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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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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윤제이 | 오후 | 2014년 09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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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28*188*30mm
ISBN13 9791185687155
ISBN10 1185687157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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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와이프라고, 들어 봤죠? 처음엔 그런 관계였어요. 그러다 사랑하게 됐지만.”
사랑.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쉽고 흔한 단어에 원주는 비껴 있던 시선을 천천히 여자에게로 옮겼다.
오래 전 나는 윤을 좋아했던가,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일상 속에서 그를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지만 꿈에서는 그를 본다. 그렇다면 그건 그를 생각하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방금 들은 목소리는 그인가 아닌가. 카페를 나서는 사람들 중에 그가 있을 것인가. 밖을 연신 확인하면서도 정작 그를 만나면 제가 무어라 첫마디를 뗄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원주는 궁금했다. 눈앞의 여자는 어떤 확신으로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고 가장 은밀하고도 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보냈는지.
“너도나도 다 하는 사랑 얘기 들으러 나오지 않았어요. 당신이 얼굴을 보인 이유가 궁금해서 연락했으니까.”
냉랭하게 말하는 원주의 시선이 여자를 곧게 응시했다.
“처음엔 무슨 생각이었든, 지금은 본인을 드러낼 정도로 강민성의 와이프 자리가 탐이 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아요?”
“맞아요. 민성 씨 아이를 가졌거든요.”
“……아이, 라고요.”
“민성 씨는 아직 모르지만 들어선 지 3개월째인 걸 병원에 가서 확인했어요.”
표정 없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세한 변화가 보였다. 하지만 단정하게 휜 눈썹이 한 번 살짝 올라갔다고 해서 그 찰나의 변화가 딱히 분노나 절망 같은 걸 의미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여자는 원주의 얼굴을 뜯어보고 표정을 읽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군요. 잘 알았어요.”
조용한 말에 여자는 당황했다. 게다가 원주는 벌써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은 이제 그만 보내도 돼요.”
“그게 무슨……”
“전에 보낸 것들도 그렇고, 변호사가 둘이 같이 찍힌 사진까지 있으니 이미 그걸로 충분하다니까.”
무슨 뜻인가 했는데 변호사 어쩌고 하는 걸 보니 곧 민성과 이혼할 생각인 것 같았다. 보기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그제서 들었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민성에 대한 미련도, 남편의 불륜 행각에 대한 분노도 없이 아이까지 들먹이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그녀를 보며 여자는 이만하면 깔끔하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리고 이건 그냥 충고인데.”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원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여자가 이맛살을 얼핏 찌푸렸다.
“욕심내는 건 좋은데 양손에 쥐고 있는 떡 둘 중 하나는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강민성이든, 당신 배 속의 아이 아빠든.”
“아이 아빠라니, 갑자기 무슨 근거로……!”
표독스레 대꾸하던 여자의 입이 어느 순간 저절로 다물어졌다.
“……민성 씨, 는 임신 못하는 게 자기 때문이라는 소리 없었는데. 차장님은 모르죠? 당신만 아는 거지, 그렇지? 혹시 그 집 사람들 모두 다 알아?”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한 후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여자의 눈동자를 보며 실소를 머금은 채 원주는 룸을 나왔다. 문을 넘어서자마자 토해 내듯, 여자의 독한 향을 참느라 멈췄던 숨이 터져 나왔다. 원주는 여전히 분주한 카운터 근처의 공기를 깊게 한 번 들이마신 후 걸음을 뗐다.
그러나 몇 걸음 채 걷기도 전에 원주의 발이 벽에 기대선 남자를 알아보고 우뚝 섰다. 양복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바닥을 향해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자 윤의 서늘한 눈이 원주를 응시했다.
“헛똑똑이.”
싸늘하게 굳은 원주의 옆을 지나치면서 가라앉은 음성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중략]
윤이 있었다. 원주의 시야 끝에. 그녀의 미간이 접혔다. 거짓말. 여기까지 왔을라고. 원주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거짓이다.
거짓말처럼, 윤이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윤이 차에 기댄 채 원주의 정면에 있었다. 너무 정면이라, 너무 무심하게 서 있는 모습이 또다시 환상, 아니면 그녀가 꾼 수많은 꿈들 중 한 장면 같았지만, 윤이었다. 아까 제 팔을 짙게 누르던 손의 감촉이 아직도 기억났다. 멈춰 서서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윤을 보는 그녀의 미간이 좀 더 깊게 접혔다.
그녀는 지금, 갈등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졸린 이 상황에서도 제가 염치를 차릴 것인지. 하지만 아까 타라고 했는데. 그렇지만 그건 집까지 태워 준다는 뜻이었지. 그래도 결국 ‘차에 탄다’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리고 잠깐인데. 그러면서도 원주의 발이 이미 걸음을 뗐다. 그를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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