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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과 지적 사기

: 통섭은 과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배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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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62쪽 | 401g | 148*210*20mm
ISBN13 9788959062539
ISBN10 8959062537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지적 사기와 통섭 | 이인식 · 005

제1부 지적 사기 논쟁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유쾌한 장난 | 마틴 가드너 · 017
소칼의 목마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 이상욱 · 029

제2부 컨실리언스 논쟁
사회생물학적 인간관에 대한 비판 | 박준건 · 061
‘통섭’이라는 말과 그 안에 담긴 생각 | 고인석 · 089
통섭: 포기할 수 없는 환원주의자의 꿈 | 박승억 · 094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 이남인 · 120
두 문화, 사회생물학, 그리고 ‘통섭’ | 이영희 · 177
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 이상헌 · 206

제3부 통섭 논쟁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면 충분할까? | 강신익 · 217
최재천·장회익 교수에게 묻는다 | 김지하 · 222
원효는 통섭을 말하지 않았다 | 김상현 · 240

에필로그
융합과 통섭 | 이인식 · 258

저자 소개 · 261

저자 소개 (6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통섭은 과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배신했는가
“통섭은 틀림없이 저주받은 말로 전락할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학문 분야 전반에 걸쳐 융합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학제 간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 중심에 통섭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통섭은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펴낸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교수가 『통섭(統攝)』으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을 ‘지식의 대통합’으로 전제하고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른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섭이라는 한자어도 “사물에 널리 통함”이라는 뜻의 通涉이 아니라, “도맡아 다스리다, 통치하다”는 뜻의 統攝이다. 과학을 모든 학문의 정점으로 만들어 과학으로 세상의 모든 학문을 통치하겠다는 발상으로 비춰진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컨실리언스’는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지식융합이나 기술융합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한국으로 수입되어 원효 스님의 이름을 팔아 ‘통섭’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둔갑해서 융합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학식과 사회적 지명도가 꽤 높은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서 통섭이 융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생뚱맞게 사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심한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개탄했다.
박준건 교수는 “하나의 유령이 지금 배회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유령이!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출간되었을 때 이미 그 유령은 출몰하기 시작했다”며 마르크스의 말을 비틀어 통섭을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철학이 자연과학의 시녀로 전락했거나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철학이 자연과학의 지배하에서 그 논의를 정당화시키는 데 전적으로 복무해서는 안 된다며 통섭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1996년 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술지인 『소셜 텍스트Social Text』에 미국의 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구성주의를 지지하는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논문을 게재했다. 그런데 그 후 앨런 소칼은 자신의 논문이 날조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기 위해 엉터리 논문을 기고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미국 과학저술가인 마틴 가드너는 이 사건을 ‘소칼의 유쾌한 속임수Sokal’s hilarious hoax’라고 명명했으며, 서구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면서 ‘과학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1997년 소칼은 이 여세를 몰아 『지적 사기』라는 책을 펴내고 부제로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과학 남용’이라고 달았다. 이 책은 자크 데리다를 비롯해 질 들뢰즈,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펠릭스 가타리 등 쟁쟁한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글쓰기를 문제삼았다. 앨런 소칼은 과학의 개념과 용어가 남용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① 막연하게밖에 모르는 과학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② 자연과학에서 나온 개념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도입하면서 최소한의 개념적 근거나 경험적 근거도 밝히지 않는다. ③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에서 전문 용어를 뻔뻔스럽게 남발하면서 어설픈 학식을 드러낸다. 그 의도는 뻔하다. 과학에 무지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무엇보다도 겁을 주려는 것이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그 덫에 빠져들고 있다. ④ 알고 보면 무의미한 구절과 문장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일부 저자는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면서 단어에만 외곬으로 빠져드는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⑤ 이런 저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능력에 비해 턱없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발언한다.”
앨런 소칼은 문화적 상대주의의 도전으로부터 과학의 객관성을 옹호하기 위해 골리앗과 싸움을 벌인 다윗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물들에게 돌멩이를 던진 것이다.

통섭은 환원주의자의 ‘헛된 꿈’인가?

