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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리뷰 총점8.4 리뷰 27건 | 판매지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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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3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643g | 153*224*30mm
ISBN13 9788954623728
ISBN10 895462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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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르네상스 그 창조력의 한가운데에
피렌체의 상인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피렌체를 보석으로 만든 사람들 이야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것은, 종교의 압박으로 가득 찬 중세의 긴 암흑기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의 부흥을 통해 인간성의 해방을 선언하고 새로운 인간을 발견한 인문주의자들이나 성서와 교리 내용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인간을 그렸던 예술가들만을 떠올리기 쉽다. 페트라르카와 단테, 그리고 보티첼리와 다빈치, 미켈란젤로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뒤에는 피렌체를 무대로 새로운 지배질서와 세상을 꿈꿨던 상인들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들을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통 크게 후원한 사람들로만 여겨왔다. 과연 그들은 단순한 후원자에 불과했을까? 그들은 황금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황금을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상인들이다. 그들이 단순히 예술을 사랑해서 그렇게 모은 황금을 선뜻 내놓고 인문학자와 예술가 들을 후원했던 것일까?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그 시대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상인들에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문의 열쇠를 쥐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황이었다.

이민자 출신으로 고리대금업과 엄청난 액수의 지참금을 들고 온 배우자와의 결혼으로 황금을 축적한 메디치 가문이, 기도실 후원권한을 얻어 새로운 수도원과 성당을 피렌체의 신앙생활 중심지로 만들고, 그 수도원과 성당을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고,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자들을 후원하여 새로운 지배 이념을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해 새롭게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을 창출해 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 이전에는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창조력으로 가득찬 피렌체 르네상스의 진면목과 함께 찬란한 역사로 남아 있는 그 결정적 순간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를 보석으로 만든 조토와 마사초, 프라 안젤리코, 고촐리, 보티첼리, 레오나드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의 건축물에 담긴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교황, 르네상스 탄생의 숨은 주인공

* 왜 피렌체 르네상스에 주목해야 하는가?

2 엔리코 스크로베니, 귀족이 되려 예배당을 지은 고리대금업자
파도바 아레나 예배당, 조토의 〈최후의 심판〉

*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유언-예배당을 짓는 성업에서 얻은 특혜

3 바르디 가문, 중세가 영원하길 바랐던 토착귀족
산타 크로체 수도원 성당 바르디 가문 기도실, 조토의 〈재물의 포기〉

* 피렌체의 신흥상인 계층이 마지막 중세 귀족 계층인 토착귀족을 추방하다

4 스트로치 가문, 재산 상속을 위해 성당을 후원한 고리대금업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 성당 스트로치 가문 기도실,
안드레아 오르카냐의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자와 성인들〉과 나르도 디 치오네의 〈천국〉

* 고리대금업자의 운명

5 브란카치 가문, 교황에게 등을 돌린 신흥상인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수도원 성당 브란카치 가문 기도실,
마사초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하와〉와 〈성전세〉

* ‘르네상스 창조의 공간’의 탄생

6 메디치 가문, 고리대금업자에서 피렌체의 주인으로
산 로렌초 성당 구 성구실,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의 〈메디치 가문의 영묘〉

* 메디치 가문의 권력기반이 된 시민 공동체 중시 가치관-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의 유언을 중심으로

7 코시모 데 메디치, 새로운 수도원을 피렌체 신앙생활 중심지로 만들다
산 마르코 수도원, 프라 안젤리코의 〈산 마르코 제단화〉와 〈그리스도의 수난〉

* 메디치 가문의 추방과 코시모의 귀환


8 코시모 데 메디치, ‘동방박사 경재’ 축제를 부활시켜 시민 공동체를 완성하다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 성구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 경배〉 &
산 마르코 수도원 코시모 개인 기도실,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 경배〉

*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3대 종교 축제의 모습

9 코시모 데 메디치, 피렌체의 메디치 왕조를 꿈꾸다
메디치 저택 기도실,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 행렬〉과 필리포 리피의 〈아기 예수에 대한 경배〉

* 유언을 통해 본 코시모의 가치관-‘위대한’ 로렌초를 탄생시킨 코시모 데 메디치

10 로렌초 데 메디치, 신비주의로 채색된 피렌체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메디치 가문의 카스텔로 별장,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 코시모, 금서를 손에 넣다-신비주의의 탄생

