왕은 혁신적인 정책들을 통하여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했으나, 그가 개혁정치를 추구한 근본적인 목적은 왕권 강화를 통한 고려왕조의 중흥이었던 만큼,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결코 성공적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민왕은 개혁의 대상이었던 보수적인 권문세족을 끝내 꺾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야 했다.<br/><br/>개혁이 남긴 것<br/>그런데, 공민왕의 개혁이 미완으로 끝나자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된 사람들은 바로 그 개혁에 저항한 권력가들이었다. 그들은 개혁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나라를 잃어야 했다. 공민왕 사후 20년 만에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2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개혁의 의지를 접은 적이 없는 공민왕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br/>“개혁을 상실한 시대는 꿈을 가질 수 없다.”<br/><br/>이 책의 기획의도<br/>일상 속에 개인들의 꿈이 살아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그러나 이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꾸어야 할 것을 것을 바꿀 줄 아는 개혁 정신이 필요하다. 개혁의 능력이 없는 사회에는 꿈이 있을 수 없다. 비록 그 사회가 외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해도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br/>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어떠한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켜야 할 것과 바꾸어야 할 것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은 자꾸 바뀌어 가고, 바꾸어야 할 것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그리하여 늘 ‘개혁’을 얘기하지만, 제대로 된 결과 없이 남발한 개혁은 ‘개혁피로증’까지 불러 왔다. <br/>현명한 사회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요구를 실천할 줄 안다. 그 요구를 부정하고 작은 것에 얽매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국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역사의 한 부분에서 볼 수 있다. <br/>이런 상황에서 공민왕의 개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개혁 실패의 원인에 대한 탐구 또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바를 일러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에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인 공민왕과 대화를 나누어 보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br/><br/>이 책은 바로 공민왕의 성공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상황과 원인들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현실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 믿는다.(저자 머리말에서)<br/><br/>수많은 오해와 왜곡의 벽에 겹겹이 싸여 있는 미완의 개혁군주 공민왕과의 아주 특별한 만남.<br/>“나는 한 번도 개혁을 포기해 본 적이 없소이다!”<br/><br/>650년 전의 인물 공민왕을 현재의 대담 자리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 역사의 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많은 역사서를 집필해 온 저자는 이번에도 철저한 고증과 답사를 원칙으로 삼아 많은 자료와 씨름하며 공민왕의 흔적들을 찾아 헤맸다. 본문에 실린 안동, 중국 등지의 사진들은 직접 발로 뛴 노력의 결과물이다.<br/>공민왕과의 대화 형식을 빌려온 것은 현재와의 긴 시간의 간격을 좁히고, 함께 한 시간이 없는 데서 오는 낯섦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좀 더 가깝게, 좀 더 심층적으로 공민왕 시대에 접근하고자 선택한 구성이다. 이에 저자의 상상력이 더하여 더욱 진실에 가까운 공민왕의 모습을 재구성하게 되었다.<br/><br/>5백 년 고려사에서 태조 왕건에 비견되는 성군으로 꼽히면서도 또한 수많은 오해와 논란의 전면에 서있는 비운의 개혁가 공민왕과 함께하는 이 대담의 자리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