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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002이동
리뷰 총점8.0 리뷰 27건 | 판매지수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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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4년 03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11g | 124*195*20mm
ISBN13 9788970637945
ISBN10 897063794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사랑할 수 없는 여자, 사랑받을 수 없는 남자
그들이 부르는 비가(悲歌), 『슬픈 카페의 노래』


미국 조지아 주의 어느 작고 쓸쓸한 마을에, 아버지의 사료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가 있다. 어밀리어는 사팔뜨기이며 180센티 장신으로 건장하고, 웬만한 남자 이상으로 힘이 세다. 그녀는 모두에게 인색하며,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은 오로지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 때’뿐이다. 어밀리어를 아는 누구도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될 줄 몰랐다. 어밀리어는 일생에 단 한 번,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었던 괴물 같은 남자 ‘마빈 메이시’와 결혼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결혼생활은 일주일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 후 마빈 메이시는 어밀리어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며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밀리어는 그녀 앞에 우연히 나타난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 앞에 그녀는 모든 것을 헌신한다. 어밀리어는 꼽추 라이먼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꼽추 라이먼을 위해 카페를 정식으로 열고, 사랑을 알게 된 어밀리어와 ‘카페’를 중심으로, 생기 없던 마을도 어밀리어도 ‘사람다운 냄새’를 풍기며 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행복할 것 같았던 그들 앞에 마빈 메이시가 나타나는데…….

사람을 좋아하는 라이먼은 ‘베일에 싸인 남자 마빈 메이시’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마빈 메이시가 꼽추 라이먼과 자신을 갈라놓을까 두려워진 어밀리어는 마빈 메이시를 경계한다. 삼각관계로 뒤엉켜 자신만의 사랑을 격렬하고 처절하게 갈구하는 이 사랑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 소개 (2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미국 문단의 대표 ‘카슨 매컬러스’의 최고 걸작을
장영희가 재탄생시키다


장영희는 한국의 대표 수필가·번역가로서, 『내 생애 단 한 번』,『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펴냈다. 고통스러운 장애와 세 차례의 암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실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 그녀는 카슨 매컬러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슬픈 카페의 노래』를 다시 탄생시켰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사랑과 고독의 내적 드라마이자, 제목 그대로 외로운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이다. 그것은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힘, 기적 같은 사랑의 힘에 부치는 찬송이요, 허무하게 가버린 사랑에 대한 비가(悲歌)이다. 기괴하고 이상한 인물들이 부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가는 모든 군더더기를 벗어버리고 발가벗은 상태로서의 사랑과 맞닥뜨리고자하는 시도이다.
화자의 목소리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이 황량한 마을에도 무언가 극적인 일이 한 번 있었다. 돈이 아니라 사랑이, 그런 삶을 갖고 왔었다’라는 것이다. 마술같은 사랑의 힘은 의미 없고 구원 없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본능적인 열정과 폭력성만 존재하는 세계에 변화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짧은 사랑이 지나간 다음에는 영원한 고통만이 남았다. 매컬러스가 사랑의 정의에서 말하듯이 ‘신 외에는 누구도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감이 판단할 수 없고, 아무도 그 어떤 사랑의 마지막 판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컬러스가 ‘내게 있어 창작이란 신을 찾는 길’이라고 말한 것처럼, 『슬픈 카페의 노래』는 거의 종교와 같은 사랑을 통한 치열한 자기탐색의 결과이다.
“쓴다는 것은, 내게 있어 신을 찾는 일이다.”
-카슨 매컬러스

카슨 매컬러스는 23세의 나이에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내용과 완성도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에게 ‘미국 문단의 기적’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이라 꼽히는 『슬픈 카페의 노래』는 미국 남부 조지아 주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신체적 혹은 성격적으로 ‘이상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사랑하는 기이한 사랑의 삼각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오랜 화두인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이 작품은 타인에 대한 격렬한 욕망과 사랑의 끝에 결국은 철저히 혼자 남게 된다는 관념의 모순을 매컬러스만의 사랑론인 ‘사랑은 상호적 경험이 아니라 혼자만의 것이며, 결국 고통을 수반하고 외로움을 더욱 심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절제된 문장과 뛰어난 구성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카슨 매컬러스는 투병 중에도 “늘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삶을 대면하는 데 소극적이거나 심약하지 않았다. 병이 커질수록 그녀는 오히려 더 강해졌다”라는 주변의 평을 들으며 작품 활동을 왕성히 했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1951년 발표된 이후 많은 미국과 유럽 전체에서 사랑을 받아 1991년 사이먼 캘로우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키스 캐러딘 주연으로 미국에서 영화화가 되기도 하였고, 국내에서도 꾸준한 독자들의 사랑으로 2013년 네이버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어 많은 독자들이 다시 한 번 책을 읽고 그 감동을 나누기도 하였다.