11 로렌초 데 메디치, ‘조국의 수호자’가 되다
메디치 가문의 카스텔로 별장, 산드로 보티첼리의 〈팔라스와 칸테우로스〉

* 새로운 시대의 싱크탱크가 된 플라톤 아카데미

12 프란체스코 사세티, 아홉 살 아들을 수도원장으로 만들려는 로렌초의 염원을 담아내다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 성당 사세티 기도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교황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정관 승인〉

* 메디치 은행의 탄생과 몰락

13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자들, 로렌초가 주인공인 피렌체 황금시대의 도래를 기원하다
메디치 가문의 카스텔로 별장,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

*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자들이 활용했던 로마제국의 황금시대관

14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자들, ‘위대한’ 로렌초를 피렌체 황금시대의 왕으로 추대하다
메디치 저택, 루카 시뇨렐리의 〈판의 궁정〉

* 종부성사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은 ‘위대한’ 로렌초

15 정치가 마키아벨리, 피렌체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탄생시키다
피렌체 시청사 회의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와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

*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

16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파울루스 3세, 기독교 황금시대의 부활을 꿈꾸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다

에필로그

저자 소개 (1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왜 코시모 데 메디치와 같은 신흥상인들은 성당이나 수도원 벽면을 세기의 천재들에게 맡겨 장식하도록 후원하게 된 것일까? 더구나 이들이 작품의 주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분명 이 상인들이 예술작품을 후원했던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의문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 예술작품의 용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이 책을 쓰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르네상스 예술을 소개하는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주인공이 예술가들이 아니라 상인들이다.
르네상스 시대 초반에는 성당이나 수도원 내부를 장식하는 예술작품의 주제를 종교 지식에 해박한 고위 성직자들이 결정했다.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이어 그의 손자인 ‘위대한’ 로렌초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국가의 가치를 고대 문헌에서 찾던 인문학자들에 의해 작품의 주제가 주로 결정되었다. 당연히 오늘날 천재 예술가들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당시 예술가들의 지위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에 속하는 수공업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상품 주문을 받은 수공업자들처럼 예술가도 성직자와 인문학자가 정해준 주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에는 당시의 성직자들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고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출 수 있었던 인문학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듯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은 교회의 교리나 부유한 신흥상인들의 세속적 욕망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물이었다.(8~9쪽)

13세기에 이르면 도심 외곽의 토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업의 시대로 이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도시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피렌체에 이런 이민자들이 9만여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늘어난 이민자 곧 평신도들을 위해 피렌체 외곽에 있던 낡은 수도원에 탁발 수도사들이 정착하게 되지만 재산도 없고 후원자도 구하지 못하여 그들은 평신도에게 설교를 하거나 장례식을 주재하는 것으로 연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이들 가난한 수도사들과 수도회를 돕기 위해 묘안을 짜내야 했다.

당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렌체의 상인들에게 남은 하나의 문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현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후에 안식을 얻을 수도 있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고, 사후의 안식을 위해 수도원 지하에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의 유골과 가까운 곳에 자신이 안장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들은 사후 최후의 심판장에 서게 되면, 가까이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이 동행해 자신의 잘못을 변호해 줄 것으로 믿었고, 자신의 교구 공동묘지보다 수호성인들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 수도원 지하에 묻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재정이 부족한 수도원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교황은 수호성인이나 고위 성직자들만이 사후에 묻힐 수 있었던 수도원이나 성당에 신앙이 두터운 평신도들도 묻힐 수 있게 하는 칙령을 내린다(1244년). 그 칙령으로 탁발 수도사들이 머물렀던 낡은 수도원은 황금을 가진 상인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본래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 상당한 재산을 기부한 신도들에게 성직자들은 다양한 특권을 부여해왔었다.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자신의 토지에 교회를 지으면, 십일조를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 관례였다. 중세에는 이렇게 교회 후원자에게 주어지던 특권을 ‘교회 후원권한’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법을 통해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신앙 활동이 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새로운 교회를 짓는 성업은 도시의 높은 땅값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된다. 대신에 이미 도심 안이나 외곽에 있는 수도원에 재정적인 후원을 한 가문은 수도원 안에 자신의 가문을 위한 기도실을 갖을 수 있게 된다. 중세의 ‘교회 후원권한’이 르네상스 시대에 오면 ‘기도실 후원권한’이라는 형태로 전환되고, 이 후원권한을 가진 부유한 상인들에게는 기도실을 갖는 특권만이 아니라 그 기도실에서 가문을 위해 미사를 드릴 사제에게 평생 동안 봉급을 지불(사제 추천권에 부과된 의무)해야 하는 동시에 기도실을 새롭게 장식해야 하는 의무도 함께 져야 했다.

