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의 더께와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합판 쪽으로 다가가 가만히 손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그 한 장의 합판이 지니고 있던 30여 년 동안의 추억들이 머리 속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고스란히 재생되는 듯 했다. 아버지가 목재소에 고르는 순간에서부터 세월의 강을 건너 내 손에 들려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의 추억들이.
내가 합판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볼품없는 나무 조각에 불과하던 합판 역시 서서히 내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형태를 바꿀 듯 꿈틀대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합판은 그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상자였고, 침대였고, 장난감 기차의 역 플랫폼이었고, 나의 꿈과 비밀이 들어 있는 서랍이었다.
나의 삶 대부분은 아버지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그 합판들과 같이 해왔다. 아래로 연결된 사다리의 페인트가 다 벗겨질 만큼, 그 합판으로 만든 침대에 오르내리면서 나는 꼬마아이에서 소년이 되어갔다. 그 합판 위에서 기차놀이를 했고 그 합판을 이용하여 만든 서랍 속에 옷과 미래를 보관했었다. 또한 내 기억창고의 아주 특별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는 가족여행 때에도 합판은 가방이 되어 내 곁에 있었다.
--- 본문 중에서
기름투성이 자동차 부품을 손질하고, 10파운드나 나가는 썰매를 들어 무게를 재고, 토요일 아침에 내 침대를 발로 차 잠을 깨우던 아버지는 항상 육체적으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이제 사그러지는 몸을 가진 그 아버지가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감정을 눈빛에 가득 담은 채 나를 보고 우물거렸지만 발음이 정확치 않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육체적 고통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이었다.
"나는 한번도 내가 다른 사람처럼 특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단다. 나는 특별한 재능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게다가 지금은 느리고 어색하기까지 하구나.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 특히 하느님의 눈에 띄는 나는 누구일까?
하느님이 전에 나를 눈여겨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은 틀림없이 보고 계실 거야. 내가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보시려고.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진실 된 나의 순간이 되는 셈이군.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겁쟁이가 되어 그 분을 실망시켜서는 안되겠지."
그는 몸을 구부러진 채 실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면서 미소지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