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상의학을 선택했다면 찾아오는 환자를 잘 돌봄으로써 의사로서의 행복을 누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포기했다. 진료실로 찾아오는 환자를 잘 치료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아예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의료에서 소외된 수많은 사람이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건강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보건의료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내 삶을 투입하고 싶었다. 이것이 ‘나’와 ‘우리’를 통합하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쪽에서
짝다리퍼스는 두 다리 중의 하나가 짧은 컴퍼스라면서 그것의 용도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 순간 나는 저것이 나를 가리키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날부터 한동안 친구들로부터 짝다리퍼스라는 놀림을 받았다. 이런 날이면, 거의 언제나 나는 우리 집 앞의 들판을 가로질러 산으로 갔다. -38쪽에서
의과대학 운동권 학생으로서 고난의 길을 자처했던 본과 시절의 나는 스스로가 행복할 뿐만 아니라 의미 있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결단의 순간이 오면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58쪽에서
당시를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도 ‘어떻게 우리가 저 일을 해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이 아찔해진다. 참 어려웠다. 총만 안 들었지 사실상 전쟁 같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찬반 시위로 여의도는몸살을 앓았다. 김대중 정부 집권 1년차였던 1998년 당시의 의료보험 통합을 둘러싼 대립 축은 이랬다. 찬성 측은 집권여당, 의보연대회의, 민주노총과 지역의료보험 노동조합 등이었고, 반대 측은 야당, 경총과 전경련, 한국노총과 직장의료보험 노동조합 등이었다. -105~106쪽
의약분업이 이대로 연기된다면 지난 40여 년 동안 연기되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러면 ‘의약분업의 부재로 인한 온갖 문제들은 어떻게 되나’, ‘의약분업을 시발점으로 삼아 의료전달체계를 개혁하겠다는 나의 꿈은 여기서 좌절되고 마는가’ 온갖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좌절되면 보건의료제도 개혁의 기회가 앞으로 한동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43쪽
나는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경찰청 보안국 대공분실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끌려가면서 생각해도 황당했다. 수갑을 찬 채로 비행기에 탔다. 나는 비행 중에는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수갑이 도대체 왜 내게 채워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행기가 떠 있는 동안,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의료계와 한나라당이 의약분업 정책에 사회주의 딱지를 붙일 때부터 뭔가 찜찜하더니, 결국 그것이 이렇게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72쪽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 입장은 강고했다. 심지어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도, 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 대신에 ‘건강보험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국가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시민사회와 광장의 촛불이 진정으로 원했던 ‘의료민영화 포기’라는 요구는 결코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제주도에서 일이 터졌다. -212쪽
3.15 여의도 행사 이후, 나는 대한민국 민주진보진영의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복지국가 담론을 제시한 것 덕분에 할 일이 아주 많아졌다. 강연이나 각종 토론회의 발표 및 토론 이외에도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많아졌던 것이다. 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자격으로 언론과의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하였다. 복지국가 전문가이자 운동가로서, 복지국가 전도사로서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인터뷰 때마다 열정을 쏟았다. 나의 이런 노력과 정성이 언론을 통해 풀뿌리 시민들에게 전달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242쪽
나는 복지국가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운동가들, 복지국가 노선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치지망자들, 복지국가를 자식 세대에 물려주겠다는 능동적인 시민들이 ‘복지국가 정치’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이것만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가 낳은 민생불안을 넘어설, 그리고 우리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싶다.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조건을 제대로 만들어주는 나라가 복지국가이다. 우리의 복지국가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자식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갖고 기존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패러다임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