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대충 쓰고 그린 것 같은 글씨와 그림으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고양이와의 즐거운 일상
흰 종이 위에 마치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 거기에 대충 쓴 글씨로 ‘선생님 테츠조는요’라는 제목으로 매 페이지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디작은 에피소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무장되어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저기요, 저기, 우리 고양이는 말이에요!’ 하면서 선생님에게 자기 고양이를 소개하는 느낌이랄까. 형광색으로 인쇄된 빈티지한 느낌의 디자인과 묘하게 어우러져 지금은 성인이 된 사람이 초등학생 때 썼던 그림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고양이 집사에게도, 랜선 집사에게도 추천하는 책
하얀색 고양이 테츠조. 앉으면 거대한 주먹밥을 떠올리게 하는 ‘거묘’ 녀석은 엉덩이에 응가를 매단 채 돌아다니기도 하고 팔레트 위를 걷다가 온 집안을 물감투성이로 만드는 사고뭉치 고양이다. 사람을 비롯해 다른 고양이까지 엄청나게 싫어하는 게 특징.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고양이 소토, 멍하고 엄청나게 게으른 고양이 보. 서로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멱살 잡고 싸우는 게 일상인 형제 고양이다. 각기 다른 세 마리 고양이들의 매력에 푸욱 빠져보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크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고 “나만 없어, 고양이!”를 외치는 랜선 집사에게는 마치 세 마리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연’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책 속에는 즐거운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테츠조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의 이야기도 나온다. 작가는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일로 당시 상황을 묘사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가족이 된 소토와 보. 소토와 보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작가는 테츠조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선생님, 소토와 보는요’가 아닌 ‘테츠조, 소토와 보가 말이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별의 슬픔이 새로운 인연으로 치유됨과 동시에, 여전히 테츠조를 기억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양이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사랑은 책 속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테츠조, 소토, 보의 사소한 행동, 몸짓, 표정, 각자의 개성 등을 그대로 종이에 담아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한 표현이 가능한지 신기할 정도이다. 아마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고양이가 모든 일상의 중심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애완동물이든 그 어떤 대상을 지극히 사랑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마치 아이를 낳고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따라서 이 책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그 외의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