추천의 말

카슨 매컬러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기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는 사랑에 굶주려 있다. 그들에게 사랑은 예고 없이 격렬하게 찾아오지만, 이내 쓰라린 상처만 남긴 채 잽싸게 달아나버린다. -미치코 카쿠타니, 뉴욕 타임즈

D.H. 로렌스 이래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독창적인 시적 감성을 지닌 유일한 작가! -그레이엄 그린

카슨 매컬러스는 늘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삶을 대면하는 데 소극적이거나 심약하지 않았다. 병이 커질수록 그녀는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존 휴스턴

회원리뷰 (27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파워문화리뷰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속성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리니링 | 2016.07.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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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과 끝은 숱한 인생사와 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감정은 어떤 사랑이든 비슷하다. 시작엔 설렘이 함께 하고, 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강도는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의 환멸이 함께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여러 권의 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슈테판 츠바
리뷰제목

 

사랑의 시작과 끝은 숱한 인생사와 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감정은 어떤 사랑이든 비슷하다. 시작엔 설렘이 함께 하고, 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강도는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의 환멸이 함께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여러 권의 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별여행』 같은 책들을 말이다. 이들을 읽으며, 책 속의 사랑이 만들어낸 감정의 곡선을 그려보면, 그 시작과 끝은 비슷한 지점에서 머무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의 형태는 어떠한가? 인생사에서도, 인생을 담은 책 속에서도 너무나 다양해서 딱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 힘든데, 『슬픈 카페의 노래』의 사랑은 유독 기이하다. 6척 장신의 독하디독한 여자,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 그리고 그의 옛 연인 '마빈 메이시', 어느 날 찾아온 꼽추 '라이먼'. 그들의 사랑에 완전함은 없다. 복잡한 외사랑이다. '미스 어밀리어'는 우연히 만난 '라이먼'을 챙겨주며 사랑하게 되고, '라이먼'은 폭력적이며 당당한 '마빈'의 모습을 보게 된 후 그를 동경한다. '마빈'은 복수심으로 가려져 버린 사랑 (혹은 집착)을 분명히 '어밀리어'를 향해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의 속한다 (50쪽)" 고 했던가. 그들의 기괴하고 일방적인 사랑은, 그 별개의 세계가 만날 틈도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가 불현듯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세 가지 사랑은 고통과 파국으로 남는다. 마을의 따뜻한 사랑방과 같은 '카페'라는 공간은 이 모든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사랑의 끝을 처절하게 겪고 나서 문을 걸어 잠근 '미스 어밀리어'의 감정을,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왜 그토록 작고 초라한 꼽추 '라이먼'에게 사랑을 느꼈는지, '라이먼'은 그녀의 사랑을 알지 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척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이지 않은가. 작가는 덧붙인다. "표면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는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사랑하는 사람, 그 당사자의 영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 외에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65쪽)" 고.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사랑에 자의 혹은 타의로 관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뭐라 하든, 당사자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온 우주이며, 당사자가 하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막기도 힘들다. 그러니 사랑의 선택, 사랑의 고통은 모두 당사자의 것이다. '미스 어밀리어'의 사랑 때문에, 마을 공동체의 소중한 공간이 황량해질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22쪽,

 미스 어밀리어의 술에는 무언가 아주 특별한 게 있었다. 혀 끝에서는 정갈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내고, 일단 배 속으로 들어가면 화끈한 기운이 오랫동안 몸을 훈훈하게 녹이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쓰인 글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어밀리어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 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45쪽,