부유한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기도실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들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더 재능 있는 예술가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들은 중세에 그려진 그림을 단순히 복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열광했다. 수도원 역시 자신들이 속한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줄 재능 있는 화가를 필요로 했다. 이 시대의 종교화는 수도원의 주요한 홍보 매체였던 것이다.
상인들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재능 있는 화가들에게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화가들 밑에서 수련과정을 거치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유명 화가들은 공방을 운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다. 천 년 이상을 잠자고 있던 ‘아발론의 아홉 자매’(예술의 여신 무사)가 피렌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피렌체는 서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예술의 도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피렌체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26~27쪽)

오늘날 피렌체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들은 황금을 가진 상인들의 욕망과 황금이 필요한 성직자들의 현실이 맞닿은 지점에서 탄생하며, 이렇게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의해 열린 새로운 공간은 더욱 새로운 가치를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렌체의 ‘국부’라고 불린 코시모 데 메디치와 피렌체를 위기에서 구해 ‘위대한’ 로렌초라 불린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끈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회원리뷰 (27건) 리뷰 총점8.4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성제환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파* | 2021.01.1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예전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를 읽다가 아주 작은 파트로 등장하는 피렌체와 메디치가에 관한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됐다. 피렌체의 상인들은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패트런 역할을 해왔고, 그 덕에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피렌체의 신흥 상인 계층에서 유력 가문으로 성장한 그들이 예술가;
리뷰제목
예전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를 읽다가 아주 작은 파트로 등장하는 피렌체와 메디치가에 관한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됐다. 피렌체의 상인들은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패트런 역할을 해왔고, 그 덕에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피렌체의 신흥 상인 계층에서 유력 가문으로 성장한 그들이 예술가들에 투자하고, 그림을 의뢰했던 이유는 단순히 예술에 관심이 많고 미적감각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종교적, 정치적인 지략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신흥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내세의 평온을 위한 노력과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욕심으로 귀족과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나 정계 진출과 같은 권력욕이 생긴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만고의 진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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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19-47] 피렌체의 상인들은 왜 예술을 후원했을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w******f | 2019.09.01 | 추천13 | 댓글8 리뷰제목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은 피렌체가 아닌 베네치아였고, 밀라노도 피렌체 못지 않게 부유한 도시 국가였다.  그렇다면 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을까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나 밀라노와는 달리 “피렌체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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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은 피렌체가 아닌 베네치아였고, 밀라노도 피렌체 못지 않게 부유한 도시 국가였다.

 

그렇다면 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을까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나 밀라노와는 달리 피렌체는 새로운 국가의 지배권을 놓고 성직자와 상인이, 그리고 상인들 서로 간에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피렌체 인들은 이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pp. 34~35]

, 갈등과 경쟁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기도실 후원권한을 가진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들에게 특권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은 이들에게 몇 가지 의무도 동시에 부과했다. 그 중 하나가 성당 내부의 기도실을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일이었다. 또한 지하에 안장된 선조들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는 사제에게 평생 동안 봉급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무도 부과했다. 만약 이 두 가지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기도실은 능력 있는 다른 가문에 양도되었다.

부유한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기도실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려 들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더 재능 있는 예술가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들은 중세에 그려진 그림을 단순히 복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열광했다. 수도원 역시 자신들이 속한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줄 재능 있는 화가를 필요로 했다. 이 시대의 종교화는 수도원의 주요한 홍보 매체였던 것이다.

상인들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재능 있는 화가들에게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화가들 밑에서 수련과정을 거치려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유명 화가들은 공방을 운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다. 천 년 이상을 잠자고 있던아발론의 아홉 자매’[예술의 여신 무사(Mousa)]가 피렌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피렌체는 서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예술의 도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피렌체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pp. 25~27]

 

 

피렌체의 상인이 예술가의 스폰서가 된 이유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핀 것을 볼 때, 피렌체의 대상인들이 예술을 사랑하거나 예술을 보는 안목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작품들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투자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서도 예술 작품이 투자의 수단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 초반에는 성당이나 수도원 내부를 장식하는 예술작품의 주제를 종교 지식에 해박한 고위 성직자들이 결정했다.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Medici, 1389~1464)에 이어 그의 손자인위대한로렌초(Lorenzo de’Medici, 1449~1492)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국가의 가치를 고대 문헌에서 찾던 인문학자들에 의해 작품의 주제가 주로 결정되었다.” [p. 9]