박승억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20세기 전반부에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수많은 반론과 비판에 직면해서 어느새 기력 쇠한 노인네 같았던 환원주의적 통합 과학 이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야심적인 시도라고 말한다. 윌슨은 환원주의를 “다른 방도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복잡한 체계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채용된 탐구 전략”이라고 하면서 인류가 뽑아든 마지막 검이 과학이고, 그 과학을‘과학’이게 해주는 것이 환원주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윌슨은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벌어진 환원주의 논쟁을 전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뿐더러 통섭 프로젝트가 전제하고 있는 믿음은 아주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윌슨의 환원주의는 세계의 온전한 모습을 해치면서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윌슨은 환원주의를 제창했지만, 에반드로 아가치가 말한 “환원주의가 참된 과학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윌슨이 제시하는 환원주의는 때로 다양한 사물과 현상을 하나의 아르케arch?로 꿰어보려는 탈레스적 욕구를 뜻하기도 하고 때로는 물리주의적인 미시환원microreduction의 방향을 가리키는가 하면 때로 유전자, 때로 신경세포와 두뇌, 때로 진화 같은 요소들을 기반으로 하는 두루뭉수리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뜻하기도 한다. 그는 과학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관한 통일된 지식을 가지게 되리라고 전망하고 또 희망하지만, 그 통일의 양상에 대한 그의 생각은 책의 진행과 더불어 계속 다면화되고 중심을 옮겨간다. 고인석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윌슨의 『통섭』은 “엄밀하게 직조된 개념적 좌표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라기보다는 독자들의 지적 성향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여행 브로슈어 같은 책”이라고 일갈한다.
이상헌 교수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제 학문의 환원적 통일’을 자신의 사회생물학적 연구 성과와 최근 등장한 진화심리학을 내세워 다시금 시도한다”며 이런 환원주의는 과학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통섭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에게 모든 학문을 평등하게 융합한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도 못했으며, 윌슨의 통섭 개념은 이미 낡아빠진 환원적 학문 통일의 이념을 되살리려는 허망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김지하 시인은 통섭이 저주받은 말로 전락할 것이며, 에코파시즘의 대표 브랜드가 될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윌슨과 그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에게 “당신들이 확신하고 있는 진화생물학이 과연 과학적으로 옳은 것인가? 망상과 오류 투성이는 아닌가? 당신은 지금 한국을 미국의 과학 식민지로 오판, 경멸하면서 엉터리 나팔을 계속 불고 있는 것 아닌가? 생명은 당신들 확신처럼 그렇고 그런 것인가? 혹시 관찰과 측정 방법에 큰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통섭’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봐서도 그것에 대치하는 그것을 소화하거나 분화分化하여 연기緣起에 귀속시키는 대응 기능을 전제 안 하면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랄하고 자빠졌네”다.
이남인 교수는 “정작 통섭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한다. 현재 이 개념은 불투명하고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통섭 개념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경계 허물기 작업이 학계 안팎에서 올바로 이루어져 학문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먼저 인문학·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제시하면서 통섭은 원칙적으로 완벽하게 수행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남인 교수에 따르면, 윌슨의 통섭 프로그램이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인지 극히 의심스럽다. 또한 학제적 연구가 통섭 프로그램에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학제적 프로그램이 될 수 없다. 월슨이 제시하는 통섭 프로그램은 모든 학문이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학제적 연구의 프로그램이 아니며, “자연적 인과관계” 또는 “물리적 인과관계”의 망 속에서 존재하는 현상만을 파악할 수 있는 학문들만의 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연과학적 제국주의 또는 생물학적 제국주의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21세기는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모두를 꿰는 범학문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강신익 교수가 말한 것처럼 “진정한 지식의 대통합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모순 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적 반성을 거친 과학, 과학적 사실을 녹여낸 인문학, 그리고 그 둘의 자유로운 소통이 학문 통합의 전제 조건이다”. 그렇지 않고 과학이 모든 학문의 우위에 있다는 발상은 자칫 자연과학 만능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과학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키고 위험을 예방하며, 과학기술과 인간 존재의 가치가 조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은 사물과 달리 가치론적?의미론적 차원을 갖기 때문이며,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는 과학의 단선적 시각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절판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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