 그녀는 마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고통, 당혹감, 그러면서도 불확실한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평상시처럼 그렇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도 않았고, 종종 침을 삼키기도 했다. 피부는 창백해진 듯했고,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큰 손에서는 진땀이 나는 듯했다. 그날 밤 그녀의 표정은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 눈은 피안을 향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50쪽,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65쪽,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는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사랑하는 사람, 그 당사자의 영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 외에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105쪽,

 그들은 미스 어밀리어의 카페에 오기 전에 세수를 했고 카페에 들어올 때는 정중하게 문지방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파워문화리뷰 사랑은 거대한 현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꼼쥐 | 2016.06.21 | 추천9 | 댓글22 리뷰제목
책을 읽는 계절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로 말하자면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네 영혼이 푸른 빛깔로 맑게 되살아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살에 열병을 앓은 이후 수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른 살 무렵에는 걷기조차 힘들었다는 작가는 그런 불편한 몸으로도 결코 글쓰기를 멈추
리뷰제목

책을 읽는 계절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로 말하자면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네 영혼이 푸른 빛깔로 맑게 되살아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살에 열병을 앓은 이후 수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른 살 무렵에는 걷기조차 힘들었다는 작가는 그런 불편한 몸으로도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빛깔로 밝게 빛이 납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창작이란 신을 찾는 길'이고 '쓸 수 없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작가의 창작열을 생각하면 나는 이따금 숙연해집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자본주의가 불러온 폐해는 우리의 몸을 살찌우는 대신 영혼을 황혜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카슨 매컬러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작가이지요. 갈수록 몸은 약해졌지만 그녀의 영혼은 더욱더 밝아졌으니까요.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대체로 겉으로 드러난 것만 중시하는 까닭에 사랑도 주로 선남선녀의 결합이나 조건 대 조건의 만남만 생각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에 오염된 사랑을 진실한 사랑인 양 믿는 것이지요. 소설 속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대부분 예쁘고 멋지게 묘사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주목할 필요도 없거나 그들이 하는 사랑은 사랑도 아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것처럼 매컬러스가 창조한 세계에는 착각에 빠진 상처 입은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개인적인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를 고독, 고립, 소외의 감정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슬픈 카페의 노래>에 등장하는 세 사람도 그러합니다. 매컬러스가 생각하는 사랑은 인간은 사랑의 감정을 줄 수는 있지만 사랑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는 될 수 있어도 사랑받는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인간은 타인의 사랑을 완벽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체적 기형도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줄 수는 있어도 되돌려 받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미스 아밀리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료 가게를 운영하면서 돈 버는 일에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만들어 팔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등 손재주가 뛰어난 반면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말이 어눌하여 사교성은 없었습니다.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아밀리아는 키가 6척 장신이고, 몸무게는 70킬로에 육박하며, 창백한 얼굴에 회색빛 사팔눈이 너무 심하게 가운데로 쏠려 있고, 골격이나 근육도 마치 남자 같고, 짧은 머리는 뒤로 빗어 넘겼고,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과 핀곤함이 감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여자로서의 매력은 눈곱만치도 없었습니다.

 

그런 아밀리아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니 마을에서 괴팍하기로 소문이 난 마빈 메이시였습니다. 얼굴이 번듯하고 방직공장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던 그는 아밀리아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성격도 온순하게 바뀌는 등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결국 결혼합니다. 그러나 마빈 메이시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아밀리아로부터 밀주일만에 쫓겨나게 되고 복수를 다짐하며 마을을 떠났습니다. 전 재산을 그녀에게 주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아밀리아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꼽추 '라이먼'이었습니다. 거지나 다름없는 차림새로 자신이 아밀리아의 사촌 오빠라고 주장하는 '라이먼'을 그녀는 극진하게 대합니다.