, 르네상스기의 예술 작품은 투자의 수단이 아닌 선전의 도구였던 셈이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현세(現世)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피렌체의 대상인들에게 하나 남은 문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였다는 점이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니, 사후(死後)의 평안과 안식을 위해서라면 전 재산의 1/5 정도는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결국 사후의 안녕을 위해 선택한 스폰서는 수도원 지하에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의 유골이었다. 사후에 이웃사촌이 된 수호성인들이 자신들을 비호해줄 것을 기대하고 수도원 내부의 기도실 후원 권한 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묏자리를 놓고 싸우던 양반네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푼돈(?)을 내고 사후에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이는 남는 장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악착같이 매달릴 수 밖에.

댓글 8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르네상스가 있게 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18.12.02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올봄 이탈리아 여행길에는 피렌체도 포함되었습니다. 다만 한나절 짧은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며칠 전 지방출장길에서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라는 이름의 가게를 만났을 때, 피렌체에서 본 다리가 떠올랐던 것도 피렌체를 구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렌체하면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베네치아 역시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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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이탈리아 여행길에는 피렌체도 포함되었습니다. 다만 한나절 짧은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며칠 전 지방출장길에서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라는 이름의 가게를 만났을 때, 피렌체에서 본 다리가 떠올랐던 것도 피렌체를 구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렌체하면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베네치아 역시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라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의하여 통제되던 시기를 넘어 인문학과 예술의 분야에서 그리스의 자유분방함을 되찾아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르네상스 들어 최초로 계관시인이었던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 이전의 시기를 ‘암흑시대’라 하고, 자신이 살던 시기를 하루아침에 광명이 찾아온 시대로 찬양했다고 합니다. 페트라르카 등의 문학자를 비롯하여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의 거장들이 피렌체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였기 때문에 피렌체가 르네상사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을 쓴 성제환님은 르네상스를 빛나게 했던 인문학자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에 대한 해설서는 많지만, 이런 작품들이 가능하게 한 당시 피렌체의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해보려는 착안을 했다고 합니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를 감상하면서, 예술성보다는 정치적 메시지 혹은 전략의 짚어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지원한 것은 상인과 성직자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교회가 예술작품을 주로 필요로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직자는 그렇다고 해도 상인들이 예술가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대표적 상인이라 할 코시모 데 메디치와 같은 신흥 상인의 예술적 취향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에서 그 비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싹을 틔우고 성장해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 교황을 비롯하여 엔리코 스크로베니, 바르디 가문, 스트로치 가문, 메디치가문을 비롯하여 메디치가문을 후원했던 프렌체스코 사세티와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자들 그리고 마키아벨리까지를 들었습니다. 사실 르네상스 예술은 종교적 의무감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부터 교회는 상당한 재산을 기부한 신도들에게 다양한 특권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시절에는 교회를 지으면 십일조를 징수하는 권한을 부여했고, 르네상스시절에는 교회 내부에 전용기도실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신 기도실의 내부를 그림 등으로 치장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되었고, 상인들은 잘나가는 화가를 초청하여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이 성가(聲價)를 높이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성직자들이 그림의 주제를 결정하다가 이내 상인들도 가문의 위상을 드러낼 수 있는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후원으로 파도바 아레나 예배당에 그려진 조토의 <최후의 심판>을 비롯하여, 바르디 가문-산타 크로체 수도원-조토, 스토로치 가문-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안드레아 오르카야, 브란카피 가문-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수도원-마사초, 조반니 데 메디치-산 로렌초 성당-브루넬레스키, 코시모 데 메디치-산 마르코 수도원-프라 안젤리코, 피에로 데 메디치-메디치 저택 기도실-베노초 고촐리, 위대한 로렌초-카스텔로 별장-산드로 보티첼리, 사세티 가문-산타 트리니티 수도원-기를란다요, 마키아벨리-피렌체 시청사-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교황 클레멘스7세-교황청 시스티나 예배당-미켈란젤로 등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설명하였습니다.

작품들 가운데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직접 볼 기회가 있었고, 몇 몇 작품은 책을 통하여 감상할 기회는 있었지만, 많은 작품들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난 것들입니다. 피렌체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있는 것을 보면, 왜 여행을 하게 되는지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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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주인공은 상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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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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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 뒤에는 신흥 상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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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 20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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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화를 실질적으로 만든 이들은 예술가나 문인들 이전에 상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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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4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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