 

약한 몸이었지만 교활하고 말주변이 좋은 '라이먼'의 의견에 따라 사료 가게는 카페로 변합니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아밀리아의 카페는 그야말로 깊은 위로와 위안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질을 하다 교도소에 갇혔던 마빈 메이시가 가석방이 되어 마을에 돌아옵니다. 마빈 메이시와 아밀리아의 관계를 알 리 없었던 라이먼은 마빈 메이시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왜라고 물어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말하듯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라이먼은 갈 데 없는 마빈 메이시를 카페로 불러들입니다.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셈이지요.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 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 난롯불만 타고 있는 방에서 갑자기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멈출 때 느껴지는 정적과 텅 빈 집 안에 너울거리는 그림자 - 이런 혼자라는 공포와 마주하기보단 차라리 철천지 원수를 들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p.112)

아밀리아가 라이먼을 사랑하는 반면 끔찍이도 싫어했던 마빈 메이시를 집에 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마빈 메이시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마빈 메이시와의 결투를 선택한 아밀리아는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마빈 메이시 또한 그에 대비합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두 사람의 결투가 있었고 승기를 잡았던 아밀리아는 결국 그녀가 사랑했던 라이먼에 의해 패하게 됩니다.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고, 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면 삶의 가격은 얼마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때때로 삶이란 전혀 가치 없거나 만약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이 결국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오지 않는가." (p.102)

 

마빈 메이시와 라이먼은 아밀리아의 전 재산을 파괴한 후 귀중품을 챙겨 달아납니다. 아밀리아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사랑받는 일을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나아가 사랑받기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지요.

 

언젠가 카슨 매컬러스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고독은 거대한 현실, 사랑은 거대한 필수, 사랑이란 하나의 특수한 학문"이라고 말이지요. '고독이 거대한 현실'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절실하게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만 뜨면 자살 소식을 듣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고독은 이미 오래된 지병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학문을 처음서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누구나의 가슴속에도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 사랑은 거대한 필수가 아니라 사랑은 거대한 현실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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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고립과 고독으로 완성되는 사랑.『슬픈 카페의 노래』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깽Ol | 2015.11.10 | 추천15 | 댓글12 리뷰제목
  방적 공작의 기계음만 간간이 들리는 마을의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활기 넘치던 마을은 이제 지나치는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만큼 고립된 곳으로 전락했다. 사랑 때문이다. 아니 사랑 덕분에 활기 넘치던 마을은 이제 죽은 혹은 떠나간 사랑 때문에 휑하기만 할 뿐이다. 반쪽짜리 페인트칠이 스산한, 언제 스러질지 모르게 기울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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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 공작의 기계음만 간간이 들리는 마을의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활기 넘치던 마을은 이제 지나치는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만큼 고립된 곳으로 전락했다. 사랑 때문이다. 아니 사랑 덕분에 활기 넘치던 마을은 이제 죽은 혹은 떠나간 사랑 때문에 휑하기만 할 뿐이다. 반쪽짜리 페인트칠이 스산한, 언제 스러질지 모르게 기울어가는 카페는 한때 마을의 중심이었다. 저녁 시간이면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타지에서 온 객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온기와 활력을 주던 공간이었다. 모두 사랑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사료 가게를 이어받아 부를 축적하던 180cm 장신의 사팔뜨기 여인 어밀리어는 어느 날 마을로 흘러들어와 자기의 사촌이라고 주장하는 곱사등이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어밀리어는 이미 한 번 결혼한 전적이 있다. 누가 봐도 잘생긴 미남이지만 성질이 고약하고 포악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계하는 마빈 메이시다. 어밀리어를 사랑하게 된 마빈은 전에 없던 유순한 총각으로 변모하고 일방적인 구애로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고작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린다. 어밀리어의 마음에 마빈 메이시의 자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쫓기듯이 마을을 떠난 마빈 메이시는 폭주기관차처럼 폭력과 범죄를 일삼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여기까지가 어밀리어와 전남편의 자초지종이다.

 

자신의 사랑만 갈구하며 변화하려고 노력했던 허우대 멀쩡한 마빈 메이시에게도 열리지 않았던 마음이 등이 굽고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귀를 팔랑거리며 낯빛은 창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꼽추 라이먼을 처음 보자마자 동한다. 그의 굽은 등을 살며시 쓰다듬던 순간에 이미 어밀리어의 사랑은 시작됐으리라. 헌신적으로 그를 돌보며 원하는 모든 것에 맞춰갔지만 라이먼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야비한 미소가 고작이다. 그렇다, 라이먼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마저 병든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적대적이었고 시기와 질투, 이기심에 자신을 옥죄고 있기에 그 누구라도 좋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였을까. 누가 봐도 섣불리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대상이니까. 아니 사랑이라는 게 이해의 차원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라이먼의 무엇이 어밀리어로 하여금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을 뿜어내게 했을까 싶었다.

 

눈치 챘겠지만 소설 속의 주요 인물 모두는 결점을 갖고 있다. 신체적이든 성격적으로든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형적인 면모를 보인다. 사팔뜨기 여인 어밀리어의 마음이 외모 때문에 움직이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은 전남편 마빈에게 했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지 라이먼의 불편한 몸짓, 이기적인 성격을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남들과 다른 신체의 불편함,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연민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고작 그게 다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밀리어의 사랑은 너무도 헌신적이었고 너무도 맹목적이었으며 너무도 간절했다. 오직 라이먼만 바라보며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던 그녀였으니까. 이런 맹렬한 사랑의 상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그녀의 남은 삶이 상상이 되는가.

 

그녀의 두 눈은 점점 가운데로 몰리며 슬픔을 갈구했고 하염없이 라이먼을 기다린다. 이제 예전 번창했던 카페는 없고 부도 없다. 장대했던 기골은 삐쩍 골아버렸고 왜소하고 연약한 한 여인만 카페를 지키고 있다. 카페 전면을 판자로 막고 2층 창문에 유령처럼 가끔 나타날 뿐이다. 그녀의 눈은 마빈을 따라 훌쩍 떠나버린 뒤 여전히 행적을 알 수 없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를 동안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라이먼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종래에는 파멸에 이르게 했지만 그래도 한없이 기다리는 사랑. 그녀는 정말 라이먼을 사랑한 것일까. 그저 맹목적인 집착은 아니었을까.. 지독해도 이렇게 지독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배로 큰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고 말들 하지만 기형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방적인 사랑에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다.

 

라이먼을 사랑하기 전까지 어밀리어는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사람 모두를 '돈, 장사'와 직결할 정도로 인색하기만 했다. 라이먼을 사랑하면서 칭칭 감싸고 있던 경계를 풀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랑이 떠나버린 뒤 더 고립된 그녀가 남았지만 말이다. 어쩌면 난생처음 알게 된 사랑이라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자신을 함락시킨 것은 아닐까. 누구보다 삶의 의욕이 넘쳐났던 사람이 자포자기해버릴 정도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이런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무차별적이기까지 한 일방적인 사랑과 잔인하기까지 한 사랑의 끝이지 않은가. 사랑하던 이에 의해서 직조됐던 카페였으니 그 사랑이 끝나 떠나버렸을 때 마모되고 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까지 방관하는 아밀리어의 행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음은 슬프다. 누군가의 사랑에 환호와 애정을 보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사랑이 사람을 고립되게 했는지 원래 고립된 사람을 더 고립시키는 것인지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리면 혼자만의 시간으로 침잠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밀리어처럼 지독하고 간절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그네는 그저 숨죽여 지켜볼 뿐이다.  사랑 때문에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는 역사와 소설 속 인물은 더러 만나왔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랑의 완성이 가당키나 할까. 순전히 사랑의 완성은 두 사람의 쌍방통행이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나의 가치관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이 소설의 저자 카슨의 말을 통해 이들의 사랑 아니, 미스 어밀리어의 사랑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반드시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젊은 남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랑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호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기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50~52

 

카슨 매컬러스는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즉 사랑의 원초적 본능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슬픈 카페의 노래』 내용 자체가 부조화, 기형, 비정상 같은 정상의 범주, 이해의 차원에서 비껴간 것으로 본다면 보다 납득하기 쉽다. 소설을 위한 사랑의 정의일 뿐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을 깊게 생각해봤을 때,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연출될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평소의 나였다면,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 하지 않았을 말, 하지 않았을 생각 따위를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버리면 당연한 듯이 해내고 말 때. 어느 누구의 사랑도 이해 차원에서 영위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가 아닌 본능에 의해 박동하는 게 사랑이지 않나.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내리는 사랑의 결론은, 고독, 고립과 맥을 같이 한다. 적어도 어밀리어의 사랑은 그렇다. 사랑이 고독, 고립으로 치환되면서 비로소 완전한 사랑으로 거듭나는 것, 슬프지만 그러했다. 영원히 슬픈 카페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미스 어밀리어의 운명이고 말이다. 슬프지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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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까? 사랑이 아픈 이유.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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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ufonce | 201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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